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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항상 감사하는 삶 (골 0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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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는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항상 감사하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 15절 하반절에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이 있고, 16절 하반절에도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는 말씀이 있고, 17절에도 “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본문에 세번이나 “감사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 아버지께 항상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생은 감사하는 인생(Homo gratia)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피조물로서 무(無)에서 유(有)로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창조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것,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시종일관(始終一貫)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감사하는 마음이 결여된 예배라고 하면 그것은 형식적인 예배에 불과하고 진정한 예배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아침에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가 넘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첫째로,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불시자와 신자의 차이점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불신자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이 없지만 신자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이 차고 넘치는 것입니다. 불신자의 마음 속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도리어 불평하고, 원망하고, 항상 불만이 가득차 있습니다.
경제학자 죤 카우스키의 저서 “신생국가의 경제성장”이라는 책에서 그는 “인간들 마음 속에는 항상 불만족으로 가득차 있다”고 했는데, 이와 같은 심리를 “상승 기대 혁명의 심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경제생활이 과거에 비하면 괄목한 만큼 성장했음에도 항상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 불만을 토로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생활수준이 나아졌어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상대적 빈곤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비하여 경제수준이 향상되어 절대적 빈곤은 사라졌지만 남보다 못하다고 하는 상대적 빈곤 때문에 불만이 계속 남아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상대적 빈곤을 느끼면서 불평, 불만할 것이 아니라 절대적 빈곤에서 우리를 구속해 주시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인간에게는 무한한 소유욕이 있는데, 이 무한한 소유욕을 채우지 못하므로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 불만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수가성 여인은 자기 남편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남편을 다섯이나 두었지만 늘 갈증을 느낄 뿐 이성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인생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예수님을 만난 다음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하고 만족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현대를 가리켜 “더(more)”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돈(more money), 더 좋은 차(more car), 더 큰 행복(more happy)”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더, 더”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있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지족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밀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이 조금 뿐이었지만 이것으로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조금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하고 날마다 감사하며 만족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굶어죽는 가뭄과 기근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으로 어려움 없이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겉옷 한벌과 가죽 성경 한권 밖에 없었지만 조금도 불평 불만하지 아니하고 항상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절대적 빈곤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상대적 빈곤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환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감사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저희 내외가 이번 스페인 선교여행을 건강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기도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바르세로나 성회를 마치고 마드리드에 가서 며칠 휴식을 취하도록 최원철목사님이 스케쥴을 잡아 놓았으나 그곳 날씨가 섭씨 46도나 되어 마드리드 행을 포기하였습니다. 하루라도 쉬어가야 한다는 권유를 받아들여 바르세로나 근교에 있는 몬세랏산으로 향하였는데 산불이 나서 여러 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대낮임에도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어 버려 해가 총담같이 검어진다는 계시록의 말씀을 연상할 수 있었습니다.
일생에 한번도 체험하기 어려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드릴(thrill)과 서스펜스(suspense)를 체험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불속에서 지켜주신다(사 43:2)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은혜를 기억하면서 늘 감사하며 찬송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축복을 주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감사하는 사람에게 복을 내리워 주시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감사할 일이 더하게 해주시고, 원망,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불평할 일을 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크리소스톰은 “죄는 오직 한가지인데, 그것은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죄악임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에 그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여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우리의 삶 속에 닿게 하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께 더욱 큰 축복을 받게 되는 유일한 길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가정에 두 딸이 있었는데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딸은 친정에 오면 어머니에게 항상 입을 벌려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혼수감이 적다느니, 나를 위해서 해주신 것이 무어냐는 등의 불평과 원망하는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딸은 집에 올 때마다 항상 감사하는 말만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불평하는 딸이 오면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귓속말로 모든 것을 감추고 시누이에게 보이지 않도록 하라고 타일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딸이 오면 시집으로 돌아갈 때에 많은 것을 싸주고, 더 싸주지 못해서 안타까와 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도 이와 같이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풍성히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주신 것도 빼앗아 가시는 줄로 압니다. 쿨리지(C. Collidge)는 “가장 축복받는 사람이 되려면 가장 많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감사가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돌리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넘치는 복을 허락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어떻게 감사해야 할 것인가 하는 방법적인 문제입니다.

첫째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억지로 감사드릴 수도 없고, 또 억지로 하나님의 일을 하거나, 억지로 감사하게 할 수도 없는 일인 것입니다.
나귀를 우물까지 끌고갈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고 하는 속담이 있듯이 스스로 갈증을 느끼고, 물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많은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자원해서 할 때 열심을 내는 것이고, 자원해야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성막을 건축할 때에 백성들이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예물을 아침마다 드렸습니다. 그러자 너무 많은 물건이 쌓이므로 공사하는 사람들이 공사를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말하여 그만 가져오라고 명령할 정도로 하나님께 자원하였던 백성들의 모습을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렸는데 누가 드리라고 해서 드린 것이 아니고 자원하여 드렸던 것입니다. 하루에 한번씩 번제를 드렸다고 하면 적어도 3년이 소요되었을 것이고, 하루에 한마리씩 일천마리의 소를 제물로 바쳤다면 얼마나 큰 분량이겠습니까 이렇게 많은 시간과 제물을 드리면서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드린 것입니다.
책임상 억지로 하는 것과 책임이 있기 때문에 안할 수 없어서 억지로라도 하는 것, 이것은 안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입니다만 할 수 있거든 자원하여 하시기 바랍니다.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갔는데, 그 자신은 물론이고, 자녀와 가족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큰 축복을 받았고, 그의 부인은 큰 은혜를 받아서 교회를 받들어 충성하는 일꾼이 되었는데, 사도 바울이 고백하기를 “이 루퍼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다”라고 할 정도로 사도 바울을 잘 섬기고 돌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구레네 시몬의 아들은 주의 종이 된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상 마지 못해서 억지로라도 주님의 일을 하는 것도 복된 일이지만 그보다는 자원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하고 주님을 섬길 때에 더 큰 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해서 주님의 일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을 수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주여,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부득이 함으로 주의 일을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주의 일을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이번에 이 종이 바르세로나에 선교여행을 갔을 때에 그 교회에서 많은 경비를 들여 종에게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한 것입니다. 바르세로나 교회가 열세살 밖에 안되는 교회이지만 그동안 선교대회를 개최했고, 지금 중국 선교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있는 내적 증거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다는 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분들도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셔서 몸된 교회에 자원함으로 충성하시고 주님께서 주신 지상 명령에 순종하는 복된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온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말씀하셨고,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선교는 반드시 해야 할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꼭 수행하여야 하며, 우리 교회도 지금 열심히 선교하고 있습니다. 몸된 교회에 속해 있는 각 선교회가 그 역할을 잘 감당하는 선교회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힘을 다하여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16장 10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라는 말씀이 있는데, 자원해서 예물을 드리되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연보보다 과부의 엽전 두푼을 칭찬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과부의 연보는 그의 생활비 전부를 드린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힘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쓰고 남은 것을 적당하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힘을 다하여 감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나타날 줄로 믿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3절에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힘대로 하는 헌금에는 십일조 헌금과 감사헌금이 있을 것이며, 힘에 지나도록 하는 헌금이란 건축헌금, 선교헌금, 기도원 설립헌금, 주차장 확보를 위한 헌금 등이 힘에 지나도록 드리는 예물인 것입니다.

셋째로,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16장 11절 하반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감사를 드리되 즐거움과 기쁨으로 드리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감사하는 생활은 그것 자체가 벌써 축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면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입니다.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하는 자긍심과 보람을 느끼게 되고, 기쁨이 마음 속에 솟구쳐 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늘 하나님께 감사하시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자원하는 심령으로 몸된 교회에 헌신하시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고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성경에 감사하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라 했고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성도의 삶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인 것을 믿으시고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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