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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철저히 종의 모습으로 (단 03:16-28, 눅 1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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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본문(눅17:7-10) 말씀은 주인과 종에 대한 비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감추어진 진리)을 가르치실려고 할 때에 여러가지 모양의 비유를 사용하여 말슴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비유는 우리가 흔히 설교에서 들은 예화와는 다른 것이며, 유대나라의 고유한 문학형식에 속한 것입니다. 이 비유는 복음서 안에 여기저기에 반짝이는 보석처럼 박혀있으며, 예수님의 가르침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비유 말씀은 아주 직관적이고 구체적이며 아주 명쾌하게 뜻을 밝혀 주는 것이기 때문에 독자들이나 청중들에게 공명과 호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비유는 인간이 쉽게 경험하고, 볼 수 있는 모든 사물을 광범위 하게 동원하여 하나님 나라의 감추어진 비밀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이를테면 그가 가르치신 장소도 여러 곳이었습니다. 그는 장터에서, 바닷가에서, 혹은 빈들에서, 회당과 성전에서, 산에서 사람들이 사는 주변어디에서나.... 비유의 재료로서는 농사짓는 일, 장사하는 일, 고기잡이, 양치는 일, 포도원 경영, 주부들의 떡 반죽밀가루와 누룩, 농부의 일 등.... 그 당시의 사람들이 생활주변에서 볼 수 있고 경험할 숭 있는 각가지의 소재를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주인과 종」의 비유말씀 역시 그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말씀입니다. 이 비유는 고대 노예제도를 배경으로하고 있으며, 이같은 이야기는 그당시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 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나도익숙한 이야기 입니다. 이 비유 말씀이 우리 한국교회의 강단에서는 그렇게 자주 설교되어 지지는 않습니다만 결코 생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또한 그 의미를 깨닫는 일에 있어서도 별로어렵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옛날 양반사회에서 「노비」의 신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비유의 내용을 다시 말씀드리면, 종이 들에서-밭을 갈거나 혹은 양을 치는 일로-하루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주인으로부터 음식을 대답받는다든가 혹은 특별한 보상을 받지 않습니다. 종은 바깥들에서 하루종일의 일과를 끝냈지만, 그가 종으로서 하루 일을 다 끝마친것이 아니라 집에 와서는 집안에서 해야 할 일이 또 많이 있습니다. 그 일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쉬기에 앞서 여전히 주인의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주인이 저녁식사를 다 끝낼 때까지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어야 합니다. 그 일이 다 끝냈을 때 비로소 종은 저녁식라를 하며 쉴 수가 있습니다. 이토록 종이 주인을 위해서 충성스럽게 자신의 의무를 완수했지만, 주인이 종이 한 일에 대하여 고마워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당신들도 명령 받은 대로 다 행한 후에 우리는 쓸모없는 무익한 종들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라고 말하시요라는 내용의 비유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비유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습니까 혹시 여러분들 중에는 이 비유는 예수님 당시에나 해당되는 말씀이지, 오늘 우리들의 상황에는 도무지 해당되지 않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또한 이같은 이야기는 옛날 봉건시대에서는 가능한 것이지만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 시대에는 도무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 이야기는 노사문제를 다루는 노동운동의 차원에서 본다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오늘날 이같은 일이 산업사회에 있다고 한다면, 노동착취에, 인권유린이라고 규탄을 받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종이 너무 혹사당하고 있다고 우리 모두가 말할 수 있는 비유말씀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너무 심하게 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비유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비유 말씀은 이 시대에서 우리가 어떻게 읽어야 하고,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메시지를 무엇입니까 이 비유가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무엇인가 이 비유가 감추고 있는 진리가 무엇인가를 오늘 여러분과 함께 밝혀 보기를 원합니다.

1 우선에 우리가 생각할 것은 이 비유 말씀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상대로 해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주인과 종은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를 비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니 제자로서 종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이냐를 보여주는 비유라 하겠습니다. 적으로 이 비유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따르는 제자들의 사명과 의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많은 비유 말씀을 분류하면서 이 비유를 「제자되는 길」이라는 항목에 포함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자격을 말씀하셨는데, 제자되는 자격은 자기를 부인하고, 처자들과도 결별하고, 가지고 있던 모든 소유도 포기하고,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라 그래야만 제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자격을 생각한다면, 오늘 이 비유말씀은 그것과 나무나도 같은것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제자의 길을 가는 우리 모든 제자들은 오늘 비유말씀에서 보여준 종처럼-철저히 자기를 포기하고 주인의 뜻에 복종하여 충성스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종에게는 자기 삶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주인의 일만 할 뿐입니다. 주인을 기쁘시게 하는 일만 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우리들도 역시 주님을 기브시게 하는 일만 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슬프든지 기쁜일이든지, 사나 죽으나 오로지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 존재할 뿐입니다. 이것이 성서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살려고 합니다. 철저히 종의 모습으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주님의 뒤를 따라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위기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더 큰 위기는 가능하면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은 하지 않고 기피할려는 경향들입니다. 그래서 최근 안일과 편의주의에 빠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은혜와 축복과 풍요로움과 편안함의 설교를 선포하고, 거기에 익숙해 있습니다.그래서 제자의 길 이라든지,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자기를 포기하는 제자의 삶에 대한 설교를 거부하는 경향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오늘날 「축복성회」를 교회마다 하고 있는데 저는 이것을 「기복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복신앙은 무당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무당종교가 아닙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위기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큰 위기입니다. 이 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2 그 다음에 우리가 생각할 것은 은총과 공로, 즉 선물과 보상문제입니다. 오늘 비유 말씀에 보면, 종이 하루종일 들에서 힘든 노동을 하고 돌아오는 데도 주인은 종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않고, 하루종일 들에서 수고했으니 나와 함께 식사하면서 쉬라는 친절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종은 쉴새 없이 계속해서 주인의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주인이 식사하는 도중에 허리를 동이고 시중들어야 합니다. 그일이 다 끝났을 때도 주인은 그의 종에게 감사하다는 표시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7-9절) 9절에 보면,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종의 시중은 마땅히 해야할 의무와 봉사이지 보상이나 어떤 감사의 표시로 사례를 받아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말씀은 인간의 공로를 내세우는 공로주의(업적,실적, 공적)를 배격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당시 바리새주의를 비판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당시 바리새인들은 공로주의 업적주의,자기들의 선행을 앞세웠으며, 선행이 하나님의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그래서 그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명시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이 연결시키면서 선행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총애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였습니다. 이같은 잘못된 생각을 고치기 위해서 이 비유 말씀이 주어진 것입니다. 10절 말씀에서 이 비유의 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할찌니라 (1)우리는 무익한 종이라라는 이 말씀은 우리는 쓸모없는 종, 공로가 없는 종, 가치가 없는 종이라는 뜻인데, 겸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종의 모습입니다.(2)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다라는 말은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했을뿐입니다.라는 말인데, 이것은 일에 대한 어떤 보상이나 사례를 받거나, 감사의 인사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우리가 받은 구원이 철저히 하나님의 은총과 선물에 속한 것이지 우리의 어떤 선행이나 업적에 기인되지 않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말로다할 수 없는 구원의 은총을 우리들에게 베푸신 것은 우리가 행한 의무와 책임 즉 공로나 공적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있는 은총임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들은 이 비유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다짐할 것은 철저히 종의 모습으로 철저히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철저히 종의 모습으로 제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의 뜻을 우선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순간순간 주님의 뜻을 찾기에 최선을 다하며 깨어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적당히사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주만을 섬기는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할 때 하나님을 택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이냐 우상이냐(다른 것) 할 때 하나님을 택하여 그만을 섬기고 따른 삶의 태도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고,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임할 수 있도록 순종하며, 복종하며 사는 삶의 태도가 철저히 종의 모습으로 사는 제자의 삶입니다.

둘째로, 철저히 종의 모습으로의 삶은 제자의 삶을 살되, 공로주의나 업적을 내세우며, 보상이나 상금을 기대하고 타산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은총과 감사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종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해 주님을 섬겼지만 거기에 보상이나 공적을 인정받으려 하지 않고 나는 공로없는 종입니다.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며 사는 삶이 바로 철저히 종의 모습으로 사는 삶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내 놓을 것이 무엇입니까 모두 하나님께서 거저주시는 선물이요, 은혜로 사는 것인데, 내가 어떻게 감히 나의 업적을, 공로를 하나님 앞에 보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같이 철저히 종의 모습으로 사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섬김을 받기 위해서 아니라 섬기려 오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육신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언자의 말씀대로 그는 고난받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우선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자기가 가진것을 송두리채 포기하였습니다. 자신을 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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