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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교육의 무게 (신 06: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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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96년전인 1896년 음력 7월25일 한국에 개신교회가 생긴지 10년만에 아주 의의깊은 행사가 있었읍니다.그것은 서울 새문안교회를 담임하던 Underwood 목사가 새문안교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고종황제 탄신 기념축하 예배를 드린 사건입니다.선교사들은 이 축하예배를 통하여 전도활동을 좀 더 용이하게 해 보려는 의도가 있었으나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또 다른 깊은 의미가 있었읍니다.그것은 기독교의 가치관 위에 국가를 세워보려는 의도였읍니다.

예배가 진행되는데 Appenzeller 목사의 설교가 끝난후에 당시 한성판윤 요즘 말로 하면 서울시장인 윤치호씨가 등단하여 연설을 하였는데 그 연설문이 기가 막히는 연설문입니다.그는 이렇게 연설을 하였읍니다. 고어를 현대어로 바꾸어 말씀드리겠읍니다.

우리나라에 지금 긴요한 일은 아이 兒자, 백성 民자, 충성 忠자, 나라 國자 이 네 글자의 새 뜻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오늘날 형세되기를 아이들을 없인여겨 가르치지 못함이니 후일의 희망은 아이들은 신중히 교육하기에 있고

완고한 세계, 즉 봉건사회에서는 백성 民자가 종 民자가 되어 백성은 다만 관리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공급하는 종이 되었은즉 다시 백성이 위가 되고 관리가 아래가 되어야 개화가 될 것이고

구습에는 임금께 승슐만 하거나 평시에 탐학하다가 난리시에 잠깐 임금을 모시고 위기를 모면하거나 유건을 쓰고 정동 병문에 공석이나 깔고 상소나하면 충신이라 하나 본래 충성 忠자의 뜻은 네 정성껏 직분을 다하여 임금을 섬기는 것인즉, 즉 누구든지 정성으로 제 직분을 하는 사람은 충신이요

이전에는 나라 國자가 없어 남의 나라만 있고 우리 나라는 없더니 이제는 우리 나라에도 임금이 계시고 우리나라에도 백성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정부가 있어 서로 의지할 줄을 알고 나라를 사랑할지라.

이 네 글자의 새 뜻은 사서삼경이 가르칠수 없고 각국 장사와 공영사가 가르칠 리도 없거늘 오늘 묘한것을 본즉 이 새 뜻을 가르친 사람이 있음은 분명하니 누구뇨

즉 우리가 욕하고 시비하고 없이 여기는 그리스도교 교사들이라. 우리가 어찌 그 사람들을 감사아니하리요. 이 교가 점점 흥왕하야 우리나라 전국사람들이 이 네 글자의 새뜻을 배우기 바라노라.

여기에 보면 기독교교육이 어떤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인지 이미 우리가 다 알 수 있으나 특별히 주목할 것은 나라를 새롭게 해나가려고 하고 그 정신적 양식을 기독교가 준다고 생각을 할 때 그것이 바로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져 간다는 말씀에서 초대 한국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어떠한 차원에서 받아들인지를 짐작케 할 수 있읍니다.신앙교육이 한 사회뿐만 아니라 바른 정신사를 확립해 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절감하게 됩니다.이 때문에 16세기 종교개혁자 John Calvin 은 교회의 목회와 복음의 전파와 봉사를 위해 네 가지의 직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목사 장로 교사 집사 이 네 가지의 직분입니다.이 교사를 소위 doctor 라고 하였읍니다.교사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직분이냐 하는 것이 드러나고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국가 백년 대계가 바로 교육이다란 말을 하는데 우리가 복음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고 그 세대는 또 그 다음 세대에게 전수해야 할 터인데 이 일을 무엇이 하느냐 하면 교육이 하고 이 일은 누가 하느냐 하면 교사가 담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떻게 신앙교육을 하라고 지시하시는 말씀입니다.오늘 세계의 민족가운데 교육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 만큼 철저하고 신실한 민족이 없으며 이스라엘민족이 나라없이 근 2000년을 유리방황했는데도 유대인의 문화와 신앙을 지켜온 것은 순전히 바로 이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명하신 교육을 그대로 실천해 온 덕분입니다. 유대인은 모든 어머니가 어머니인 동시에 반드시 가정교육자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둘다 유대인이 아니고 어느 한쪽만 유대인을 경우 그 자녀가 유대인이 되는데는 묘한 규칙이 있읍니다. 어머니, 아버지 중 한쪽만 유대인이고 다른 한쪽은 이방인인 경우에 아버지가 유대인이고 어머니가 이방인인 경우에는 그 자녀가 자동적으로 유대인이 될 수 없읍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유대인이고 아버지가 이방인인 경우에는 그 자녀는 자동적으로 유대인이 됩니다. 이것을 보면 어머니의 신앙교육을 얼마나 신뢰하는지의 증거를 보게 됩니다. 교육을 끊어 버린다는 것은 한 체제를 끊어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1986년도에 아직 동구의 변화가 있기전도 한참 전일 때 국제회의차 동베르린에 갔었읍니다.그 때 회의를 마치고 동독의 개신교회 초청으로 교회를 시찰하였는데 그 교회 목사님의 브리핑을 듣는 순간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당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절대로 후 세대에게 신앙교육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던 사실입니다.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할 수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신자인 경우에 겨우 교회는 같이 갈 수 있으나 자녀에게 신앙을 교육할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가정에서의 신앙교육도 할 수 없도록 헌법에 명시되어 있었읍니다.

이와같은 현상은 사회주의 국가에는 모두 그랬는데 역시 1988년에 북한의 조선기독교연맹 대표단들이 스위스에 남북교회의 접촉모임인 Glion 회의에 왔을 때 거기 35살 정도 먹은 젊은 사람이 끼여서 왔는데 사람이 참 호탕하고 시원한 사람인데 제가 보니 이 사람은 혁명후 세대이므로 도저히 기독교신자라고 상상할 수가 없어서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냐고 조용히 물어보았읍니다.그랬더니 그 사람이 놀라운 이야기를 해 주었읍니다.자기는 전혀 기독교를 몰랐고 공산주의 교육만 받았는데 자기 할아버지가 아마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가 바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이 손주를 업고 저기 동산이나 강가로 산보를 하거나 또 집에서 무릎을 베고 잠을 재운다거나 할 때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너는 나중에 예수를 믿고 교회를 가거라.란 소리를 했다는 것입니다.그것이 당시에는 무슨 소리인줄 몰랐는데 나중에 조선기독교연맹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되면서 그 조선기독교연맹의 일을 보게 되면서 교회도 나가고 성서도 읽에 되었는데 참 좋은 말들이 성경속에 있는 것을 알고는 할아버지에 대해 감사해 한다고 했읍니다.이 자녀에 대한 신앙의 전수는 비록 너는 나중에 예수를 믿어야 한다.란 단순한 것이지만 엄청나게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읍니다.

지금 동구라파의 교회들은 이번 기회를 통하여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 무진장으로 노력하고 가능하면 중고등학교를 교회에서 세우려고 애를 쓰고 있고 지금 체코 프라하에는 그동안 제가 교섭하여 우리 교단도 이 일을 위해 협력하고 있읍니다.신앙교육은 막연하게 그저 한 사람을 신앙으로 교육한다는 정도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민족의 사활을 건 문제이며 더 나아가서 이 세상에 하나님을 전제로 한 우주관 역사관, 삶의 자세를 우리 개인과 사회의 삶속에 깊이 뿌린내린다는 차원에서 그 의미가 깊은 것입니다.작년 1991년 12월3일자 영자신문 Heral Tribune 에 아주 의욕적인 기사가 하나 실렸읍니다.그 기사를 쓴 기고가는 경제학자이며 정치평론가이자 지금은 없어져 버렸지만 쏘련 과학원 회원이면서 당시 미국의 Columbia 대학 Freedom Forum Media Studies Center 자유언론 연구 쎈타에서 연구중이던 알렉시 이쥬모프 (Alexy Izyumov) 라는학자였읍니다.

그 분이 역사는 러시아에게 제2의 기회를 주고 있다.( History is offering Russia a Second chance)라는 글을 썼읍니다.우리는 쏘련이 얼마전 역사상에서 없어지고 사회주의로 망한 것 같이 생각을 하는데 실제 러시아란 나라는 역사상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고 가볍게 보아서는 안되는데 그는 이런 러시아의 잠재력을 근거로 러시아에 새로운 희망을 주려는 의도로 이 글을 썼읍니다. 글의 내용은 러시아는 지금 어려우나 여전히 희망이 있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인데 그렇게 희망을 가지는 근거로 그는 세 가지를 들었읍니다.

1. 러시아의 희망의 근거로 깊은 문화적 저력과 전통을 들었습니다.
러시아는 사실 19세기 20세기 초엽에 경제자유주의를 가졌던 적이 있고 유럽의 산업화를 선도했으며 당시 러시아가 세계 식량공급의 3 분의 1을 담당했으며 특별히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 멘델레예프 같은 문학과 예술, 학문의 거장들을 배출한 문화적 저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 둘째로 꼽는 희망의 근거로 영적이 부흥이 뜨겁게 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기사에서 이렇게 썼읍니다.
지난 8월 쏘련 보수파 쿠테타가 발발했을 때 혁명분쇄대열의 최선봉에서 혁명을 막아내었던 사람들은 바로 성직자들이었으며 그들은 시민들과 탱크대위의 군인들에게 성경을 배포하고 혁명저항세력에게 용기와 축복을 베풀었었다고 했읍니다.
사실 지금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하루 주일에 세례지원자가 2000명이 넘기도 하고 있습니다.

3. 셋째로 드는 희망의 근거는 진취적인 젊은이들이 역사를 이끌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8월의 쿠테타 때도 그랬지만 소련의 변화에 있어서 가장 분명하고 희망 찬 소리를 발하고 있는 세대는 역사를 앞으로 전진케 하려는 젊은이들의 진취적 기상이 있기 때문에 희망적이란 사실입니다.

이 분은 깊은 문화적 전통, 영적인 부흥, 진취적 젊은 세대가 지금 굉장히 어려운 상황속에서 러시아를 새로 건질 근거 꼽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종교교육은 바로 이 깊은 문화적 전통을 낳게 하고 종교교육은 영적 부흥을 돋우며 종교교육은 바로 진취적 젊은이들을 미래를 위해 준비한다는데 뜻이 깊이 있읍니다.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온 민족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고 이 신앙을 민족의식의 중심으로 간직하고 이 신앙을 후세대에 계승시켜 깊은 영적 전통으로 자리잡게 하는데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반복적인 방법이 있었읍니다.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짤막한 신앙고백형식으로 구성하여 최초에는 추수감사절 절기의 예배 때에 온 이스라엘 민족이 추수한 곡식을 제단에 바치며 이 신앙고백을 드리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명기 26장 1-11절에 나와 있습니다.그리고는 계약을 갱신하는 축제 때마다도 암송하게 했는데 그것이 여호수아 24장에 나와 있읍니다.그리고는 중요하게 행한 것이 집에서 자녀를 교육할 때 반드시 자녀에게 암송을 시키켰는데 그 내용이 바로 오늘 말씀이며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지킬 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 신앙고백을 들려주며 조상들의 경험이지만 이 신앙고백을 통해서 아들세대가 자기들의 신앙고백으로 간직하도록 예배를 통해서 전수시켰습니다.

유월절은 반드시 가정에서 지키도록 되어 있고 온 가족이 누룩이 들지 않는 빵과 쓴 나물을 식탁에 놓고 예배를 드리는데 이 때 예배의 주체는 아들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신앙고백을 전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예배가 시작되면 본문에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뇨 하거든...에서 나와 있듯이 아들이 먼저 아버지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시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으면 그 아버지가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급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급과 바로와 그 온 집에 베푸시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민족구원의 신앙이 그 내용으로 되어 있읍니다.단순히 한 개인의 구원만이 아니라 또 막연히 영적인 구원만이 아니라 하나님 바로 우리 민족을 구원해 주셨고 우리 선조에게 약속하신 그 땅에 우리를 들여보내서 오늘 처럼 살게하시려고 우리를 인도하셨으니 오늘의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냐 이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다 라고 구체적인 삶의 역사를 신앙으로 엮어주는 그런 산 신앙교육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읍니다.

우리가 어린이에게 가르칠 때 그들이 교회 올 때에만 또 개인에게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학교생활, 가정생황 등 우리 자신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가르쳐 주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그러기 위해서 교사들이 그런 의식과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우리 민족의 역사위에서 세계사위에서 우리의 학교생활과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시고 우리의 삶을 구원하시는 신앙고백들을 아름답게 정돈하여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그 신앙을 전수받도록 우리가 교육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주일학교를 노래부르고 율동하고 잘 하는 사람에게 시상을 하고 재미있게 운용하는데 모든 기술을 다 동원하는데 이 모든 것이 다 필요하고 동원되어야 합니다.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내용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역사와 삶속에 생생하게 살아계신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그런 역사의식을 아이들의 갖도록 하는 목적을 잊어서는 안됩니다.그리고 이것을 예배의식속에서 행하라고 했읍니다.신앙교육은 말과 설명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경험이 중요한데 우리에게 지속적이고 반족적이며 은연중에 마음깊은 곳에 내재시키는 길이 예배입니다. 기도속에 찬송속에 암송속에 말씀을 들음속에 이 신앙고백들이 배여있어야 합니다.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뉴욕의 어느 회당에선 매년 신년이 되는 유대인 랍비가 달라 지폐 1불짜리를 바꾸어서 그날 유대회당에 찾아오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한 마디씩하면서 나누어 줍니다.이것을 네가 가지고 나가서 길거리에 있는 불쌍한 사람에게 네 손으로 주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돈 1불씩을 받아가지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길에 나가서 가장 자기가 보기에 불쌍해 보이는 사람에게 줍니다.아이들은 그 순간 은연중에 불쌍한 사람에게 자기의 것을 나누는 의미와 재미를 경험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설날 아이들에게 세배돈을 주는데 그 돈을 가지고 맛있는 것 많아 사먹고 또 세배를 많이 열심히 다녀서 세배돈을 좀 벌어서 학용품이라고 사서 써라고 어른이 일르는데 이것을 좋은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오히려 그 돈을 다 모아 네 학급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도우라가 했을 때 그것을 놀라운 교육이 될 것입니다. 예배속에서 심령속에 하나님의 뜻을 담은 거룩한 예식을 행하고 이런 행동으로 경험케 하면서 하나님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깊이있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이 한해 동안 우리 교사들이 수고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수고는 역사를 깊이있게 하고 앞으로 역사를 책임질 우리 진취적인 젊은 세대를 준비하는 사명이 있고 민족을 하나님앞으로 인도하고 역사를 하나님의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우리 미래 세대의 신앙고백을 형성한다는 차원에서 깊은 사명감을 가지고 일년 동안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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