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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로의 노예가 된 이스라엘 (출 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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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는 ‘모세의 제 2책’ 혹은 ‘Εξοδοσ(출발)’라고 합니다. 출애굽기는 창세기의 연속이며, 모세가 기록한 책입니다. 출애굽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의 맺으신 언약을 기초로 큰 민족을 이루시고, 그들을 통해서 천하만민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뜻과 소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1-18장은 노예가 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하게 된 과정이 기록되어 있으며, 19-40장은 출애굽 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과 그들에게 두신 소망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이 큰 민족으로 창성케 된 과정과 애굽 왕 바로의 노예로 전락한 과정이 세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고난 속에 두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이스라엘을 창성케 하신 하나님(1-7)
1-5절을 보십시오. “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인이었더라” 야곱과 함께 애굽에 내려간 혈속은 모두 70명이었습니다. 야곱은 요셉까지 12 아들을 낳았습니다. 르우벤부터 스불론까지는 6명은 레아에게서 낳은 아들이고, 요셉과 베냐민은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이고, 단과 납달리는 라헬의 시녀 빌하에게서 낳은 자식이고, 갓과 아셀은 레아의 시녀 실바에게서 낳은 자식들입니다. 이들의 이름의 뜻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루우벤은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다’는 뜻입니다. 시므온은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시므온은 ‘지금부터 내 남편이 나와 연합하리라’는 뜻이고, 유다는 “이제는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이 값을 주셨다는 잇사갈, 그가 나와 함께 거하리라는 스불론’입니다. 또 아들 하나를 더 주시기를 원한다는 요셉, 슬픔의 아들 베냐민,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셨다는 단,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는 납달리,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아셀 등입니다. 이 이름들을 보면 일부다처의 비극과 젊은 시절의 야곱의 삶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인간성이 대단히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쌍동이로 태어날 때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고 하여 ‘야곱’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 이름대로 그는 경쟁심과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기성이 많았습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형의 옷을 입고 형에게 내릴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또 그는 라헬을 연애하여 7년을 수일같이 머슴살이를 했으며, 14년 동안 봉사할 만큼 집념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20년 동안 광야훈련을 받고 그 내면이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런 야곱이 왜 그 권속을 거느리고 애굽으로 내려왔습니까 5절 상반절을 보면 요셉은 이미 애굽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자기 권속을 데리고,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요셉의 초청을 받아 애굽으로 이주해 오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이요,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라헬의 첫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다른 아들들에게는 항상 허름한 작업복만 입히고, 요셉에게만 항상 채색옷을 지어 입혀 왕자처럼 살게 했습니다(창 37:3). 그래서 다른 열 형제들로부터 미움과 시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번은, 요셉의 형들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보내어 아들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음식은 충분한지 보고 오도록 했습니다. 채색옷을 입은 요셉은 며칠 걸려 형들이 있는 곳을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형들은 요셉을 보자마자 말했습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창 37:19,20).” 그러나 르우벤과 유다의 제안으로 노예로 팔려 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 왕 바로의 경호실장 보디발 장군의 집에 팔렸습니다. 집에서 사랑만 받던 요셉은 17살의 어린 나이에 낯설고 물설은 이방땅에서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원망하거나, 운명주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믿고 최선을 다하여 맡은 일에 충성했습니다. 마침내 보디발의 인정을 받아 그 집의 가정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여 동침하기를 날마다 구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앙심을 품은 보디발의 처가 요셉에게 누명을 씌워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감옥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간수들의 인정을 받고, 죄수들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로 왕이 악몽을 꾸고서는 번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모든 박사들과 술객들도 바로의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요셉의 해몽대로 출옥한 술 맡은 관원장의 추천으로 바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하나님의 뜻과 섭리 편에서 해몽해 주었습니다. 애굽과 온 천하에 칠 년 동안 큰 풍년이 있은 후에 칠 년 동안 대흉년이 있으리라고 경고했습니다(창 41:16). 요셉의 꿈 해석을 들은 바로 왕은 요셉의 명철과 지혜에 감탄하여 즉시 애굽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실권자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때는 그 나이 30세였습니다. 노예로 팔려 온지 13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총리가 된 요셉은 바로왕을 충성스럽게 보필하였습니다. 칠 년 풍년은 지나고, 무서운 칠 년 흉년이 시작되었습니다. 흉년은 가나안 땅에 거하는 야곱의 가정에도 미쳤습니다. 야곱은 먹을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애굽에 곡식을 판다는 소문을 듣고 양식을 구하러 열 아들을 애굽으로 보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애굽에 가서 요셉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요셉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간첩으로 몰아 친동생 베냐민을 데려 올 때까지 시므온을 인질로 붙잡아 두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야곱은 요셉 생각하며, 베냐민마저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슬피 울며 탄식했습니다(42:38). 그러나 흉년은 계속되었고 곡식은 애굽에만 있었으니, 형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이 무사한 것과 베냐민을 대신하여 노예가 되겠다고 하는 형들을 보고, 큰 감동을 받고 자신이 바로 요셉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ㅇ르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창 45:5,7).” 그리고 아버지를 애굽으로 모셔 오도록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야곱이 애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서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심히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브엘세바에서 단을 쌓고 하나님께 희생을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밤에 이상 중에 두려워하는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세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첫째, 애굽에서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애굽에 함께 내려가서 이스라엘을 돌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반드시 다시 가나안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 46:3,4). 야곱은 이 약속을 믿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애굽에 내려간 야곱의 혈속들은 요셉의 도움으로 바로의 은총을 입어 고센 땅 라암세스에 거하게 되었습니다(창 47:11). 고센 땅은 애굽 동북 변방 지방으로 아주 넓은 목초지대였습니다. 이곳은 물을 끌어 대기가 어려워 농사를 주로 하는 애굽 사람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축하기에는 아주 좋은 땅이었습니다. 게다가 애굽 사람들은 짐승을 키우는 것을 가증히 여겼습니다(창 47:34). 그래서 애굽 사람들과 격리된 가운데 신앙을 지키며 자치적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가나안 땅에 비하면 모든 환경이 천국과 같이 살기 좋은 땅이었습니다. 또 총리 요셉을 통해서 그 식구대로 식물을 공급 받고 평안히 살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은 번성케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어느 정도로 창성케 되었습니까 6,7절을 보십시오.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요셉은 애굽에서 80년 동안 총리로 충성하다가 110살에 죽었습니다. 그의 모든 형들도 죽었습니다.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그들은 번성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져서 온 땅에 가득하였습니다. 신 1:46에 보면 출애굽 할 때 인구가 20세 이상 장정만 603500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들과 아이들을 합하여 200만이 넘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70명이 430년만에 200만이 되는 것은 기적적인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큰 민족을 이루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놋을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 13:15-17). 또 이삭과 야곱에게도 그 후손을 심히 번성케 하고, 땅의 티끌같이 동서남북에 편만케 하시겠다고 약속사셨습니다(창 26:24, 28:13,14).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말씀대로 그 후손들을 심히 번성케 하고, 창성케 하셨습니다. 요셉 시대의 사람들은 다 사라졌고, 요셉을 알던 왕들도 다 죽어 피라미드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심히 창성하여 땅의 티끌같이 많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야곱의 후손들을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그들을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을 만드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모든 민족들이 다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영적인 무지과 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어두운 시대에 그들을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해서 온 천하만민을 구원하시려 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 12:2)그리고 백세 때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또 이삭을 통해서 야곱을 낳게 하시고, 야곱을 통해서 12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을 애굽에 보내사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과 그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사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고, 제사장 나라로 만드사 이들을 통해서 천하만민을 구원코자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도 죽었고, 이삭도 죽었고, 야곱과 요셉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시며, 택하신 자들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 나가십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한 시대를 섬기다가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경외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고, 그들을 통해서 온 천하만민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30년 동안 UBF 역사를 놀랍게 축복하시고, 1000명의 선교사들을 75개국에 파송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천하만민을 구원하실 수 없는 것을 아시고, 계속하여 흥왕한 제자 양성의 역사를 이루시고, 하늘의 별떼와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성경 선생들을 일으키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 역사는 계속 성장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천하만민을 구원하는 구속하는 구속 역사에 귀히 쓰실 것을 믿습니다.
II. 바로의 노예가 된 이스라엘(8-22)
8절을 보십시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란 요셉이 애굽 역사에 끼친 업적을 인정치 않는 새로운 왕조가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학자들은 애굽의 힉소스 왕조를 몰아내고 들어선 제 18왕조를 가리킨다고도 하고(BC 1560-1350), 18왕조를 몰아낸 19왕조라고도 합니다. 특히 힉소스 왕조는 셈족으로 애굽 왕을 몰아내고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셈족인 요셉과 이스라엘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애굽인들이 이 힉소스 왕조를 몰아내고 제 18 왕조를 세웠습니다. 이들은 그 동안 유대인들이 누리던 모든 특권을 박탈했습니다. 그런데 이 새 왕이 두려워한 점이 무엇입니까 9,10절을 보십시오.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왕은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창성하는 것을 보고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쫓겨난 힉소스 왕족들과 합세하여 애굽을 대적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또 이스라엘은 종교적으로도 애굽 사람들과 같지 않고, 문화적으로 전혀 이질적인 생활을 했기 때문에 더욱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묘책을 구하던 중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아 경제건설에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또 강제노동을 시켜 이스라엘을 괴롭혀 번식을 억제하여 이스라엘의 수를 줄이고자 했습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모든 특권을 상실하고 바로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바로왕은 이들 위에 감독을 세우고, 왕의 국고성인 라암셋과 비돔을 건축하게 했습니다. 잉여 곡식을 저장하고, 또 군량미와 무기도 보관하여 동방제국의 침략을 대비하고, 원정을 준비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중노동에 시달리며 괴로움을 당한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이스라엘은 학대를 받을수록 몸과 마음이 더욱 튼튼해졌습니다. 양만 치다가 힘든 운동을 하니 몸이 더욱 건장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중노동으로 많은 괴로움을 당했으나 오히려 더욱 번성하고,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로 인하여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왕은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욱 엄하게 일을 시켰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 엄하다는 말은 ‘산산조각을 내다’, ‘부수다’는 뜻으로 노예와 같이 철저히 부려 먹고, 조금이라도 말 안들으면 사정없이 때려 죽일 만큼 잔인하게 학대했다는 뜻입니다. 당시 벽화 중에는 나체가 된 노예들이 땅에 엎드려 있고, 가죽 채찍을 든 감독들이 사정 없이 내려치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그 그림 중에는 “내 손에 채찍이 있다. 게으르지 말라!‘는 문두가 적혀 있는 그림도 있습니다. 이를 보면 애굽 왕이 얼마나 잔혹하게 이스라엘을 괴롭혔는지 알 수 있습니다. 흙이기, 벽돌 굽기, 운하를 파고 댐을 건설하는 농상일, 또 높은 곳으로 물을 퍼 올려 농장에 물을 대는 일도 노예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고대 절대 군주들은 노예들을 이런 일에 엄청나게 동원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운하를 팔 때 동원된 인원이 15만명이나 되는데 그 중에 2만명의 노예들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거대한 피라밋 같은 것을 쌓을 때도 수많은 노예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을 때, 그 백성은 번성하였으며 자꾸 늘어만 갔습니다.
첫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바로 왕은 다음 단계로 히브리 산파들에게 특명을 내렸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히브리 여인의 해산을 도울 때 살펴 보고 아이가 남자면 죽이고 여자면 그는 살게 두라.” 그는 자기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무죄한 애기들을 학살하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바로는 히브리 산파들을 통해서 은밀히 이스라엘 족속을 말살하고자 했습니다. 남자 아이들을 다 죽이면 여아들만 남습니다. 이들을 애굽 사람과 결혼을 시켜 애굽인으로 동화시키고자 계획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전제군주국가에서 임금의 명을 어긴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는 일을 해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이 산파를 불러 문책하자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고 대답했습니다(18,19) 실제로 히브리 여자들은 산파 없이 가정에서 해산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로 왕의 두 번째 계획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산파들의 믿음을 축복하시고,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결단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여졌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들의 집을 왕성케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구속 역사에 귀히 쓰십니다. 또 반드시 그 믿음을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가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잠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삽살개처럼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비참하게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질 때 독수리처럼 힘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두번째 계획이 다시 수포로 돌아가자 바로 왕은 어떤 잔혹한 명령을 내렸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바로는 이제 모든 백성들에게 공개적인 명령을 내렸습니다. 남자가 나거든 무조건 나일강에 버려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민족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명령을 이용하여 하수에 버림 받은 모세를 궁중에서 공주의 아들로 자라게 하심으로서 출애굽 사역을 준비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출애굽 할 때에 장정만 60만이 넘은 것을 보면 모세 이후에도 이러한 유대인 말살정책은 실패로 돌아갔음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이러한 고통 속에 두셨겠습니까 이스라엘은 300년 이상 애굽에서 살면서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을 잃어 버렸습니다. 세상에 안주하고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셨습니다. 애굽 사람들의 괴롭힘을 당하면서 불신자들이 근본적으로 얼마나 이기적이며, 물질적인가를 알게 하셨습니다. 또 그들이 얼마나 잔인하며 부패한 인간들인가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또 더 이상 애굽에 머무르지 않고, 약속의 땅으로 떠나야 함을 알도록 도우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심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이런 박해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끼리 합심하게 되고, 민족의식과 동포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크신 뜻과 섭리 편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야 할 때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백성들로 하여금 애굽을 떠날 마음 준비를 시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모세 한 사람을 키우시고, 출애굽의 대 역사를 준비하셨습니다. 그 조상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변개치 않으시고,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자 하셨습니다(창 15:13,14). 또 이 때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점차 관영하여 심판이 가까이 오고 있는 때였습니다(창 15:16). 우리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종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자 작정하시고,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도 불신자들로부터 많은 괴로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군 광야 생활을 할 때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는 의미 없는 고난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너무 힘들어 탄식하고 절망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더 크고 원대한 계획과 섭리 가운데 우리 인생길을 주관하시고, 인도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현재 당하는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크고 놀라운 뜻과 섭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택하신 자들에게는 결코 우연이란 없습니다. 어떤 곳이든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크신 경륜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크고 놀라운 역사를 기대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가장 절망적인 때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큰 민족을 이루시고, 천하만민을 구원하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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