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앙과 생활 (사 60:1-3, 마 05:13-16)

첨부 1


오늘은 우리 교회가 청년주일로 지키는 주일이다. 오늘을 사는 청년 들에게 주는 사회와 삶의 현장에 해당하는 주의 말씀이 우리의 현실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청년아, 내가 가르침을 잊지 말 고 내 훈계를 마음에 간직하여라. 그러면 너는 오래 살고 날이 갈수록 행복을 누리게 된다. 성실하게 신의를 지켜라. 이것도 네 목에 걸고 네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한다. 그래야 너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훌 륭한 사람으로 기림을 받는다.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믿어라라고 하 는 잠언 3장의 말씀이 우리 모두 속에 축복으로 함께 하기를 빈다.

 흔히 사람들이 성서를 읽을 때 가장 쉽게 접할 수 있고, 또 많은 영 향을 받는 책이 야고보서이다. 야고보서의 주제는 신앙을 말할 때에 행위가 뛰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네 형제들아 만일 사람 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 그 믿음 이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야고 2:14)고 했고 그 아래 17절에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고 했다. 믿음이 주냐 행위가 주냐, 믿음이 먼저냐 행위가 먼저냐라고 묻고 있 는 것이다.

 반면에 바울 선생은 신앙을 복음의 핵심적인 논리로 여기고 있는 것 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로마서나 갈라리아서에 보면 아주 명확하게 사람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하고 있 다. 그리스도인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노라(로마 3:28)라고 바울은 피력 한다.

잘못하면 이 두 주장이 상반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바울은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신앙에 두고 있는 데 반해, 야고보는 그것을 광 범위한 생활 위에 두고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의미를 폭넓게 이해할 수만 있다면 그 둘이 상반되면서도 피차 에 보충되고 의존되어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즉 바울이 말하는 믿음이란 행위나 생활 속에 반영되지 않는 하나의 개념이거나 추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 그자체의 변화 또는 개혁을 포 함하고 있는 내용'을 담은 말이요, 야고보가 말하는 행위도 역시 믿음 을 떠나 믿음 없이 자기의 공적이나 선행을 내세우는 따위의 자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자의 삶' 의 구체적인 형태로 이야기한 것 뿐이라는 것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신앙이냐', '생활이냐'가 아니라 신앙과 생활의 일치된 삶의 모습이 오늘을 사는 청년들의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계속 문제로 남는 것은 신앙과 생활의 일치 문제이다. 신앙 에 의한 생활, 생활 속에서 표현되는 신앙, 이렇듯 이 둘은 조화와 일 치되는 관계이어야지 각각 제멋대로 괴리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신앙은 신앙대로, 생활은 생활대로 따로 겉돌게 되는 현상이 지속되 면 신앙일 수가 없고 그 신앙생활이라는 것도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 일 수가 없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말씀들 중, 마가복음 7장에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과 학자들이 합세하여 예수의 제자라는 사람들이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트집잡아 논쟁을 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 떠 예수는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입 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이 인용문은 사람들이 입 술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공경하는데 중심에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 가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의 신앙이란 성실과 통하는 것이어야 한다. 진실과 정직과 일체 감을 바탕으로 하는 신앙,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요,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 교회의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이 다. 그것은 우리 마음이 활짝 열려진 모습이요, 숨기거나 꾸미거나 장 벽을 쌓는 일이 없는 진실한 자세이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정신적, 사 회적 풍토 속에서 착하고 성실하게만 살다 보면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 서 낙후되고 패배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 속에서 우리의 기도는 '착하고 진실하게 살기를 원하는' 기도이면서 보다 솔직한 마음의 간 구는 '슬기롭고 요령있게 살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라고 말로 고백하기는 하면서도 그것이 우리의 신앙 내용이 되지 못하고 만다.

 십자가의 고난이 설교되는 교회나 그 집단에는 많은 사람들이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여 슬그머니 기피하는 현상이 생겨나고, 그와는 대 조적으로 기적적인 병치유와 분에 넘치는 은복이 쏟아지는 일을 설교 하는 교회는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는 현상은 무엇을 말할까 이러한 물음을 물어보며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젊은 그리스도인의 역 할을 소금과 빛으로 간추려 말하려고 한다.

 첫째, 소금으로서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을 말한다.

소금이란 맛을 나게 하는 일과 부패를 방지하는 두 가지 역할을 한 다. 그 첫째는 사물을 부드럽게 하는 유화성과 위급한 환자의 생명을 지켜주는 내적 생명력의 역할이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그것은 쓰레기 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런 유효한 역할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회 에서 사람들에게 밟혀야 하는 저속하고도 천박한 몰골로 전락해 버리 고 만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또 두번째의 역할은 부패방지 의 문제이다. 주로 부패란 그 사회의 상층권력으로부터 비롯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거기에는 사회의 제도나 조직, 기구, 그리고 합법을 가장한 온갖 권력구조 속에 자리잡고 웅크리고 있는 악의 세력에 저항 해야 한다는 엄청난 사명의식이 작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저항감, 투 쟁의식, 사회개혁 등의 과감한 정신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지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러므로 그리스도인들, 특히 젊은이들이 세속사회 속에서의 소금이 되 려면 반드시 그 자체가 그 속에서 녹아야 하고 자기희생의 법칙이 따 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출세나 영달이나 승급이나 성공이나 이런 것들이 그리스도인의 성실성에 뒤따르는 하나의 교과서적인 공식 쯤으로만 생각하는 일은 놀라운 착각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소시민적인 안일무사주의에 주저앉아 있거나 '순수한 종교적 차원'이라는 베일 속 에 도피하여 자기안전을 꾀하게 될 때 그것은 일종의 맛을 잃은 소금 에 불과하다.

 둘째는 빛으로서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을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을 표시해 주는 다른 하나의 범주다. 빛 이란 곧 밝음을 뜻한다. 인간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했다고 예수 께서 말씀하셨는데 인류의 역사란 어두움의 역사라 해도 좋을 것 같 다. 역사의 바탕에는 어두움의 세력, 곧 이기주의, 약탈, 정복, 공명 심, 우월감,교만, 냉소, 시기, 권모술수, 박해 등이 그 바탕을 형성하 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여기에 빛을 비추는 삶의 자세가 그리스도 인들의 사명이어야 함을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사실 우리 자신이 빛일 수는 없다. 빛의 근원은 하나님이시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 다. 다만 그리스도인이란 그 큰 빛을 받아 우리 안에서 이를 반사시키 는 작용을 할 뿐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올바른 빛의 반사자이기 위해 서는 우리의 품성의 거울을 티없이 맑고 깨끗하게 할 수 있어야 하며, 빛을 향하는 우리의 위치가 올바르게 놓여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아야 한다. 만일 사람이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지 않고 말 아래 둔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깊이 유의하여 올바른 위치를 선정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소금과 빛의 특성과 더불어 그것의 순서에 대 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소금은 스며드는 것이며 속으로 들어 가서 녹아버리는 것인데 반해, 빛을 나타내는 것,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빛이 되기 는 좋아하나 소금이 되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소금이 자기희생의 표본 이라면 빛은 영광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서는 소금과 빛이어 야 한다. 빛과 소금이 아니요, 소금과 빛이다. 먼저 소금이어야 한다.

숨은 봉사, 조건없는 사랑, 보수를 문제삼지 않는 충실한 삶, 진실 된 생활, 이렇게 되면 그 다음에 자연히 빛은 따르게 마련이다.

 오늘의 사회생활은 실로 다양하고 복잡하다. 이 사회의 현실에 지혜 롭게 적응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젊은 사명의식을 다져가며 현실 생활을 극복하고 민족과 역사 속에서 우리의 과제를 인식하면서 창조 적이고 생산적인 삶의 자리에 우리의 소중한 신앙의 자리를 두어야 한 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