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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롭게 사는 길 (약 0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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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생각과 말을 통해서 생산적으로 사는 길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야고보서 3장 13절 이하는 지혜로운 생각을 통해서 행동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마음의 동기에 따라 형성되어 집니다. 그런데 이 마음의 동기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는 지혜입니다.
유대 사람들은 지혜를 중요시 하는 민족입니다. 지식과 지혜는 다릅니다. 지식은 있지만 삶의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컴퓨터는 조작할 수 있지만 자신의 삶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기자는 지혜롭게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령 구약의 잠언서는 삶의 지혜를 말하는 책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4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지식이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혜는 그 분석한 것을 다시 종합해서 우리 생활에 적용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 없는 지식은 우리의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참된 지혜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증명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3절을 보세요. “너희 중에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요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행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착한 행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식과 태도 전체를 말합니다. 지혜는 우리 생활을 통해서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삶을 풍요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지능도 높고 공부도 많이 해서 지식은 많은데 지혜가 없는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느 감옥에 수감된 죄수가 있었습니다. 간수가 보니 이 죄수가 글을 읽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간수가 생각하기를 이 죄수는 그저 무식한 탓에 이런 죄를 범했구나 하고 이 죄수에게 정성껏 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글만 알면 이 사람이 자기 문제를 바로 해결 할 줄로 생각해서 였습니다. 이 죄수는 형기 안에 글을 다 배우고 잘 읽고 잘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형을 마친 이 사람은 간수에게 감사하다고 하면서 이제부터는 새 사람이 되어 살겠다고 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얼마 후에 그 사람이 또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의아하게 생각한 간수가 어떻게 다시 들어오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이번에는 문서 위조 죄로 들어왔다고 하더랍니다.
우리가 공부해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으로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 우리와 다른 사람 사이의 관계, 다시 말하면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속에서 어떻게 그름을 분별해서 살아가며 바른 인격을 형성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지혜는 정말 귀한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지혜의 소중함을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혜에 비교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이 지혜를 두 가지로 구별합니다. 믿음에도 참 믿음 거짓 믿음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지혜에도 참 지혜와 거짓 지혜가 있다고 말합니다. 참 지혜는 하늘의 지혜요 거짓 지혜는 땅의 지혜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속한 지혜와 마귀에게 속한 지혜를 구분합니다. 이 두 가지 지혜는 대조를 아루고 있습니다.
그러면 땅의 지혜, 거짓 지혜, 마귀에게 속한 지혜는 어떤 것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 13절 이하를 보세요.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요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 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 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말한 세상, 정욕, 마귀 이 세 가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협하는 3대 적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곳에서 얻어진 지혜는 하늘의 지혜, 참 지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에 보면 마귀의 정체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했습니다.
전에 우리는 밖으로 세상의 지배를 받고 안으로 마음의 부패와 함께 육체의 욕심의 지배를 받고 사는 마귀의 종노릇을 하며 살았었습니다. 마귀의 종이었던 우리는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 이었습니다.
세상적인 지혜는 육신적인 지혜입니다. 자연적인 지혜요, 본능적인 지혜입니다. 이것은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간 내면에 깊이 뿌리 박고 있는 타락한 인간의 본질로서 하나님의 성품과는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적인 지혜는 성령의 통제가 없을 때 활동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적인 지혜는 성령의 통제가 없을때 활동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적인 지혜는 마귀적인 지혜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얼마나 지혜로웠습니까
창세기 3장에 보면 사람을 찾아와서 유혹하는 지혜를 사용합니다. 하와 더러 마귀는 말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 하시더냐” 마귀의 지혜를 보세요. 처음에는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시켰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속삭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선악과를 보니까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하게 보여 입에는 침이 돌고 먹고 싶어 못 견딜 정도까지 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손으로 따먹었습니다.
이런 마귀의 지혜는 오늘도 우리의 마음과 생활 속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존심과 판단을 절대시 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에 마귀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땅에 속한 모든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을 우리 속에 있는 무슨 부패한 지혜,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지혜는 마귀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적인 지혜의 특성은 어떻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에 따르면

1. 시기입니다.
시기심의 뿌리는 이기적인 욕망입니다. 자기가 중심이 될 때 그 결과로 초래되는 것이 시기입니다. 시기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믿는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먼 사람보다는 가까운 사람, 모르는 사람보다는 아는 사람에 대해서 시기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서도 누가 높은 자리를 차지 할 것이냐 하는 것 때문에 시기심이 불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그렇게 미워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건 것도 그 내면에는 시기심이 있어서 였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시기했습니다. 하만이 머르드개를 시기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시기심 때문에 동생 요셉을 돈 얼마 받고 팔았습니다. 사울 왕은 시기심 때문에 나라를 위기에서 건진 영웅이요, 자기의 사윗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성경은 땅에 있는 지혜는 시기를 초래한다고 말씀합니다. 잠언 14장 30절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평화를 간직할 때는 그 평화가 육신의 생명처럼 유익하지만 시기하는 마음은 자신을 파멸하는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욥기 5장 2절에는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는 어리석은 자를 멸한다”고 했습니다.
헬라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어느 운동 선수의 친구가 챔피언이 되어 굉장한 축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 선수는 영광 받는 친구 선수의 경쟁자로서 마음속에 시기를 품게 되었고 그 운동 선수를 기념하여 세워진 동상이 보기 싫어 마음속으로 ‘저놈의 동상을 무너뜨리고 말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저녁 어두울 때 사람들이 다니지 아니하는 때를 틈타서 그 동상의 기초를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파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날이 걸려서 결국 이 사람의 생각했던 대로 일이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상이 결국 넘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상이 넘어지는 순간 이 사람이 기초 밑에 있다가 깔려 죽고 말았습니다. 시기심 때문에 동상도 넘어지고 그 자신은 깔려 죽었습니다.
호레이스(Horace)는 “시기에 가득찬 사람은 다른 사람이 번창하는 것만큼 말라간다”고 했습니다. 사무엘 존슨(Sammuel Jonson)은 “시기하는 사람은 언제나 초조하므로 조용히 누워 있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2. 다툼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14절에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세상 지혜를 가진 사람이 있는 곳에는 파벌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가정을 갈라놓습니다. 직장에 파벌을 조성합니다. 교회를 분리 시킵니다. 사회 각 분야에 당파를 만들어 분열을 초래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마귀의 자식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귀의 지혜가 활동하는 데는 어디나 다툼이 있고 불화가 있고 분열이 있습니다. 이 다툼의 영은 세상에 속한 지혜로서 가정의 화목을, 직장의 평온을, 사회의 아름다움을 빼앗아 갑니다.

3. 자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자기를 자랑하는 교만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9절에 보면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아무도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 앞에 감사할 뿐입니다. 이 구원의 감격이 없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는 사람일수록 자기의 자랑을 많이 합니다.
고린도후서 10장 12,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교하다 보면 자연히 시기하게 되고 다툼을 일으키는데 이것은 세상에 속한 지혜가 가져오는 것입니다.

4. 거짓입니다.
자기를 자랑하다 보면 때때로 과장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거짓이 동반되기 쉽습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려고 애쓰다 보면 거짓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요사이 매스컴을 통해서 선전하는 물건 중에 많은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서 물의가 생기곤 하지 않습니까 경쟁하다 보면 자연히 거짓이 생깁니다.
그러면 하늘의 지혜는 어떤 것입니까
하늘의 지혜는 세상 지혜와는 비교되는 지혜입니다. 세상에 속한 지혜는 위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속한 지혜는 어디서 옵니까 오늘 주신 말씀 17절을 보세요.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늘의 지혜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온전한 선물과 각양 죽은 은사가 다 위로부터 주어지는데 그 중에 하나가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세상에 속한 지혜와는 달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로써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1. 하늘의 지혜는 온유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13절에 “너의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의 행함을 보일지니라” 했습니다. 하늘에 속한 지혜는 온유입니다. 온유는 잘 통제 되고 절제되어 잘 다스려진 훈련된 인격을 말합니다. 온유는 나를 다스리고 지배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우리의 인격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지혜를 받은 사람에게는 온유함이 있습니다.

2. 성결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17절에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결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은 사람의 삶도 성결합니다.

3. 화평입니다.
깨끗함을 입은 싱령에는 평화가 주어집니다. 우리가 주님의 보혈로 죄 씻음 받고 사유함을 얻을 때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고 이렇게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이 사람과도 평화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죄악을 품고 있으면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한다”고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평화가 없어서 그럽니다. 그러나 죄사함을 받으면 평화가 옵니다.
세상에 속한 지혜가 역사하는 것에는 다툼과 시기뿐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지혜가 역사하는 곳에는 아름다운 화평이 있습니다.

4. 관용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관용이란 본래의 뜻은 한마디로 말해 사람의 잘못이나 죄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아니면서도 그 사람을 용납하며 불쌍히 여기고 품어 주는 덕입니다. 우리가 그 사람의 잘못을 잘한 것으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인격만은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5. 양순입니다.
“양순하다”는 말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잘 들어주고 동의하는 긍정적인 기질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을 하든지 반대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또 다른 사람과 뜻을 같이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 인격의 양순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에서는 양순한 사람에 대해서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했습니다. 양순한 사람의 기질입니다.6. 긍휼입니다.
이 긍휼이란 말과는 짝이 되어 나타나는 말이 “은혜”입니다. 은혜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호의입니다. 긍휼은 마땅히 저주받아야 할 사람을 불쌍히 여겨 저주를 중단하고 나아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동정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휼은 은혜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저주하지 아니하셨을 뿐 아니라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긍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하나님을 말씀할 때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들도 긍휼을 베풀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속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긍휼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7. 선한 열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우리 삶에 선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줄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안에서 선한 열매 많이 맺어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8. 편벽이 없다고 했습니다.
편벽이 없다는 말은 흔들림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늘에 속한 지혜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지혜는 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 이런 사람의 가치관은 견고하지 못하고 생활의 규범이나 윤리의 표준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의 이론은 매일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지혜는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는 삶의 자세로 나타납니다.

9. 거짓이 없습니다.
이 말의 뜻은 마스크(Mask)가 없다는 말입니다. 위장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아무것도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 지혜로 살아가는 사람은 여러 가지 가면이 있습니다. 삶을 편리하고 이롭게 하게 하기 위해서 많은 가면을 준비해서 때와 형편에 따라서 가면을 바꿔씁니다. 하늘의 지혜로 사는 사람에게는 가면이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본래의 모습대로 살아가며 주 안에서 만들어지는 자기의 삶을 그대로 노출시키며 삽니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긍정할 줄로 압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화평의 열매를 맺습니다.

10. 화평과 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8절을 보세요.
“화평케 하는 자는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했습니다. 여기서는 화평과 의가 강조되었습니다. 평화가 없는 의는 싸늘합니다. 회평만 있고 의가 없으면 그 화평은 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화평과 의를 똑같이 말씀합니다. 하늘에 속한 지혜는 우리를 화평하게 하며 의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성경은 구원의 지혜와 모두 삶의 지혜를 우리에게 줍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고 듣고 행할 때 하늘의 지혜가 우리의 인격과 삶을 채울 것입니다.
둘째, 기도입니다.
이미 첫시간에 말씀드린 야고보 1장 5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했습니다.
하늘의 지혜를 얻는 두 가지 원천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입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할 때 하나님을 닮은 지혜로운 인격의 소유자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혜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이 할수록 그 주님을 닮게 됩니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므로 하늘의 지혜가 풍성해서 지혜롭게 살므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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