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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광과 믿음을 주는 고난 (요 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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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요한복음 11장은 예수께서 죽은지 사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는 놀라운 기적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한 것이 바로 이 나사로를 살리고난 직후였습니다.

오늘 11장 53절에 보면, 이 날부터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이 나사로를 살리는 사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사건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며칠 후에 스스로 죽는 것입니다.

나사로를 부활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지만 아무 말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미리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 입니다.

제자들에게 아무리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설명한다고 해도 알아들 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죽은지 사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어떻게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사흘만에 살아날 수 있는가 하는 부활신앙에 대하여 잘 계시해 줄 수가 있는 좋은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늘 기억하십시오. 기적은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기적이 계시하고 교훈하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또한 성도에게 있어서 고난은 곧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훈련이 요, 하나님의 교훈이요, 하나님의 기회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 다.

 본문 3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누이는 마리아와 마르다를 말하고 사랑하시는 자는 나사로를 말합 니다.

이들은 다 주님이 지극히 사랑하던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면 항상 머무르는 가정이 바로 나사로 의 가정입니다.

이 집은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고아의 가정입니다. 오빠와 자매 둘이서 함께 살아가는 가정이라서 그랬는지 예수님께서 매우 사랑 하셨습니다.

마르다는 늘 예수님을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에 분주하였고 마리아는 늘 예수님의 발밑에서 눈을 초롱 초롱 빛내며 열심히 말씀 을 듣곤 하였습니다.

 그런데,이 집의 귀한 기둥이 되어지는,그리고 주님이 지극히 사랑 하는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여러분께 묻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도 죽음에 이르는 중한 병이 들수 있습니까 그것도 한 불쌍한 가정을 책임진 젊은 나이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명예요,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고 하는데, 사랑하시는 자에게서 건강을 가져갈 수가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면 무엇이든지 잘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사업도 잘되고, 건강하고 아이들이 공부도 잘하고 등등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습니다.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여기에 귀한 하나님의 경륜과 뜻이 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더욱 사랑하시기에 병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문 4절에서 우리는 이에 대한 암시를 받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 의 영광을 위함이요,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 려 함이라.

 주님은 아주 적극적으로 이 병에 대하여 해석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일어났으므로, 하나님의 경륜과 뜻가운데 있는 사 건이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이루어 질 것이라는 말씀입 니다.

 (예)소경-누구의 죄 때문인가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미래에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뜻을 나타내려 함이라.

 물론 주님은 나사로 가정의 현재일을 아십니다.

죽음에 이르것으로 보이는 중한 병앞에 두 자매가 괴로워 하며 고 통을 받으며 울부짖고 있는 것을 아십니다.

그 절박한 고난을 모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또한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께서 현재를 아실 뿐만아니라, 미래를 알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을 아시기 때문에 6절에 보면 이틀을 더 유하 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병은 죽어서 장사지낸바 되어서 사흘이 지날 때가 되어서야 하 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건이 되기에 주님의 발걸음은 서두름이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인간은 얼마나 초초하고 얼마나,안타깝고 얼마나 괴롭습니 까 결국은 죽어 버렸습니다. 인간편에서 보면 끝장아닙니까 그래서 남은 것은 원망과 불평뿐이요,슬픔과 좌절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누이들은 예수께서 사흘후에 그곳에 당도했을 때, 많이 울면서 주님이 이곳에 계셨으면 죽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고 은근히 주님께 대하여 불평을 털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울고 불고 원망하고 하지만, 우리 주님은 저 멀리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사랑이 변한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랑 품고 계시면서 더 크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시면서 오늘을 묵묵히 걸으시며 자신의 일 을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어쩌면 병이 깊으면 깊어질 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는 사실입니 다. 고통이 깊을 수록 하나님의 영광이 크다는 것입니다.

병중에 고쳤으면,의사가 할 수 있는 정도를 했다고 영광을 받았을 것입니다.

죽은 다음에 금방 살렸으면,어쩌다 기절한 가운데 살아났다고 할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죽어서 사흘이 되어서 시체가 썩고 부패한 가운데 살려냈으 니, 이것은 누가 봐도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된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주님은 발걸음을 늦추신 것입니다.

사랑의 오해를 받고, 불평을 듣는다고 해도 그는 그것을 영광의 순 간까지 참으신 것입니다.

 (예)십자가의 사건도 생각해 보십시오.

달려죽으신 것도 물론 고통이요, 아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 들이,능력이 무한하신 자가 악흠속에 주저앉아 있어야 하고,사람들 의 비웃음속에 있어야 하고, 무질서속에 그냥 있으면서 침묵가운데 죽어가야 할 때는 매우 고통스럽고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이 승리하는 기간에는 많은 오해가 있고 아픔이 있지만, 주님의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기 때문에 참을 수가 있었고, 오히려 저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나이가 많으신 분들! 정신적으로 성숙하신 분들은 멀리 보는 능력이 있습니다. 경험과 지식을 통해서 앞을 봅니다.

자녀들이 울며 보채며, 고통스러워 하는 일도 그 일이 지나고 나 면 반드시 영광이 있을 것을 보기 때문에 오히려 미소를 지으면서 참으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어떤 일은 아이들이 기고만장하고 잘 되는 것으로 알아서 좋 아하는 것도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보면서 자꾸 경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어른과 아이의 차이입니다.

 오늘 잘 된다고 교만하지 마십시오.

오늘 병들고 실패했다고 좌절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의 눈으로 보십시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귀결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믿으십시오.

그 분을 신뢰하고 따라가십시오.

주님이 보시는 영광을 같이 바라보며, 믿음과 인내와 사랑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11절에 보면,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성경은 죽음을 잠으로 표현한 곳이 많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깨어남을 전제로 한 표현입니다.

주의 영광중에 부활할 것을 알기에 하는 표현이 아닙니까

또한 깨어남을 전제로 한 평안과 휴식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죽음이란, 부활의 깨어남을 위한 하나님의 길목이 되는 것 이요, 고생과 수고를 다 놓고서 편안히 휴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죽음을 무서워 할 것없습니다.

잘 믿는 분들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면 마치 잠을 주무시는 것처럼 그렇게 편안하고 고요하게 돌아가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영광중에 주님을 뵈올 것이라고 하는 미래에 대한 굳은 확 신속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런 귀중한 말씀을 하십니다.

15절에,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이는 너 희로 임게 하려 함이라.

 이 나사로의 병과 죽음의 사건이 제자들로 하여금 믿음을 가지게 하는 중요한 유익을 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알고, 부활의 신앙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질병이 무조건 나뿐 것이 아닙니다.

질병은 겸손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질병은 평소 건강의 소중성을 깨닫게 할 수 있습니다.

질병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질병은 더욱 하나님만을 의지 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질병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믿음을 더하게 할 수 있습니다.

죽음도 사람들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기도 합니다.

 (예) 믿고 죽은 사람의 모습과 그 장례식을 보고 예수믿는 사람들 이 많이 있습니다.

그 죽음의 모습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고, 그 장례의 아 름다운 모습속에서 나도 저렇게 죽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사로의 사건은 진정 제자들에게 부활의 믿음을 더해주는 사건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면서 독생자를 주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엿보고,그리고 부활의 신앙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5,26절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 느냐 이에 정말 믿음으로 대답하려면, 썩은 시체가 일어나는 것을 보 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죽음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 입니다.

 우리에게 되어지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우리가 믿음 을 더욱 성숙하게 가지게 하는데 모두 연결되었음을 날마다 기억 하고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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