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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시대 새 생활 (창 0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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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사건은 노아 시대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이제 홍수가 끝났습 니다. 위기가 지나갔습니다. 위기의 종식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제 새 시대를 살아가야 할 책임이 노아에게 주어 졌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주님의 명령이 하달됩니다. 이 명령 은 하나님께서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기대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본장에서 노아 시대를 거울로 삼아 급변하는 세 상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삶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살펴보 겠습니다.

 축복을 누리는 삶

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사람이 한번 불행을 겪게 되면 좀처럼 낙관하는 인생관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불행을 겪으면서 그 불행에 익숙해지기 때문 입니다.

특별히 우리 민족은 행복보다는 불행에 더 익숙할 수밖에 없는 고 통과 한(恨)의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그러한 삶의 태도를 드러내 는 보기로 대중 가요 가사를 들 수 있습니다. 자주 쓰이는 노래 말은 사랑, 눈물, 이별 따위인데, 노래 내용이 슬픈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사를 점철하는 불행 그 자체는 진짜 문제가 아닙니다. 심각한 문제는 불행을 당 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그 상태에 머물러 있으려는 심리입니다. 이 것이 진정한 불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일간의 홍수는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홍수가 휩쓸고 간 세 상은 황량하고 파괴된 상태였을 것입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마을은 거의 쑥대밭이 되다시피하는데 40일간 물에 잠긴 세상은 어떠했겠습니까? 노아는 살아남기는 했으나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 막했을지 모릅니다. 이때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내 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 때문에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지 만, 그분의 진정한 목적은 인간에게 복 주시는 것입니다. 심판으 로 겪었던 온갖 불행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2,3절은 노아와 그 아들들 주변에 얼마든지 복된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시는 말씀입니다.

땅에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 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 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이 새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내리신 복을 누리며 살기 위 해서는 인간이 수고하고 땀 흘려야 합니다.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 며 그 복을 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 리에게 행운이 굴러들어올 것을 약속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리신 복을 누리기 위해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해야 합 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에게 복 주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 한 환경이나 시대가 아무리 암울하고 고통스럽다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복된 삶이 있음을 믿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 아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삶

전쟁을 치르고 나면 사람들이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생깁니다. 소위 인명 경시 풍조가 대두합니다. 홍수 심판을 겪은 노아도 그럴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인간에게 육 식을 허락하셨습니다.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3절).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사냥을 해야 하고 동물을 죽여야 하는데 그 러한 습성이 마침내 사람의 목숨까지 함부로 다루는 잔인성으로 발 달할 수 있음을 하나님께서 예견하셨습니다. 6절 말씀을 보십시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 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사람을 죽이는 자는 죽어 마땅합니다. 살인은 가장 큰 죄입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까닭입니다. 사람은 하 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 십니다. 따라서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 이외의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고귀한 것입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산업화되어 갈수록 생명 존중에 대한 의식이 줄 어듭니다. 인간을 기계의 한 부품 정도로만 생각하는 태도가 하나 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떨어뜨립니다. 그 결과 아무 이유나 원인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회를 원망하며 불특정 다수를 해치기도 합니다. 우리 는 그런 끔찍한 사건을 통해 각종 사회악과 점점 대담해지고 있는 인간의 잔인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 생명의 위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 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만나고 짜증 나는 일도 있게 마련입니 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무한히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 로 지음받은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죽이는 것은 물론 이고 사람을 저주하는 것도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약 3:9,10 참조).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말씀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39).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

이웃 사랑은 노아의 홍수 심판 이후에 전개되는 새로운 시대를 살 아가는 자들이 지켜야 할 중요한 명령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전쟁이 끝나면 세상에 허무주의가 팽배하게 됩니다. 인생의 허무를 느낀 사람들은 하나님께 반항하기 시작합니다. 전쟁 직후에 쓰인 소설들을 보면, 언제나 신(神)에 대해서 대단히 부정적인 태도 를 취합니다. 홍수 심판 이후의 노아 시대도 그와 비슷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과 약속을 맺기로 하십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비록 인간의 죄악 때문에 세상을 심판했지만, 여전히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 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이 마치 자식을 징계하는 부모의 심정처럼 느껴집니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채찍질하는 마 음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새 시대의 출발선에서 노아와 언약을 맺습니다. 이 언약은 작게는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는 의미이지만 크게는 변함없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사랑의 선언입니다. 그래서 이 언약은 사랑과 긍휼의 언약입니다. 은혜의 언약입니다.

이 언약의 징표는 무지개입니다. 심판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무 지개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희망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이 무지 개를 통해서 고난 뒤에 오는 복된 삶을 보여 주십니다.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약속하십니다. 희망을 품게 하십니다.

 우리의 삶에는 고통과 심판의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다 지 큰 두려움 없이 고통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지개 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 찬 미래가 보장되어 있음을 알 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 랑하는 신앙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삶이 고통스럽게 느껴집니까? 하나님이 노아와 맺으신 무지 개 언약은 우리에게도 해당됨을 아십시오. 현재 일로 실망하지 말 고 약속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사랑하십시오. 당신의 삶에도 비온 뒤의 무지개처럼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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