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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고난 (막 15: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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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삶의 본질을 묻는 모든 종교나 철학에서 다루고 있는 인간 전체에게 공통된 문제이다. 특히 예수의 고난과 죽음은 바 로 우리 인간의 문제이며, 복음서에서와 같이 인간에게 중요한 질문일 수밖에 없다. 복음서에서 십자가에서의 예수의 고난과 죽 음에 대한 관심은 단지 예수의 삶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에 더 큰 관심을 기우려야 한다. 고난 이란 라틴어 'patior'에서 왔으며, 그 의미는 고통을 당하다, 견 디어 내다등의 의미를 가진다. 또한 고난(苦難)은 쓰다, 괴롭 다, 가난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물론 영어에서는 열 정(passion)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예수의 고난에 있어서 대사제 들은 자신의 권한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또한 대사제들은 가 까이 오고 있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환상이 초래할 위험한 결 과로부터 구하려고 하였다.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은 이 세상의 고 통에서 영생의 평화에로 눈을 끌어 올리기 위해 이중적인 영역 을 추구하였으며, 예수의 제자들은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그 분의 마지막 혼돈과 공포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하였다. 결국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라는 비극은 이러한 상황과 시간이 만들어낸 거대 한 소용돌이 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참으로 이 사건의 발단은 자신의 이득과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킨 그 체 제였다. 그러나 예수는 인간의 영혼을 무시하는 그 체제에 대항 한 하나님의 아들로써 로마제국의 잔학성과 무자비의 상징이었 던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겪으면서 하늘을 향해 기원하였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누가23:24) 예수의 고난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신앙인들의 고통과 희망 속에 살아 있는 현재의 이야 기이다. 마가복음은 열려진 말미(open ending)를 통해 이는 부 활의 전조로써 이해하고자 하였다. 신앙의 사건으로써의 부활은 그리스도인에게와 비신앙인 모두에게 이해 되어질 수 있는 명백 한 사건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신앙의 본질과 그 의미가 무엇 인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1. 예수의 죽음은 타인을 위해 살았던 그의 삶의 절정이다. 근 본적으로 예수의 죽음은 유다의 배신이나 불가사의한 횡포에 의 한 것은 아니다. 예수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죽음의 길을 통해 인간적인 사회구조의 변혁을 요청한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예수가 꿈꾸던 그 나라와 그 의는 당시의 사 회적 체제와는 일치할 수 없었으며, 그 지배적 계층에게는 걸 림 돌일 수 밖에 없었다. 예수의 목회 활동의 결과는 타인을 위해 생명을 바친 영적 투신의 결과이다. 예수는 연약하고, 병들 고, 쓸모없이 버려진 자들을 향한 생명의 목회와 진리의 선포를 통해 그의 구속적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의 제자됨은 예루살 렘을 향한 그의 가르침에서 발견된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 것을 잃음(막8:5), 가장 작은 자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됨(막 9:35,10:44), 섬김을 받기 보다 섬김(막10:45), 많은 이를 위해 생명을 바침 (막10:45) 등 십자가를 지는 삶이란 결국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여기에서 예수의 정체가 드 러난다. 바로 수난 사화를 통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수난은 바로 인류를 위한 사랑 의 행위이며, 많은 이의 죄를 위해 흘리는 피이며 언약의 피이 다.(막14:24) 우리는 예수의 재판 가운데에서 이사야의 예언에 나 타난 침묵하는 야훼의 종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러한 성서적 표상 속에서 예수의 죽음은 많은 이를 위한 죽음으로 선포되며, 예수 자신의 목회활동의 목적과 조화를 이룬다.

 2. 죽음으로부터 삶으로의 축제를 통해 예수는 고통받고도 승리하는 사람의 아들로 선포된다. 사람의 아들(Son of Man) 로써의 예수는 고통 받는 의인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구약의 전 승은 의인이 고통을 받으나 나중에는 하나님에 의해 영광을 받 을 것이라는 전형을 가지고 있음을 마가는 알고 있었으며 이를 수용하였다. 예수의 죽음은 복음의 마지막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승리를 체험하기 위한 극적인 신앙의 종국이다. 예수의 사역에 있어서 우리는 악에 사로잡힌 인간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 와 악한 세력에서의 정면 대결을 통한 악의 추방을 경험하게 된 다. 하나님의 힘은 악의 힘을 압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고난은 불의와 악의 세력에 대한 정면대결을 통해서 일어나는 부활의 전거이다. 바로 부활의 온전한 체험은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는 이들에게 약속된 것이며, 이를 이루는 자들은 부활이 실현될 것 이다.

 3.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현현(顯現)이며, 하나님의 힘은 약함 속에서 드러난다. 하나님의 아들로써의 예수는 그의 힘을 드러냄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재판정에서 보여준다. 오 히려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이는 사건, 즉 그의 수난과 죽음을 통 해 드러난다. 여기에서 우린 바울의 신앙과의 밀접한 관계를 보 게 된다. 예수의 죽음은 비신자들에게는 헛되이 생명을 낭비했다 거나 패배나 좌절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 또한 바울의 말대로 인간의 눈에는 어리석음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지혜요, 약함이 강함이 된다.(고전 1:25-31) 마가에 있어서 십자가의 지혜에 대 한 두 측면을 살펴볼 수 있는데, 첫째로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 해 인간적인 지혜를 혼란 시킨다. 즉 인간적인 관점에서 십자가 는 실패, 부끄러움, 끝, 궁극적인 좌절이지만, 이는 오히려 예수 의 궁극적인 삶의 가치를 제시한다. 그의 목회활동에서 보여진 봉사, 자기 초월, 이타적 존재, 생명을 바침이 확연하게 드러난 다. 바로 십자가는 남에 대한 억압이나 남용되어지는 힘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나타난다. 또한 다른 하나님의 모습을 제시한다.

마가에는 하나님의 현현이 세번(막1:11,9:7,15:39) 드러나는데, 앞 의 두 번은 하늘의 소리로, 마지막은 이방인 로마 백부장을 통해 드러난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그 분에 대한 세상의 고정 관념 즉 완전하고, 전지전능하며, 두려운 하나님 개념을 무력화 시킨다. 아무리 비참하고 무력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현존은 드러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현존을 피할 수는 없다.

예수의 죽음 거룩한 계시의 사건이다. 예수는 신비 그 자체이며, 그 나라의 근저 역시 신비인 것이다.(막4:10) 하나님은 능히 예 견되거나 쉽게 조정되어질 분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을 초월해 계신 하나님이시다.(God above God) 우리는 이 하나님을 올바로 인식하여야 한다. 그 분은 고난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승리의 길 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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