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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에주리고 목마른 심령 (마 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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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을 가르켜 참 신앙의 시금석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예리 한 신앙의 시금석이 되는것이 바로 오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팔복의 여 덟가지 성품 가운데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이 가장 절정에 달한 성품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거의모든 사람이 행복이라고 하는것에 주리고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그 런데 비극적이고 가슴아픈 일은 행복이라고 하는것이 그들을 피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은 사람들의 기대와 어긋나게도 불행이라고 하는 것을 향 하여 치닫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주리고 목마름의 대상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이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입 니다. 의로운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순서 를 뒤바꾸어 버렸습니다. 즉 의에 주리고 목마르기에 앞서 행복이라고 하는 것에 만 눈이 어두워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가슴아픈것은 신자들 마져도 행복에 대 한 불확실한 가치관으로 인하여 참 신앙이 주는 만족한 삶,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불신자나 다름없이 혼돈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1. 주리고 목마른 것이란 어떤것 입니까 1)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적인 욕망입니다.

 배고품과 목마름이 있기 때문에 적당한 때에 적당한 음식과 물을 마시고 육체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적당하지 않은 때인데도 때를 못가려서 비 만인 사람도 있다-누구라고 이야기 할수는 없지만 ) 이처럼 영적 생명도 그 유 지방법은 동일 합니다. 주리고 목마름을 채움을 통해서 유지합니다. 즉 얼마나 내가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가를 통해서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에게 의 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다는 것은 내 영혼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구원 받은 증거이기도하고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 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얼 마나 건강하냐에 따라서 주림과 목마름의 정도가 결정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절실한 궁핍을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절실한 궁핍이란 무엇입니까 당장 채워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따르 는 궁핍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배고파서 죽겠다 목말라서 죽겠다 이겁니다.

이렇게 육체적인 갈증과 배고픔이 고통을 주듯이 영적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름 도 영적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3) 계속적으로 궁핍을 느끼는 것입니다.

 한번 먹고 마시므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림과 목마름은 인간의 계속적인 본능입니다. 인간은 이 본능을 통해서 생명을 유지 합니다. 만약에 주림과 목마 름의 본능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생명은 유지되지 못할 것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마셔도 마셔도 또 배고프고 또 목마르기 때문에 우리가 삽니다. 마찬가지 로 영적으로 살아 있는 신자는 계속적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름을 느끼게 됩니다.

 2. '의'란 무엇입니까 1) 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것.

하나님과 우리의 바른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창조주와 피조물, 왕과 신하, 주 인과 청지기,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녀관계로 성경은 말한니다. 하나님을 하 나님의 자리에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 우리의 이웃이 누구 입니까 교회의 모든 성도들입니다. 청년부의 모든 형제들 입니다. 학교의 모든 친구들입니다. 직장의 모든 동료들입니다. 우리 주위의 모 든 사람들 입니다. 이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관계, 먼저 인정하는 것,받아 들 이는 것.

 2)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는 것.

 3) 거룩해 지는 것

즉 예수님을 닮는 것, 예수님 안에 사는 것 한마디로 예수님처럼 사는 것 입니 다.

 3. 성경이 요구하는 의의 수준.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의'는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예절 바르고 도덕적으로 훌륭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주님앞에 인정 받을 수 있는 의는 100%의 완전한 '의' 입니다. 이 것 이 하나님앞에 설 수있는 조건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1%의 불의도 용납 하실 수 없는 공의로우신 재판장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생기죠 하나님은 100% 의를 요구하시는 데 우리 속에는, 어느 누구도 100% 완전한 의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거 야단입니다. 영원한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 다. 이렇게 내자신에게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가난한 심령이고 그것 때문에 슬퍼하며,가슴아파 하는 것이 애통한 심령이며 어 떻게 하면 하나님의 '의'를 가질 수 있을까 사모하는 것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의'를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의를 선물로 주시 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은 값없는 구원을 제공하기 전에, 불가능한 것을 요구 하여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참모습을 깨닫게 함으로 절망감을 갖게합니다. 그 후 참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값없이 주어지는 의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1) 어떻게 하면 자신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까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라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누더기 같은 것인가를 자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 점점 더 실망하고 있는가 하는 것 입니다. 날이가면 갈수록 십자가의 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까 앞서간 훌륭한 신앙의 선배들의 뒤를 따라 살고싶은 욕망이 있습니까 그 들과같은 삶의 자세로 인생을 살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까

2) 어떻게 하면 더욱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의'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는 없읍니다. 그러나 '의'에 반대 되는 것을 피할 수는 있습니다.

죄 짓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 이 죄인 것은 다 압니다. 그러나 하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 역시 죄인 것은 모르 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적 의욕을 무디게 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이것은 죄라고 말할 수는 없 지만 피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식사 하기 전에 달콤한 사탕이나 과자를 먹으 면 식욕이 떨어지듯이 우리 생활 속에는 우리의 영적인 욕구를 해치는 것들이 많 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불건전한 오락, 지나친 T.V시청, 비건설적인 논쟁, 술담 배등 이런 것들 때문에 영적인 일들이 방해 받는다면 마땅히 절제하고 피해야 합니다.

의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의를 항상 염두에두고 이것을 묵상하며 이것을 얻기위해 날마다 힘쓰고 애씁니다. 말끔,기도,교제에 최선을 다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최대로 투자해야 합니다. '시간없다' '바쁘다'란 핑계로 자신을 합리화 해서는 않됩니다. 정말 시간이 없습니까 정직하게 자신 을 돌아봅시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귀중 히 여기는 마음이 작아서 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바쁘셨던 분이신지 복음서를 보십시오. 또 그 바쁘셨던 예수님의 기도생활을 살펴 보십시오 바쁘다고 핑계하 지 못할 것입니다.

 ( 맺는 말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만이 행복한 자입니다. 여러분은 왜 참 행복을 누리지도 못하면서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습니까 왜 의를 찾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 자하지 않습니까 시간이 없다고 핑계하지 맙시다. 진정 주님이십니까 진정 하 나님이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립시다. 나의 첫 시간 , 나의 귀중한 시간 , 아 니 나 자신을 주님을 위해 드리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삽시다. 199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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