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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나의 관계 (마 0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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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의 첫 부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모든 기도의 모델로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주기도문)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은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과 기도하는 그의 백성과의 관계를 선언하는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모든 죄와 형벌이 가리워지고 하나님 나라의 의로운 백성을 새롭게 탄생된(거듭난)대상 뿐입니다(요3:1-8).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호칭하면서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아바(“아버지여”라는 호격명사)라고 부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롬8:15-16). 따라서 주기도문은 지난주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과 자신과의 정상적인 관계 곧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만이 구원받은 사실을 감사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생명, 재산, 명예 등)이 달려 있음을 고백하는 진실한 찬양이요 신앙표시인 것입니다.

또한 주기도문의 첫 시작이 “우리 아버지”로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위치확인이며 동시에 모든 기도의 내용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첫째 부분은 ①“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원하는 청원과 ②“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청원 ③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결국 첫째 부분은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을 생애 최고의 기쁨으로 삼겠다는 하나님 자녀들의 진실된 삶의 자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기도문 둘째부분의 세가지 청원 역시 하나님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①현재의 삶에 필요한 양식이 아버지로부터 공급됨을 고백하며 ②과거의 허물과 죄의 용서가 아버지로부터 이루어지며 ③장차 미래의 삶에 있어서의 모든 시험과 악으로부터 구해 주시고 안전하게 돌보아 주실 분도 역시 아버지 하나님이 심을 고백하는 것이 주기도문의 둘째 부분의 내용입니다. 이처럼 주기도문의 여섯 가지 청원(기원)은 자신의 삶이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 손에 달려 있으며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자비를 통하여 자신의 삶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웃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알리는 생애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신앙고백입니다. 따라서 주기도문은 막연히 기도시간이나 예배시간에만 암송하는 암송어귀나 주문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고백하며 사는 실재적인 삶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의 첫 시작이 “우리 아버지”로 구성된 것은 하나님을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심의 부분에 올바르게 위치해 놓음으로써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향하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모든 기도와 간구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이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William Barclay, 윗글 157쪽. 기도하는 자의 가장 큰 잘못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는 자기 중심적인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이라고 바클레이는 강조했다.
그 반대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자신의 생활 속에서 성취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거룩한 삶이 계속되기를 소원하는 의지적 신앙고백인 동시에 하나님의 모든 다스림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순종과 복종의 표시입니다.

우리 아버지

“아버지”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가 “생명의 기원으로서의 아버지”(Paternity)입니다. 이것은 한 아이의 출생과 그 출생의 결과로 성립되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우리 기독교만이 갖는 독특한 신(God)관념은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고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아버지(Patherhood)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의 랍비들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아버지는 이스라엘 백성을 낳은 조상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시고 양육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이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의 아버지가 “되셨다”는 사상은 구약성경의 한 주제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가장 큰 긍지와 자랑으로 여기고 그 아버지되신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헌신을 다짐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사64:8).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라(렘31:9).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의 자녀들이라(신14:1).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냐(신32:6).

첫째,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 세계를 자신의 삶 속에 연결하는 친밀감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천국에 계시지만 또한 땅과 하늘을 포함하여 어디든 그의 영광으로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로서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 계셔서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심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대상이십니다. 그리고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미리 아시고 우리의 간구에 의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다정하신 아버지이십니다(마6:7).

둘째,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다는 믿음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심판과 용서(회개하는 자에 대한)를 확신케 해 줍니다. 죄에 대해 심판하시는 아버지는 회개에 대해 용서해 주시는 자비의 아버지이십니다.탕자의 비유(눅15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 곧 집을 나간 아들이 집에 돌아오기를 매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다는 생각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자녀된 도리로서 마땅히 순종해야 할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게 됩니다.(요일5:2)

네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고백은 인류의 형제애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아웃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야 할 의무를 가르쳐 줍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면 우리의 이웃들은 모두 우리의 형제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 이념은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된신다는 확신입니다. 따라서 주기도문을 시작하는 순간, 편협한 민족주의, 인종주의, 계급차별, 출신지방 선호사상, 파벌주의 등은 분명하게 배격되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주기도문을 따라 기도하면서 이웃과 형제와 특정인을 미워한다면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는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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