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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드로 가정의 축복 (마 08: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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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크리스마스때면 선물교환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선물을 내놓고 번호를 타서 뽑힌 번호의 선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었는데 거기에는 굉장히 큰 선물도 있고,아주 작은 선물도 있었습니다.어떤 선물은 상자는 큰데 내용은 별것 아닌 것도 있습니다.그런데 어떤 것은 아주 작고 포장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데 내용이 좋습니다.
이 세상의 축복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저 집 참으로 성공했다.축복을 받았다.”고 하면서 내용을 보면 형편 없는 것이 많습니다.반대로 “저 집은 저주 받았어.”라고 하면서 나중에 보면 그것이 바로 축복일 수가 있습니다.베드로의 가정에 온 축복이 바로 이런 것 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때로는 재앙이라고 하는 옷,환란이라고 하는 옷,역경이라고 하는 옷을 입고 오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포장이 좋다고 해서 내용이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이 세상에서 성공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성공이 아닌 멸망을 가지고 오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또 겉으로 보기에는 재앙 같고,저주 같고,환란 같은데 나중에 내용을 보면 결과적으로 축복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1.베드로 가정의 축복
베드로의 장모가 베드로의 가정에 함께 살았는데 그 장모가 열병에 걸려 있었습니다.이 당시의 용어가 의학적인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열병이라고 했고,또한 마태가 의사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열병이라고 기록을 했을 것입니다.그런데 이 질병으로 인해서 이 가정에 네가지 중요한 축복이 왔습니다.
첫째는 이적을 체험하게 되었슴나다.이적은 역경 속에 빠졌을때,고난 속에 빠졌을때,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헤어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두번째로 그 질병으로 인해서 가족간의 유대가 강화되었습니다.세번째는 이것으로 인해서 베드로는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베드로의 장모가 그 이전에 예수를 믿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께 수종들 수 있는,예수님을 섬기고 봉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신유의 비결
첫째는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한 데서 비롯됩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마8:14)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니까 그 집에 복이 왔습니다.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여러분 가정에 예수님이 들어가면 복을 받습니다.여러분의 직장에 예수님이 들어가시면 그 직장이 복을 받습니다.
베드로의 가정은 예수님을 초청했습니다.왜 초청했을까요 본문의 내용을 보면 병 고치기 위해서가 아니라,예수님을 대접하려고 초청을 했습니다.집에 우환이 있는데 손님을 초청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그런데 시몬 베드로는 그의 선생님인 예수님을 초청했습니다.이것이 첫번째 신유의 비결입니다.
예수님을 초청하고 영접하면 그때 역사가 나타납니다.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은 어디서나 역사가 나타납니다.
두번째로 그 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가신 것이 아니라 보셨다고 했습니다.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마8:14)
이것은 주님의 눈에 띄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출세하는 방법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입니다.그 방법은 첫째 옷을 잘 입어야 합니다.둘째 연예인처럼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세번째로 돈이나 권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눈에 띄이겠습니까 방법이 있습니다.그것은 기도입니다.기도하면 예수님의 눈에 띄입니다.예수님의 눈에 띄면 그때 예수님이 축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주님의 손이 닿아야 합니다.
“그의 손을 만지시니”(마8:15)
왜 주님이 만졌을까요 그 당시에는 그것이 교제하는 방법이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의 손은 단순히 교제의 손만이 아니라 능력의 손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예수님의 손만 닿으면 다 나을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네번째 말씀으로 쫓아 내셨다고 했습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마8:16)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전도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합니다.자신없어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만이 자신이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누가 감히 남의 마음에 구원을 주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인간의 지혜나 말로는 남을 설득 시킬수도 없고,감화 시킬수도 없으며 더군다나 예수 믿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별것 아닌것 같지만 이 말씀이 마음에 닿으면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인간의 지혜를 가지고 예수 믿게 하려고 하지 마십시요,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가정에 네가지 비결,신유의 은사가 나타나는데 먼저 주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그의 집으로 초청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주님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육안으로 보셨지만 오늘의 예수님은 육안을 가지신 예수님이 아닙니다. 세번째로 주님의 능력의 손이 닿아야 합니다. 그 손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권능의 손입니다. 그 손이 지금도 우리에게 와 닿습니다. 또 말씀으로 쫓아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닿는 곳마다 이런 역사가 나타납니다.

3.구약의 인용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8:17)
이 구절의 난하주로 이사야 53장 4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교해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이 앞 부분에 있는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이사야 53장4절에는 ‘우리의 질고를 받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다’고 했는데,마태복음 8장17절에는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셨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순서도 바뀌었고,단어도 다릅니다. 그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 당시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용했던 성경은 히브리 성경이 아니라 헬라어로 번역한 번역성경이었습니다.그러니까 용어가 조금 다릅니다. 게다가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받아서 기억한 것을 중심으로 해서 했기 때문에 순서에 차이가 있습니다. 어쨌든 이 말씀은 이사야서 53장 4절의 고난의 종으로서의 메시야에 관한 내용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럼 왜 여기 이 말씀을 인용했을까
마태는 이사야 53:4절을 인용함으로서 ‘구약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가 되어졌다,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야이고, 우리들이 섬겨야 할 그 메시야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구약에 있는 말씀을 인용했던 것입니다.예수님은 메시야 입니다.그것은 그의 말씀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당시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은 말을 할 때 권위있게 보이려고 남의 말을 인용하였지만 에수님의 말씀은 전혀 달랐다고 했습니다.예수님의 말씀은 권위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의 행하심을 보아서 알수가 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병을 예수님이 고치신 그 내용을 기록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구약성경의 앞으로 오실 것이라고 약속되어진 메시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지금도 믿는 자,영접하는 자에게는 귀한 축복이 임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우리에게 질병과 고통과 환란이 다가올 때 이것을 저주나 재앙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주님만 모시면 그것이 바로 축복이 되고 하나님의 귀한 은혜가 됩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가진 문제가 무엇이든 주님 앞으로 나아와야 해결합니다.마지막으로 고침 받은 자는 반드시 주님의 수종을 들어야 게속적인 복을 받습니다.은헤를 헛되이 받지 맙시다.은혜를 받고 봉사하지 않는 것은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승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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