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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가 받는 고통 (욥 03: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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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늘 고통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삶 속에 기 쁨과 슬픔이 항상 존재하는 것처럼 고통도 늘 따라다닌다는 말입니다. 옛 말에 지어지앙(池魚之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못의 물로 불을 끄면 물 이 말라서 물고기에까지 재앙이 미친다는 뜻으로 어떤 곳에서 생긴 재앙이 거기와 직접 상관이 없는 곳에까지 미친다는 말입니다. 욥에게 닥친 재앙 은 욥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청천 벽력과도 같았고 그 고통과 재앙은 끝도 없는 것 같았고 너무나 지독했습니다. 성도가 받 는 고통도 이처럼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갑자기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리고 고래심줄처럼 질기고, 전갈처럼 혹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욥은 자신 이 받는 고통이 너무나 극심한 것이기에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여기 서 우리는 욥에게 닥친 고통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봄으로 우리가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합니다.

 1.혼란 상태에 빠뜨리는 고통이었습니다.

 갑자기 큰 화(禍)를 당하게 되면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게 되고 때로는 정 신이상적인 증상까지 보이기도 합니다. 욥도 극도의 환난 가운데서 정신적 으로 너무나 많은 어려움을 받고 있습니다. 욥은 '곤고한 자' '마음이 번뇌 한 자'가 되었습니다. 욥은 항상 이웃을 돕고 권면하는 입장에서 살아왔으 므로 자존심 또한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런 욥이 진물이 줄줄 흐르는 악 창이 난 자신의 몸을 볼 때 어떠했습니까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잠18:14)라는 말씀 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오 헨리가 쓴 '마지막 잎새'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죽음을 눈 앞에 둔 환자가 화가가 그린 모조 잎사귀를 자신이 생명과 동일시하며 생명을 연장 해 나간다는 이야기로서 비바람을 견디는 가짜 잎사귀를 진짜 잎사귀로 생 각한 환자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마음의 상태는 중요합니 다. 이처럼 성도에게 있어서 마음의 상태, 곧 신앙의 상태는 올바른 삶의 바탕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들 어 바다에 던지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단 질병이나 기타 심각한 곤 경에 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죄악이 가득찬 현대 사회를 살아가자면 혼돈 속에 빠질 때가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평소 (믿음에 굳게 서는 훈 련)을 함으로써 위기 상황에 처해도 혼란에 휩싸이지 않고 初志 一貫 신앙 의 정도를 걸어가야 합니다.

 2.자포자기에 이르게 하는 고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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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9kM를 완주해야 하는 마라토너들에게는 늘 포기의 유혹이 뒤따릅니 다. 극도의 고통으로 인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로에 그냥 드러누워 버 리고 싶은 충동을 수없이 경험합니다. 이처럼 심한 고통은 사람으로 하여 금 자포자기에 빠지게 합니다.

욥은 (22절)'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고통으로 인해서 무덤을 찾는 자에게는 삶의 의지나 극복 의지가 있을 리 없습니다.

굳이 토인비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인생 여정 자체가 곧 무수한 도전과 극복이라 하겠습니다. 어떤 목표를 정해 놓고 전진하다보면 온갖 장애와 유혹이 길을 막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난관을 굿굿한 인내로 돌파해 나아 갈 때, 소기의 목표에 달성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난 삶을 회고하면서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이제 면류관이 기다린다'고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욥과 같은 처지에 놓인 다면 우리 역시 죽고 싶은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생명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 중 하나입니다. 노아시대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 사 120년의 유예기간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해서도 엘리야를 살리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백성의 생명을 귀히 여기시며 그들이 당신의 일에 충실하길 바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자포자기해서는 안되겠습니다.

 3.복합적으로 압박해오는 고통이었습니다.

 욥이 받은 고통은 우리가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가벼운 것이 아니었습니 다. 옛말에 엎친데 덮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 니다. 모든 재산은 잃어 버렸고 부인은 비웃고 친구들은 질책합니다. 욥 자신은 극심한 악창에 시달립니다. 이것은 가히 메가톤급의 재앙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고통속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극심한 고통 도 아울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뒤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받는 극렬한 고통은 하나님께서 우리 에게 주시는 연단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극렬한 고통 뒤에 따르는 의의 면 류관을 바라봅시다.

 성도 여러분! 고진 감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나면 안락이 온다는 말입니 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계속 고통 가운 데 놓아 두실 리가 없습니다. 꿈꾸는 자라는 별명을 가진 요셉은 시시각각 밀려오는 시련을 참고 이겼을 때 애굽의 총리가 되어 큰 구원을 베푸는 자 리에 오르는 복을 받았습니다.

고통 가운데서 주의 은혜를 바라보며 꿈을 가지는 자가 됩시다.

 예화 고난 뒤에 오는 번영 한 선교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상담가로서 많은 사람들이 하는 질문가 운데 가장 많은 것은 삶이 진정 공정한 것입니까라는 질문이다. 고통받 는 욥이나 바울의 고난을 보고 삶이 공정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고통의 앙금으로부터 위대한 승리는 솟아나는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매우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슬픈 일들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께로 더 가까이 인도하시기 위한 그분의 섭 리이다. 따라서 비록 어렵고 힘든 일들이 우리를 에워싸서 하나님께로 나 아가는 길을 막을지라도 우리는 그분께서 밝혀주시는 빛을 따라 그분께 더 욱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만약 우리가 가는 길이 언제나 밝게 빛난다면 우리는 스스로 교만해져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며 위로하시고 구원하시는 능력을 잘 알 수 없을 것이 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고난은 더 큰 번영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시기 위함이며 우리로 하여금 고통 중에 사셨던 그리스도를 따라가게 하기 위해 서이다. 그러니 불신앙의 질문을 하지 말라. 물결이 빠르게 흐르는 강가에 앉아 손이나 발을 그 물 속에 담가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아마 당신 은 얼마나 빨리 그 물이 지나가고 그 자리를 또 다른 물이 채우고 있는가 를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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