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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재난을 맞이하는 태도 (욥 0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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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자신의 당하는 고통을 저울에 달아 보았으면 합니다(2). 그리고는 바다 모래보다 무거울 것이라고 합니다(3). 바다의 모래는 무수하고 셀 수 없을 만큼 자신의 고통은 견디기 힘든 무거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엄청난 고통을 당할 때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고통은 겪어본 사람이 아 니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1-3절)엘리바스는 욥이 범죄했하지는 않았지만 절망하였던 것과 고통을 인내하지 못함을 책망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욥 은 엘리바스의 충고처럼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 분인 것은 인정하지만, 친구의 부당한 비난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욥은 자신이 경험하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충고하는 친구에게 어처구니 없다는 뜻으로 이같은 독백으로 자신의 고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욥은 엘리바스의 지적에 대해 자신이 '불평하는 이유'를 설명합 니다. 욥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이 (전능자의 살)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고통이 너무나 아프고 괴로와서 견디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들나귀나 소는 먹을 풀이 있으면 불 평하지 않는 것처럼 욥 자신도 짐승과 마찬가지로 본능적으로 닥아오는 고 통에는 불평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니다. 뿐만 아니라 음식 맛이 없을만큼 자신의 고통이 크다고 친구들에게 알립니다.(4-7절)

1.자신이 경솔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허물과 죄악을 짓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 다. 그러므로 스스로 죄없다고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하나 님 앞에서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자세보다는 자신의 허물을 먼저 돌아 보고 회개하는 태도가 요청됩니다.

우리는 에서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여 더욱 크고 중요한 장자의 축복권 을 쉽게 포기한 것을 압니다. 사단은 인간이 약해질 때 살그머니 들어와서 죄를 짓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때 역시 그들이 지치고 힘들 때였습니다. 사단은 입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도록 획책합니다. 욥 역시 자신에게 닥친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과 불평의 말을 합니다. 욥은 자신의 그러한 행동에 대해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한편 사울 왕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변명하기에 급급했기에 길보아산에서 비참하게 죽으므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세벨과 아합은 자신들이 시체에서 흘러 나온 피를 개가 햝는 처참한 죽음 을 맞이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시원하게 인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 나 어떤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기 이전에, 먼저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는 겸허한 자세야말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인간의 도리입니다.

 2.생사화복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욥은 자기에게 덮친 그 고통이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임을 알고 또 인정 하였습니다. 욥이 주신 자도 여호와이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 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고 찬양했던 것도 여호와의 절대 주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이 욥의 신실한 태도입니다. 자신 에게 고통을 준 대상에게 원한의 마음을 품지 않고 오히려 찬송한다는 것은 신앙적으로 성숙한 인격의 표현입니다.

엄청난 고통가운데서도 욥이 희망을 가졌던 것은 하나님은 자신이 구하 는 것을 얻게 하실 분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13) 이런 신앙적 태도가 그를 승리의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 대한 소 망을 잃지 않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극심한 환란 가운데서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는 욥에게서 교훈을 받습니다.

박 넝쿨을 없앴다고 죽여달라고 불평했던 (요나)의 태도는 우리 인간들 의 적나라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풀무불에 떨어져 재가 될지라도 믿음을 지키겠다는 (다니엘의 세친구)의 믿음은 우리에게도 요구되는 결단입니다.

고난이 오는 그 때에 그 고난의 주관자가 바로 하나님임을 믿고 믿음을 굳 게 지키는 성도는 이런 능력을 나타냅니다.

 3.죽음마저 달게 받는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죽음을 눈 앞에 두면 누구나 이성을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욥은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 기뻐할 것은'(10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극도의 고통 속에서 뱉어내는 체념 섞인 한탄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 기의 죽음까지도 책임질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말이기도 합니다. (바울) 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라고 확신에 찬 고백을 한 바 있습니다. 어려운 고난과 유혹을 참고 견디어 그리스도 인으로서의 태도를 잃지 않은 자는 죽는 것도 그리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스데반)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죄와 죽음과 사단의 권세를 파하신 주님께서 지금 도 우리 옆에 서 계심을 믿으면서 죽음과 같은 극한적 파괴마져도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상 조건에 대한 인간의 적응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섭씨 50도 가 넘는 열대지방에서도 사람들은 촌락을 이루고 살아가며 영하 65도가 되 는 시베리야에서도 큰 마을이 지라잡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고도 4000미 터 되는 안데스 산맥이나 히말라야 산맥에 사는 사람들은, 평지의 75% 정 도의 공기 밖에 없고 체온이 떨어지는 현상과 산소 부족 그리고 기압이 낮은데에서 오는 혈관 및 호흡장애가 나타나는 고지대에서도 큰 불편없이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적응할 수있는 기상조건의 폭은 상당 히 넓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체력은 운동부족과 환경의 변화로 점점 떨 어지고 있습니다. 심신의 단련을 통해 자연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욥이 병으로 찌든 몸, 친구들마져 비난하는 견딜 수 없는 모멸감, 누구 나 이런 상태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행동이나 말을 아무렇게나 하고 싶 은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안간힘을 쓰면 서 죄 중에 빠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겸허 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입니다.

고통이 닥아올 때, 신앙적인 사람은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원인을 분석합니다.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닥쳐올 불행, 그럴 때 우리는 단지 좌절 하거나 자포자기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깊은 내면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 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의연한 태도는 자신의 신앙 체력을 강하게 단련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교우는 그 어떠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좌절하지 아니하고 승리하는 삶 을 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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