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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 어찌하여 (욥 0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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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말하던 욥은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께 투정이라도 하듯이 원망과 탄식 을 늘어 놓았습니다. 자신은 침상에서도 안식을 얻지 못하며(13) 무서운 악 몽에 눌린다며(15) 죽게 해 주기를 원합니다(16-17). 하나님은 인생을 감 찰하시는 분이신데(19)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토마다 시험하신다며(18)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문제와 문제로 뒤엉킨 세상살이를 하다보면 아무리 신실한 성도라 할지 라도 적어도 한번쯤은 욥과 같은 한탄과 원망을 하게 됩니다. 특히 욥이 당하고 있는 정도의 고통이라면 이러한 불평과 탄식은 누구에게나 나올수 있습니다. 여기서 욥은 연속되는 질문 형식으로써 평소 최선을 다해 섬겨왔 던 하나님께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물음들을 신앙적인 입장에서 분석하므로 영적 각성의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1.인생의 가치에 관한 물음입니다.

 (17절)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라고 물었습니다. 요즘 의 신문지상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크고 작은 범죄 사건들이 나옵니 다. 비단 이처럼 어두운 사회 현실을 보지 않더라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역겹고 냄새나는 부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인 생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만한 존재인가'혹은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 것인가' 라는 식의 근본적 회의에 직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특히 욥처 럼 극도의 시련에 봉착하고 사랑하는 아내에게서마저 냉대와 배신을 당하 게 되면 인생의 참담함은 더욱 뼈에 사무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고귀한 존재라고 분 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인생으로 하여금 세상 만물을 다스리며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는 놀라운 계획 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간은 저주를 받 았고 죄악과 허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지만 창조 때에 지니셨던 하 나님의 계획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사람-만물'의 순서대로 창조 원리가 회복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만물 위에 계시고 또한 교회의 머리이신 뜻도 여기에 의함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 각하시며....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히2:6-8)고백했습니다.

 2.하나님의 시험에 관한 질문입니다.

 18절에서 욥은 하나님께서 '분초마다 시험하신다'고 불평을 토로합니다.

이 말속에는 '이 정도면 최선을 대해 살아온 것 같은데 왜 유독 제게 이렇 듯 혹독하게 대하십니까 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보다 엄밀한 의미 에서 삶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된 까닭입니다.(약 1:14). 그러나 본문의 욥이나, 아브라함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부요 케 하고 더 큰 축복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시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따라 서 우리는 시험때의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더욱 순종하는 자세로 범 사에 주를 인정하는 마음을 굳게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잠3:6)

3 죄사함에 관한 질문입니다.

 욥은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라고 한탄하였 습니다. 이 말 속에도 '제가 이처럼 큰 고통에 처할 정도의 죄를 지었습니 까'라는 다분히 역설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날에 비해 고난에 대 한 이해가 부족했던 당시의 사고 구조에서, 욥이 이런 마음을 품는 것도 이 해는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치는 어떠한 어려움도 인생이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죄에 대한 합당한 보응이 되지 못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만큼 인생의 죄악은 무거우며 치명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셔야 했 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로써 죄인 인 인생도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면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은 성숙해 갈수록 불평이나 원망보다 자기 성찰에 역점을 둡니다. 한 때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불신와 책임전가 풍토를 없애기 위해 천주교 사제 단에서 '내 탓이요'라는 운동을 전재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욥의 이런 질문 뒤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여전히 믿는 믿음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다시 붙들어 주시기를 고대하면서 하나님과 교통하기 를 원하는 모습을 봅니다. 처절한 절망 가운데서 이같이 고백하는 것은 욥 이 대단한 신앙의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연 단하십니다(히2:10). 나는 하나님과 어떤 관게에 있습니까 인생의 어느 한 순간도 홀로 두지 않으시고 연약하며 쓰러지기 쉬운 인 간들을 찾아와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 는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환경을 탓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기에 앞서, 더욱 영적 각성에 매진합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에까지 자라가는 귀중한 방법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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