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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돌아오라 (눅 15: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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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에는 세가지 비유가 기재되어 있는데 먼저 어느 사람이 양백마리가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한마리 잃은 것을 찾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낸 것이요. 두번째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비유는 죄인을 회개케하는 성령의 빛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셋째 탕자의 돌아오는 비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도서에도 보면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하셨으니, 청년들이여! 하나님 아버지의 집을 떠난 자들은 어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미 믿는 청년들도 아버지께로 더 가까이 돌아와야 하겠습니다.
철새는 계절을 따라 고향을 찾아가는 歸巢本能(귀소본능)을 가지고 있고 인생은 망향의 념을 금치 못하는 존재이며 우리 영혼은 영원한 본향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멀리 떠났다 이제 돌아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이니 세례『요한』도 그러하였고 예수의 첫 외치심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회개는 여전히 죄의 길로 걸어가면서 뉘우치는 마음만 가지는 것 즉 히브리 말로 『나함』만이 아니요 방향 전환을 하고 돌아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풋터는 『다시 행치 아니하는 것 이것이 회개라』고 말했습니다. 청년들의 빠지기 쉬운 함정의 하나로 향락주의가 있습니다. 청년들은 이 피상적 향락에서 돌아와야 하겠습니다. 말세의 특징의 하나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일시적 향락은 극도로 성하고 있습니다. 『소돔』『고모라』가 음란으로 망했고 『바벨론』이 그러하였으며 후세 발굴한 벽화의 나체는, 『로마』 멸망의 원인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현세의 음란은 앞으로의 불심판을 촉진시키고 있는 격입니다. 영화계에도 이 세대의 인기는 육체파의 배우에게 더욱 집중되어 있다 하니 여기서도 현시대의 한 음란의 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시적 쾌락이 영원한 지옥불에 타게 하는 도화선이 되며, 순간적 과오가 끊임없는 속 사람의 부패를 가져오는 것이니 피상적 향락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샘 흐르는 곳으로 돌아와 진정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또 하나 현대 인생의 빠지기 쉬운 것은, 실존주의의 악영향으로서 부조리한 사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자유가 아닌 자유를 찾아 멀리 아버지를 떠나갔던 것입니다. 현대 지성인의 경향은 개성이 강하고 자유를 동경하는 나머지 전통에 대한 반항과 자아해방을 위한 한계를 넘는 투쟁으로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되고 하나님에게까지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무신론적인 실존주의의 혼미한 부조리 즉 뒤죽 박죽 속에서 헤매는 자들입니다. 저들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으면서도 본인은 알지 못하여 불안과 절망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말이 진창 속의 수렁에 빠져서 발을 빼려고 하면 할수록 몸은 점점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도서를 쓴 솔로몬왕은 인생의 온갖 부귀 영화를 누렸던 대표적 인물입니다. 당대의 가장 막강한 국력을 가진 군왕이었고, 주변의 나라에서 왕과 사신들이 온갖 진귀한 보물들을 들고 찾아 왔으며, 300명의 처와 700명의 첩을 거느리고 향락을 누렸습니다. 그야말로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부족함이 없이 다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귀영화를 누리되 바보같이 누린 것이 아니라 놀라운 지혜를 얻어서 아주 고상하게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역사상 다시 찾아볼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샘플로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온갖 부귀 영화를 다 누렸던 솔로몬의 이 무엇입니까 전도서 1장 10절부터 11절을 보면『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후에 본즉 내 손으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라고 했으며 또한 전도서 1장 1절-2절에 보면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라고 했습니다.
그토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흠모하는 모든 것을 누린 후에 얻은 그의 은 모든 것이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은 허무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전도서를 통해 인생들이 쫓는 허무한 일들을 계속 피력해 나가던 중 그 을 12장 1절에서 맺고 있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불란서의 사상가 파스칼은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을 만드실 때에 그 마음속에 하나의 커다란 공간을 만들어 놓으셨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공간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채워지지 않는 공간을 물질을 쌓고, 향락을 누리고, 명예와 권세를 얻음으로, 채워 보려고 하지만 채워지지 않고 쌓고, 누리고, 얻으면 얻을수록 인생의 갈증은 더 증폭되어 갑니다. 하나님께서 채우셔야 할 것을 그런 것들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떠난 자들에게는 참된 만족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떠난 자들에게는 참된 안식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떠난 자들에게는 참된 기쁨이 없습니다. 마치 엄마의 품을 떠난 어린 아이가 다른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오직 엄마만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청년들이여! 여러분의 인생이 더욱 곤고해지기 전에 창조주이시며 영혼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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