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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풍랑을 잠재우려면 (욘 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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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늘 잔잔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진원을 알 수 없는 풍랑이 끊임없이 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바다에, 그 바다를 떠가는 항해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바다엔 가끔씩 예측할 수 없는, 재앙과 같은 심한 놀이 일어난 다는 것이빈다. 항해 그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생의 기반을 뿌리채 뽑 아 흔들어 버리는 위기를 조성하는 그런 재앙의 놀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이 시대가 이런 위기국면에 처해 있다고 한탄해 하고 있 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바로 이런 모습을 이미 연출해 내었던 한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요나서 1장의 장면입니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욘 1:4) 그래서 배안에 타고 있던 모든 이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게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바다의 뛰 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욘 1:15)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풍랑이 잔잔케 된 사건의 비밀을 통해 오늘 이 시대의 문제 의 성경적 해답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문제가 발생하자 배안에 있던 사람 들은 갖은 방법들을 동원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을 기울이였습 니다.

 1. 그들은 각각 자기의 신을 불러냈습니다 (욘 1:5).

 神 이란 '예배의 대상자' 를 가리킵니다. 사공들이 격랑이 휘몰아치는 바 다를 항해하면서 안전을 호소했던 숭배의 대상자들을 가리킵니다. '예배'란 '가치 있는 것을 섬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 보다 힘이 세고, 능력있 는 것들입니다.그런데 이 신들의 특징은 인간 자신들이 만들어낸 자기 암시 의 수단들이었습니다. 인간 자신이 능력있는 것이라 믿었을 뿐이지, 바다나 태양등 그 어떤 숭배의 대상도 인간 구원의 능력은 없었던 것입니다. 큰 바위가 동구밖 팽나무 한그루가 숭배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인간 문제 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 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존파 사건이 터지자, 각종 신 문과 방송에서는 앞을 다투어 소위 전문가들을 내세워 이런 저런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습니다. 사회학자가 등장하고, 심리학자가 등 장하고 인간 심리 기재에 대해 설파하고 경찰청 사람이 나오고 흥분한 군중 이 사람이 나오고 흥분한 군중이 나오고 책임 있는 정치가나 행정관이 나와 서 이 문제를 영원히 척결하겠다고 선언해대지만 그런다고 이 문제가 해결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불행한 사건이 다시 발생 할거라고 감히 예언 해 대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들은 물건을 바다에 집어 던졌습니다.

 한번만 살려주시면 이 재물을 당신께 다 드리겠습니다. 애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효험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임시방편적 땜질이 한두번 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사건이 터지면 적당히 돈으로 해결해 버리려 는 인간 심리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입 니다.

 사건이 터지면 일시적인 관심을 반짝 기울이는 미봉책은 안된다는 것입니

다. 이것은 깊은 인간의 죄성 그 본질에 해당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돈으로도 힘으로도 안되는 문제인 것입니다.

 3. 그들은 마지막으로 요나를 바다에 내 던졌습니다(욘 1:15).

 그러자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쳤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될 것이 빈다. 문제는 배 먀 밑바닥에 있던 요나에게 있었습니다. 요나로 상징되느 니 문제의 근원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첫째로, 인간의 깊은 죄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피하여 살려고 하는 죄된 인간의 속성입바니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결코 풍랑 이 잔잔해 질 수가 없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고(욘 1:3).

그렇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것입니다 (시 121편). 인 생 문제의 열쇠가 바로 그 분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요나의 문제느 니 인간 차별에 있었습니다. '지존파' 아이들의 증오의 화신이 된 이유를 들면서 그중 하나로 인간 차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믿는 자였지만 사람을 차별하는 일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자였던 것입니다 (욘 4:1).

 우리 한국 사회의 비극은 바로 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은 집어 던 져야 합니다. 이 사건의 본질적인 해결은 바로 '믿는 일에는 열심이나 더불 어 사는 일에는 소극적인 크리스챤'의 진정한 회심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 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주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롬 1: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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