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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지도자의 모습 (삿 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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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단체나 국가든지 항상 지도자가 있는 법입니다. 지도자가 없는 민중이란 오합지졸이요, 목자없는 양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 게는 모세라는 위대한 지도자를 주셔서 그 민족을 해방해서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 그는 실로 잊을 수 없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입니다.

그는 지도자로서 누구나가 갖추어야 할 보편적 상황을 다 갖추고 있었 던 것입니다. 당대 최고의 문명한 대국의 국왕 앞에서도 체모를 잃지 않는 궁중의 관습과 예의에 익숙한 분이었고 어려운 소임을 자유로운 의사 개진으로 국왕과 담판하는 용기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자기 민족을 개명한 민족으로 훈련시키는 교육자적 기질과 능력, 그리고 깊고 참된 신앙가에서만 볼 수 있는 차원높은 믿음과 지도자의 덕성을 구비한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사사기는 혼란한 시대의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린 책입니 다. 이스라일에 안정과 평화를 누릴 새 시대에 들어갈 간주곡인 것 입니다. 이 시대의 이스라엘은 각 시대의 요청으로 나타난 영웅과 사 사들이 통치하던 시대인 것입니다. 이스라일이 곤경에 빠져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그들에게 지도자,영웅, 사사들을 잇달아 보내사 그 백성을 원수의 손에서 건지고 독립을 회복하며 참 하나님께 예배드 리게 하였던 것자비니다.

 사사들이 살아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신실하다가도 그들이 죽으면 다 시 타락하여 벌을 받고, 다시 회개처럼 구원받음을 되풀이 하는 사사 기에 나타난 13명의 사사 중에서 오늘은 입다라는 사사에서 볼 수 있는 지도적 성향을 보고자 합니다.

 1. 정화하는 용사 입다는 기생의 아들입니다.그런고로 집에 적자들과 같이 있지 못하 고, 이복형제들에게서 선출된 자요 잡류들과 사귀는 그런 사람이었습 니다. 출신 성분이나 교제하는 동류가 사회의 하층으로서,난폭하고 무 지하며 가난하기까지 한 자들입니다. 정말 쓸모없고, 손가락질 받는 천덕꾸러기 같은 자들입니다.

 여하간 입다는 하류층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6절을 보면 자기 를 쫓아낸 길르앗 장로들이 이제는 입다를 찾아와서, 자기를 이 암몬 의 침략을 받아 막아낼 도리가 없으니,당신이 와서 우리의 장관 곧 통치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때 입다는 돕 땅에 우 거하고 있었는데 돕 땅이란 6개의 도피성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여러가지 범법자들이 모여들던 무법천지의 그 땅이었을 것 입니다. 그런데 입다는 그 땅을 정돈하고 그 잡류들을 잘 훈련하여(요 새 말로 정화했는지 모르지만) 강한 군대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말하 자면 잡류를 교육하고 간성이 되고 민족의 운명을 짊어지는 체제가 되 게 했던 것입니다.

 요즈음 정화운동이 각 방면에서 진행되는 것 같은데, 교육적인 면에 서는 특별한 이해가 따라야 할 줄로 압니다. 요한 칼빈선생님은 교육 을 훈련으로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지식이 전수되어도 그것이 생활에

적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종교교육, 교회교육 '삶에 대한 훈 련'이어야 합니다.

 예수의 제자되는 조건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사람이라야 되 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diciple이라고 합니다. 일본 기독자 교수협 의회에서 가시야와 목사는 제일고보와 동경제대생이 없어서 일본 이 망한 것이 아니라고 간증했다고 하였습니다.

 입다의 교육은 훈련을 통한 것이요, 그의 정화운동은 국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2. 폭력에 대한 저주 입다는 지도자가 된 다음에 암몬 자손을 반격하기 전에 평화적으로 일을 해결하고자 하여 암몬왕에게 사신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입다의 행위는 그가 신앙이 진실할 뿐 아니라 지혜롭고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 며, 동시에 폭력 쓰기를 싫어하는 인물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사기 15장 1-20절에 보면 삼손이 아내를 잃은 분풀이로 여우 300마 리를 둘씩 꼬리를 매어 횃불을 붙여 놓은 일이 있고, 블레셋 사람들의 반격에 대하여 나귀의 턱뼈로 1000명을 죽인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런 것은 아무래도 성령께서 움직이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삼손 의 힘의 남용이었습니다. 여기에 삼손의 비극의 원인이 있었던 것입니 다. 이 옛 이야기가 현대에 주는 교훈은 힘은 훈련받아야 하고 바로 인도돼야 한다는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거인이나 국가중의 강대국은 힘의 남용을 유혹받고 있습 니다. 그러나 그것을 견제해야 합니다. 현대 국가들이 원자력을 보유 한 것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뜻입니다.우리는 이 힘으 남용에서 구출돼야 합니다. 과학이 발견한 막대한 힘은 정직하고 넓은 지식과 인류의 장래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맡겨서 지 키고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는 개인의 역할보다 한 단체나 큰 무리의 움직임에 강조점 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존재가 무시된 것은 아니고 오히 려 개인이 전보다 더 광범하게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 뿐 아니라 그의 활동 범위도 굉장히 넓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한 지 도자의 그릇된 일은 그 영향이 전시대보다 훨씬 넓게 미치는 것입니 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힘을 사용하는 개인의 정직과 선함입니다.

 생애(출세)보다 먼저 성격(품성) 을 닦아라(choracter, befor care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은 선에 기초를 둬야 합니다. 선한 사람이 손에서는 힘도 권력도 선해집니다.

 모든 결정에는 책임있게 개인이 있고, 집단적 결정에도 실무를 맡은 개인이 중요한 것자비니다. 순진성이야말로 모든 진보의 모체리고 보여지는데 순결성이 판단을 잘 한다는 말은 아니나 순진성 없는 사람 은 신임이 안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칼빈은 윤리의 근본의 청렴(곧 정직0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계속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삼손의 이야기가 말해주는 것은 힘은 언제나 수단이고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며, 힘을 목적으로 생각할 때는 만용, 위험, 허무, 혼란 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힘은 돈과 같이 쉬 사라집니다.

 그런데 힘을 제어하어 바른 길로 가게 하는 것은 힘보다 강한 의지입

니다. 힘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은 곧 모든 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서 자신을 하나님께 얽어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노예가 되는 것은 속박이나 자지에 복종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고의 전환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서 힘이 필요하다는 말은 탈선하기가 쉽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힘은 받아야 합니다. 삼손의 힘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그 받을 때의 목적이 문제인 것입니다. 힘이 그러하듯이 돈 도 받아야 합니다. 자기의 의욕과 사회 법칙에 의한 재물의 축적은 맹 목적인 힘에 그칩니다. 사람이 그것에 노예가 되고 맙니다.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인격적이신 하나님에게서 받으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 할 수 있습니다.

 입다는 화해의 제의에 불응하는 암몬 족속을 향하여 무력을 사용하 기는 하나, 그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즉 자기 힘의 근원이 하 나님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고백하였으니 11장9,30절이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3.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입다 설화의 요점은 암몬 사람을 이긴 것보다 그를 위대하게 만든 경 건과 용맹 속에 찾아든 비극입니다. 암몬 사람을 향하여 진군할 때 승 리를 갈구하는 나머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기를 기원하여 엄숙 하고 비극적인 맹세를 하였습니다. 만일 승리를 주신다면 승전하고 돌 아올 때 처음 만나는 자를 희생제물로 드리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30-31).

 승전한 개선장군으로 돌아올 때 그의 외딸이 노래와 춤을 환영하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전쟁에서 받은 타격보다 훨씬 큰 것이 었습니다.

 슬프다 내 딸아 너는 나를 참담케 하는 자구나(35). 그러나 아버지 와 딸은 그 맹세의 관철에 합의하여 서원한 대로 딸을 번제로 드렸습 니다. 사람들은 이 비극을 잊지 못하여 매년 4일간 입다의 딸을 위해 애곡하였습니다 (40).

 우리가 이 설화에서 얻는 느낌은 첫째는 공포요, 다음은 감격입니다.

종교의 원시적 모습과 그 잔인성이 엿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진리성을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이 같은 비극적 희생 을 동반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 해서 그 독생자를 십자가에 희생시켜야 한것은 원시종교의 교설이 아 니라 그리스도교 중심 진리입니다.

 입다의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 딸의 순정과 경건심은 모두가 하나님 에게서는 순종과 헌신의 증거였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그의 도움을 얻기 위해 마치 뇌물을 드리 는 심정으로 해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재물로 하나님의 호의 를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교환 조건이 되기 쉽습니 다..... 이렇게만 해주시면 당신의 뜻대로 하겠습니다.하는 기도는 바른 기도가 못됩니다. 하나님은 선에 편드시고 악을 미워합니다. 그 러나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같이 주신다(마5:45)고 하셨습니다.

 입다는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11:35) 있었거니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핑계치 않는 지조의 인 물이었습니다.

 입다의 이러한 사건에서 정화하고 계도하는 지도자, 힘을 가지고 있 으나 쓰기를 주저하며 그 힘의 근원을 분명히 아는 지도자 하나님의 은헤를 사모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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