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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의 찬송 (시 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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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편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를 찬양하는 일련의 시편들 중 마지막 짓고 있는 시로서 간결하고 압축된 표현으로 여호와께 감사할 것을 노래한 기쁨과 감사의 시이다.

온 땅과 만백성이 여호와의 부름에 참예하여 “즐거이 여호와를 부르며 기쁨으로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분 앞에 나아가는” 노래이다. 이 시의 주목적은 선교에 있다. ‘그 앞에 나아감’은 성전의 여러 문을 거쳐 거룩한 곳에 계신 하나님께 곧바로 나아가는 것이다. ‘주의 앞에’란 친구를 대하듯 하나님을 대면함을 말한다. 예수님도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자다”고 하셨다. 그래서 예배자는 멀리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곧바로 가까이 계시는 인격의 하나님께로 와서 경배드리도록 초대받은 자이다.

 1. 순례자들은 기쁨으로 노래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1-2)

이 순례자들은 예수님 당시처럼 지구의 끝에서 온 자들로 애굽인, 메소포다미아인, 에돔인, 사마리아인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먼데서 온 이방인들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배해야 한다. 현재 모든 교회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주님께 경배하도록 해야 한다.

성도의 제일되는 본분은 하나님을 섬기며 그를 영화롭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섬길 때에 함부로 자기 본위로 해서는 안된다. 중심이 자발적이고 헌신적이며 기쁨에서 우러 나온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 억지로 마지 못해서 드리는 봉사는 하나님께서 기쁘하지 않으신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분명히 인식할 때, 우리에게 어찌 신령한 감동이 없겠으며, 기쁨의 찬송이 없겠는가

2.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자요, 우리는 그분의 소유이기 때문에 섬겨야 한다(3)

우리는 미생물에 의해 진화해서 생겨난 존재나 혹은 우연에 의해 불쑥 생겨난 존재가 아니다. 영원전부터 하나님께서 친히 계획하시었다가 마침내 때가 차매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더우기 우리는 스스로 죄와 허물로 영영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엡2:1). 그처럼 허무한 존재였던 우리를 하나님은 그 크신 긍휼과 자비로써 우리 죄를 속량하시고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우리를 옮겨 주셨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존재로 삼으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습3:16-17). 이 은총을 어찌 찬양하지 않겠는가

3. 하나님은 영원히 선하시고 인자하시기 때문에 감사드려야 한다(4-5).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필요시에만 잠깐 관심을 보이시다가 싫증이 나면 그냥 내팽개쳐 버리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비록 당신이 사랑하는 자의 삶이 당신의 뜻에 멀어져 있을 지라도 그 영혼이 아무리 크고 엄청난 허물 아래 있을지라도 그 영혼을 영영히 잊어버리지 않으신다(눅15:1-24).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기도 하고, 또 즐겨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고 우여 곡절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과 관심은 결코 변함이 없으시고 영원하시다(시121:1-8).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다. 정녕 한번 하나님의 사랑의 포로가 된 자는 천국가는 그날까지 결코 버리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우리가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성전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부름받은 몸이요,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지음받은 피조물이다. 우리는 아무도 자신을 위해 살아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되 무슨 의무감으로서가 아니라, 자원하는 심정, 그 사랑에 감격하여 기쁨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헌신과 봉사를 드려야 한다. 이 은혜에 대한 감사를 천국 가는 그날까지 감격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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