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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르다가 내가 죽을 노래 (빌 03: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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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한 평생을 사는데 이 한 평생을 사는 우리네 인간을 여러가지로 비유해서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인생은 무대에 올려진 한 편의 연극이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 경주다. 인생은 바다위를 항해하는 한 척의 배다. 인생은 하루 하루 자기의 책을 쓰는 것이다. 등 인생을 여러가지로 비유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에 대해 많이 생각할 때가 있는데 언제인가 하면 죽은 사람을 앞에 놓고 장례를 치를 때입니다. 그 자리에서 느끼는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면 참으로 허무하고 덧없는 것이 인생이로구나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이처럼 허무하고 덧없다는 이 생각, 이 감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보편적인 생각이요 감정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을 뒤를 이어 왕이 된 솔로몬은 인생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인데, 그런 그가 인생을 회고하면서 전1:2-3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덧없으면 이토록 헛되다라는 말을 다섯차례나 반복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이요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였던 모세는 시편 90:10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고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탄식하면서 우리네 인생이란 풀과 같아서 아침에는 꽃이 피어 자라나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는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기자는 아고보서 4:14에서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라고 인생의 허무와 덧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조선조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처들어왔던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62세의 일생을 마감하면서 이런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이슬처럼 떨어졌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런가 세상만사 모두가 일장춘몽이로세.
초로인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풀잎에 맺힌 아침이슬처럼 잠깐 영롱하게 빛났다가 아침 햇살이 비치자 금방 사라져 버리고마는 그토록 허무하고 덧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몇년 전의 일입니다만 제가 청년부를 지도하던 전도사 때의 일입니다. 청년부 집회가 토요일 오후에 있어서 그 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늘 저녁 늦은 시간이 되곤 합니다. 어느 날인가 그 날도 모든 집회를 마치고 심신이 지친 가운데 저녘 늦게 집에 돌아와서 서재에 들어가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버렸습니다. 연극이 끝났을 때 느끼는 그런 허탈감 같은 것을 느끼면서 무심히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머리를 돌려보니 수백권의 책이 꽂아 있는 책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러 종류의 책들이 꽂아있는데 책의 저자가 다르고 그 내용과 크기와 모양이 각기 다른 것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가수나 성악가 혹은 시인만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노래를 부르다 가는 것이구나. 그렇습니다.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신학자는 신학자대로, 과학자는 과학자대로, 의사는 의사대로, 군인은 군인대로, 연예인은 연예인대로, 예술가는 예술가대로, 운동선수는 운동선수대로, 목사는 목사대로,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분야는 각기 다르지만 다 각자 자기의 노래를 부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구나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저마다 자기의 노래를 부르다가 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문제는 그 사람이 무슨 노래를 부르느냐, 그리고 그 노래를 어떻게 즉 어떤 자세로 부르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평가되고 인생의 성패가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무슨 노래를 어떻게 불러왔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그 노래를 어떻게 부르시려고 계획하고 계십니까 내가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고 또한 남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남의 노래를 대신 물러 줄 수도 없고 또한 남이 내 노래를 대신 불러 줄 수 없고 또한 남이 내 노래를 대신 불러 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각자 자기만의 노래를 부르다가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 말이나 하며 다 말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무 노래나 부르면 다 노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해야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될 말이 있듯이, 불러야 할 노래가 있고 불러서는 안될 노래가 있는 것입니다. 참말이 아닌 것은 헛소리요 거짓말이요 해악을 가져오듯이, 참노래가 아닌 노래는 소음이요, 잡음이요 해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람들로부터 인기나 갈채를 받는 노래만이 참으로 좋은 노래요 잘 부르는 노래도 아닙니다.

3.1절 75주년을 맞아 2월의 마지막 날인 엊그제 책방에 들러 며칠 전에 출판된 (청산하지 못한 역사)라는 책을 샀습니다. 이 책은 한국현대사를 움직인 친일파 60인이라는 부제가 달린 3권으로 된 책입니다. 이 책은 일제 때에는 반민족행각을 자행한 친일파로, 해방후에는 반민족, 반민주에 앞장 섰던 사람들로서 근년에 죽었거나 지금도 살아서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급 인사들을 취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충격을 던져주리라고 예상되는 책입니다. 일제에 나라를 잃은 그 시절, 대한 독립만세를 죽는 날까지 목마르게 불러도 시원치 않은 그때, 민족적 양심과 자존심을 팔아가면서 불러서는 안될 일본 천황만세를 외치며 노래했던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노래를 불러도 되는 겁니까 참으로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번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특별히 기독교인인 우리들은 무슨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잘 살았다, 멋지게 살았다. 성공적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이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 묻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실까를 한번 상상해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가서 물어보라. 그러면 그는 주저없이 이렇게 대답하리라. 기독교인의 인생에는 단 하나의 노래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노래를 부르다가 가는 것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대답하시리라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일생은 한 마디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그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평생을 두고 부른 단 하나의 노래는 예수 사랑의 노래 그것 뿐입니다. 그 하나의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 제대로 부르기 위해 외길로만 달렸던 일생이었습다. 사도 바울은 거기에서만이 생의 의미와 가치와 보람과 목적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인생을 살 때만이 기독교인으로서 참으로 잘 산 인생이요, 멋진 인생이요, 성공적인 승리자의 인생인 것을 우리에게 극명하게 모범적으로 보여주었습다.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 한 그의 말은 한 평생 예수 사랑에 불타서 살았던 그의 삶을 본받으라는 말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주님은 자격없는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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