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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 안에서 연합하자 (빌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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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나 교회, 직장이나 나라가 평화롭게 번영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 모두가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각 사람의 인격과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단결하지 못하고 반목하게 되면 결국 모두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수없이 듣고 보고 겪으면서도, 가족이나 종교인 또는 직장인이나 국민들이 연합하지 못하는 주된 원인은 자기 위주의 사고 방식과, 모두가 공감하고 따를 수 있는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령 모두가 공감하고 따를 수 있는 구심점이 있다고 할지라도, 원죄 가운데 태어난 사람들의 이기성이 해결되지 않는 한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자신과 세속을 초월하여 살려고 하는 종교계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현실에 처한 우리는,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인들에게 간곡하게 하나가 되라고 부탁한 말씀을 통해 값진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2. 바울의 교인관

바울주 안에서 연합하자
사도는 하나가 되어야 할 교인들을 가리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주님의 종인 자신이 양육하고 지도해야 할 교인들에 대해 교만된 생각을 갖는 대신에,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로 여겼습니다. 또, 자기의 기쁨이요 면류관으로 여겼습니다. 물론, 모든 교인들이 다 천사 같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문제투성이 교인들에 대해서까지 그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 사도의 훌륭한 신앙 인격과 자신의 일에 대한 철저하고도 정확한 이해를 읽을 수 있습니다.
모든 지도자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사람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또, 운동 선수의 최고의 기쁨과 영광이 면류관인 것처럼, 교역자의 최고의 기쁨과 영광은 가르침을 좇아 끊임없이 성숙하고 성장하는 교인입니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데에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랑과 사모, 그리고 인정과 기대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3. 주 안에서 하나가 되라

바울 사도는 내분 상태에 있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 안에 서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냥 바로 서라고 하지 않고, 주님 안에 서라고 했습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확실히 아는 일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바로 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통 사고로 혼수 상태가 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치료가 끝나고 정신이 들자 그 사내는 옆에 서 있는 아주 예쁜 간호사를 보고는 기분이 좋아서 물었습니다. “여기가 분명히 천국이지요” 그때 곁에 있던 그의 아내가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천국은 무슨 천국, 빨리 정신이나 차려요 이 덜 떨어진 양반아!” 사내는 체념한 듯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천국이면 내 마누라가 있을 리가 없지.”
우리의 몸이 어디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 더 나아가 우리의 믿음이 어디 있는가 함입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의 마음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교인들의 마음은 항상 유혹의 자리에 있고, 또 어떤 교인들의 마음은 욕망의 자리에 가 있고, 또 어떤 교인들의 마음은 창고에만 자리잡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껏 교만하여 사단의 영역에 들어가 있는 교인도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 일을 하든, 교회 일을 하든, 직장 일을 하든 간에 항상 주님 안에 확고히 서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하고라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 서라고 한 바울 사도는 교회의 내분의 요인이 된 부녀인 유오디아에게 권하고, 또 한 부녀인 순두게에게 권하기를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라고 하였습니다. 권한다는 말을 반복할 정도로 두 여인 사이의 불화가 심각했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윤리 도덕적인 문제나 교리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복음 사업에 너무 열을 내다가 그만 지나친 경쟁심이 발동되는 바람에 생긴 불화였습니다. 그런 원인을 잘 아는 바울 사도는 그냥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 쪽을 따르고, 어느 한 쪽을 버리라고 권하지 않았습니다. 50%씩 양보하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식의 권면은 불만을 없애기는커녕, 파벌만 조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여인의 마음도 저 여인의 마음도 아니라,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했습니다.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화목 제물이 되신 주님을 구심점으로 삼아 조화로운 일치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그 주님을 생각하면 하나가 못될 이유가 없습니다.
이탈리아 북서부 사보나읍 근처 마을에 사는 올해 93세의 마거리타 바자니라는 할머니가, 증손자 뻘인 24세의 안드레아 페조니라는 청년과 2년간의 동거 끝에 공식적으로 하나가 되기로 뜻을 같이하고는 토리노에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50년 전에 첫 남편과 별거하고 자식 없이 혼자 살아온 바자니 할머니는, 10년 전에 파출부 일을 하는 어머니를 따라 집에 놀러 온 14세 소년 안드레아를 처음 만나 알게 됐다고 하면서 놀라운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순수하며 그 무엇보다 강하고 아름답습니다.”
남녀간의 사랑도 이토록 순수하고 강하고 아름답게 결합시키는데, 화목 제물이 되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가 못된다면 말이 안 됩니다.
여러분, 죄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사람들과 불화하게 된 우리를 위해 화목 제물이 되신 주님은,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셨습니다. 아무쪼록, 주님 안에 확고히 서서, 우리가 속한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복음을 전하며 화목케 하는 직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4. 바울이 신뢰한 일꾼

바울 사도는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라고 권한 다음에, 그 두 부녀자가 잘 화합할 수 있도록 익명의 일꾼에게 중재를 부탁했습니다. 또, 글레멘드와 그 밖의 자기의 동역자들을 도우라고 부탁했습니다. 참으로 바울 사도와 멍에를 같이한 이 일꾼은 대사도가 신뢰할 만한 충성스럽고 능력 있는 일꾼이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일꾼들을 돕도록 부탁받을 정도로 대단한 일꾼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종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마음놓고 부탁할 수 있는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R. A. 토리 박사는 자기의 저서인 ‘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디를 칭찬하려고 이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로 말미암아 실로 보잘것없는 자를 택하여 능력 있게 쓰셨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부활의 능력으로 그를 구원하시고, 또한 성령께서 그 안에 살아 계셔서 그를 통하여 놀랍게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소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무디를 크게 쓰신 이유는 다음의 일곱 가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 절대 순종의 사람이었다. 2) 기도의 사람이었다. 3) 깊이 있고 실제적인 성경 연구가였다. 4) 겸손한 사람이었다. 5) 돈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6) 잃은 자를 찾는 데 불붙는 정열의 사람이었다. 7) 분명히 위로부터 능력의 충만을 받은 사람이었다.”

5. 맺음말

우리의 가정과 교회, 직장과 나라가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심점이십니다. 우리 모두 화목 제물이 되신 주님 안에 확고히 서서 신령한 지혜와 능력을 받아 반목을 화목으로, 불화를 평화로, 싸움을 화해로 바꾸는 역군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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