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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증인들 (요 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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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로 가는 한 비행기에서 처음 이륙할 때부터 착륙할 때까지 계속해서 창 밖을 주시하며 깊은 시름에 잠긴 한 여행자가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오스트리아의 산악 지대를 지날 때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제 한 통의 국제 전화를 받고서 모든 강의와 약속, 그리고 강연등을 취소하고 오스트리아행 비행기에 올랐던 것입니다. 평소 산을 타기를 좋아하던 아들이 알프스 산맥의 한 산봉우리를 오르다가 사고를 당하였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건강하고 영리하던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슬픔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죽은 아들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서 가는 걸음, 아들이 죽은 장소를 찾아가는 아버지의 걸음에는 무거운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웠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미어지는 가슴을 안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일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학자였지만 죽음을 설명해 주는 어떤 철학적인 논리나 학문적인 명제들도 그를 위로하지는 못했습니다.

무덤을 찾은 여인,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했던 한 가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이후 막달라 마리아는 깊은 슬픔 속에 있었습니다. 사랑하던 주님이 그렇게 비참하게 돌아가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기를 기다려, 그녀는 이른 새벽 준비해 둔 향품을 들고 무덤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어떤 소망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비참하게 돌아가신 주님께 준비해 둔 향유라도 한번 더 발라 드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무서움도, 로마 군병들을 어떻게 대할까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도 주님에 대한 이 사랑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덤을 찾은 마리아의 모습은 이렇듯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이었지만, 그러나 그녀에게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새벽 주님의 무덤을 찾아가는 신앙적인 열심이 있었고, 귀한 향유를 준비해서 주님께 드리고 싶어했던 아름다운 헌신의 마음이 있었지만, 그녀에게 필요한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으로 인해서 엄청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자적인 신앙을 가졌지만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부활 신앙이었습니다.
부활 신앙이 무엇일까요 주님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셨음을 믿는 신앙입니다. 이것은 과거적인 사건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이 무엇일까요 주님이 오늘 살아 계셔서 주의 백성들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적인 사건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이 무엇일까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보여주는 대로 주님의 부활하심과 같이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미래적인 사건을 믿는 것입니다.
아들의 죽음은 그에게 웃음을 앗아가 버렸고, 그와 그의 가족의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견딜 수 없는 진한 슬픔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의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었던 것은 외아들을 잃어 버리셔야 했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그끼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상처 투성이로 죽어가신 성자 예수님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그의 심령에 영사으로 맺혀졌을 때 그는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들을 잃어버린 슬픔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부활 신앙이었다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 문을 여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는 것은 우리의 무덤으로부터 우리 자신이 부활하게 될 징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심과 다시 사심은 모든 어두운 무덤으로부터 우리를 다시 일으킬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로 아들이 나 돌아왔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는 것일까요 마음 한편으로 의혹하고 있는 그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죽은 자를 일으켰으며, 죽은 자로부터 나의 독생자 예수를 일으켰던 것을 기억하라. 나의 아들 예수를 죽음에서 부활시켰다면, 너의 아들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 그때야 그는 아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다시 만날때까지 안녕, 안녕, 내 사랑하는 아들아, 안녕.
그렇습니다. 부활 신앙은 슬픔을 이기게 합니다. 부활 신앙은 고통스런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발견하게 해 주고, 도우심의 손길을 만나게 해 줍니다. 부활은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이 땅의 모든 종교들은 교주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주의 무덤을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무덤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미이라로 만든 시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끝을 의미합니다. 죽음에는 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장식해도, 아무리 완벽하게 꾸민다 할지라도 무덤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중국 공산주의의 원조인 모택동을 중국인들은 미이라로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구 소련인들은 레닌과 스탈린을 미이라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습니다.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아니할 미이라로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시신은 시신입니다. 소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 영원이 있을 수 없고, 영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다시 사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시기 전에도 그랬고, 부활하신 후에도 계속해서 부활하셨음을 나타내셨고, 또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을 통해서 부활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그 여인들은 무서워서 떨었습니다. 그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 여인들의 이야기는 4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지만 오늘 본문의 기록에 의하면 마리아는 누가 주님의 시신을 훔쳐 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그 여인들을 통해서 부활의 소식을 전해 들은 제자들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지식을 초월하는 사건이요, 경험을 초월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보지 않고 만지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는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더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부활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아주 작은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세계를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여전히 믿지 못하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물으신 질문은, 이 부활의 아침에 어찌하여 울고 있으며 누구를 찾고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녀에게 확인시켜 주셔야 했습니다. 교회가 확고한 부활 신앙을 가지도록 확인시켜 주셔야 했습니다.

내가 주을 보았다

빈 무덤을 보고도, 천사들의 증언을 듣고도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는 생각에 꽁꽁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그녀에게 주님은 찾아 오십니다. 무서워서 문을 잠그고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실망과 좌절감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던 두 제자에게도 주님은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못 박히신 손과 상하신 머리와 허리를 내보이시기도 하시고, 말씀을 풀어 주기도 하시면서 그들에게 부활 신앙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확인한 후에야 그들은 내가 주를 보았다, 주가 살아나셨다하고 담대히 외치는 부활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호주에 사는 어느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그 부인은 소녀 시절에 중병에 걸려서 두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극도의 좌절에 빠져 있을 때, 이번에는 병균이 두 손으로 감염이 되어서, 부득이 두 팔마저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그야말로 ‘몸뚱이만 남아 있는 고깃덩어리’였습니다. 이런 경우는 ‘살 소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부인은 비참한 역경과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마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이 용솟음쳤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팔을 자르고 남은 그 끝에 만년필을 붙들어 매었습니다.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씨 쓰는 연습을 하면서 편지를 썼습니다. 그 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자신의 간증과 고백이 담긴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일년이면 수백 통의 편지를 통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절에서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는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갈릴리에서 주님이 명한 산에서 기다리고 있던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증인들이 되어 주님의 지상명령을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약 24,000 종족이 살고 있고,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종족이 11,000종족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미전도종족들은 세계지도상의 10/40창에 주로 살고 있습니다. 13억의 인구를 가지고 있고, 우리 사랑방교회가 관심을 갖고 선교하고 있는 중국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지상명령을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고 말했던 것처럼 세상에 가서 내가 주를 보았다고 증거하는 부활의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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