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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레미야의 신앙 (렘 0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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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가장 훌륭한 예언자적 재질을 갖춘 예언자요, 讀者(독자)에게 많은 감명과 호기심을 주는 인물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동북방으로 30리쯤 떨어진 『아나돗』이라는 촌에서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출생하였습니다. 처음 召命(소명)받았을 때가 주전 626년인데 『아이』라고 했으니 그의 나이를 20세쯤으로 추정해 볼 때, 그는 주전 646년쯤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의 조상 중에 아비아달은 솔로몬왕 때 왕위계승문제로 잠시 서리를 맞긴 했지만 그는 가장 훌륭한 히브리의 경건한 가문에서 태어나 그 전통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選民(선민)의 순수한 피가 흐르고 거기에 하나님의 영이 교통하고 죄악 세상에 있으면서도 하늘의 시민권을 마음에 지닌 신앙의 빛나는 생활과 보람있는 선한 싸움을 잘 싸우는 생애가 전개되어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하나님의 뽑고 주관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상에 태어났고, 그 피를 받고 그 생활과 풍습속에서 자라나 하나님의 뜻이 뼛속까지 스며든 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전해 주는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가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선지자로서 소명감이 확실하였습니다. 예레미야 1:4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腹(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胎(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라고 했습니다.
의심할 수 없는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고 전적으로 이 목적만으로 태어났습니다.
금일은 총회 본부로부터 『신학대학주일』로 지키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오늘날 主의 종인 성직자들에게 이 사명감이 확실치 않았을 때 도중에 다른 직업, 즉 육신을 위한 편한 직업으로 바꾸고 마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 1:10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 즉 언제든지 실족치 아니하리라』

그런데 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현대 지성인들과 호흡이 맞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 무조건 복종하기보다는 알고 신봉하고자 하며 질문하고 따지고 드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나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렘 12:1)
둘째로 될 수 있는 대로 백성의 편에 서서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룩하려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애쓰는 휴머니즘(Humanism)을 엿볼 수 있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렘 8:21)사랑이 넘치는 예레미야의 가슴에는 『내 백성』이라는 말과 『내하나님』이라는 말로 가득 찼습니다.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創傷(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렘 14:17)
셋째로 그토록 백성들 편에 서서 일하면서도 그 중심은 하나님의 큰 뜻을 전함을 어디까지나 그 사명으로 삼았고, 백성들의 무서운 반항과 跛行(파행)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일생을 바쳤고, 그 생명을 바친 것입니다.
하나님의 攝理(섭리)에 질문을 하고 백성을 위하여 부딪치기도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이 백성들을 위하여 영원한 복이 됨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즉 正反合의 辨證法(변증법) 원리보다도 正反正이라 할까?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받아서 전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실천시키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렘 1:11-13)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대로 예언, 즉 설교하였습니다. 여기서 『끓는 가마』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해 북방민족이 침입할 것이니 죄에서 돌이키라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가 본 『끓는 가마』는 오늘 우리에 대한 경고입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의 對亞細亞政策(대아세아정책)은 지역방위체제요, 미국은 新孤立主義(신고립주의)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시아에 있는 비공산주의 국가들은 상호간의 국방을 되도록 그 자신들에게 맡기고, 미국은 뒤에서 도와주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가 낙심할 필요는 없으나 방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무장공비의 침입은 우리에게 큰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레미야는 요시아 왕이 다스린지 13년에 예언을 시작하여 여호야김 왕의 시대를 거쳐 시드기야 왕의 11년까지 예언하였는데 그해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고 말았습니다. 선지자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의 왕과 백성이 죄에 빠져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이 때 예레미야는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로 내게 보이셨는데 한 광주리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있더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 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악한 것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게 악하나이다』(렘 24:1-3)
여기서 『좋은 무화과』는 바벨론으로 잡혀간 유다의 백성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70년이 차면 하나님께서 다시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허락하신 자들이었습니다(렘 25:12, 29:10). 그러나 『악한 무화과』는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에 남아 있던 자들과 애굽으로 도망하여 다시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자들입니다.

예레미야는 참으로 백성을 위해 힘썼으면서도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는 보여 주시는 대로 예언하였습니다. 神學校(신학교)는 성경에서 눈뜨고 성경에서 잠드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뜨겁게 기도하여 이 끓는 가마의 시대에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신학대학의 사명입니다. 이 시대와 나라와 사람들에 대해 바르게 알기 위해 폭넓게 학문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많은 기도생활을 통해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며, 깊은 말씀의 연구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이.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렘 1:9)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그들을 사르리라』(렘 5:14)

오늘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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