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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나라 (롬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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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마다 신문 펴보기가 두렵다고 합니다. 신문을 보면 이 세상 은 온통 강력사건 뿐입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범죄와 악덕속에 서 살게 되었을까요.

주부들은 시장가기가 겁이 난다고 합니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뛰고 돈의 무게가 휴지장처럼 가볍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코너마다 쌓여있는 고급상품들은 서민들을 기 죽이기에 딱 알맞다는 것입니다.

국민소득이 2, 300달러 밖에 되지않던 시절입니다. 당시 머리좋고 유식하기로 이름난 어느양반이 예언했습니다. 국민소득이 700달러를 넘어서면 범죄율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국민소득이 그 열배나 뛰어오른 지금, 범죄는 100배 나 흉악해졌습니다. 대형화되고 흔해졌습니다. 물자는 풍부해졌으나 상대적 빈곤감은 더욱 심화되고 가진자의 사치와 횡포는 적대감을 가 중시켜 줍니다.

4,19 이전이 생각납니다. 비록 나라는 가난했어도 살기 좋은 때였 습니다. 탁한 공기로 숨막히지 않았습니다. 사람 물결에 시달리지도 않았습니다. 빈부 할것없이 모두 걸어 다녔습니다. 지금처럼 자동차 가 흔치 않았던 때였습니다. 먹는 것도 소탈했습니다. 돈이 많다고 더 좋은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하던 때였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요새처럼 메마르지 않았습니다. 각박하지도 않았습 니다. 비록 잘 산다고는 여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슬퍼하지도 않았 습니다. 워낙 가난에 익숙해 있었던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저 그만큼 순박했던 것입니다.

권력에 대한 지나친 탐욕으로 정치를 그르친 권력자들만이 아니었더 라면 거의 모두가 분수를 알고 살았습니다. 그때에도 요새말대로 권 력형 부정도있었고 부정축재자도 있었지만 눈감아 줄만했고 뻔뻔스 럽지가 않았습니다.

당시 권력의 제 2인자였던 이기붕 국회의장도 종로에 있는 양과점에 서 손수 빵을 사들고 집엘 들어 갔습니다. 철저한 반일주의자 이승만 대통령도 경비절약을 위하여 일제의 잔재였던 경무대의 다다미 방을 고치지 않고 그냥 쓰던 때였습니다. 그런 정도의 것들이 지금 우리가 자유당 독재시대라고 부르던 때였습니다.

사랑하는 청취자 여러분 잘 산다는 의미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 때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요새처럼 돈독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거리가 해만지면 칠흑 같이 어두어도 뒷골목을 무서워하지 는 않았습니다.

그런 세월이 지난지 어언 30여년 우리는 이제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지 가질 수 있고,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어느 경제 잡지는 한국을 세계에서 열번째로 살기 좋은나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 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우 잘 사는 나라가 된게 분명합니다. 그 렇다면 우리는 과연 잘 사는 나라에서, 아니 살기 좋은나라에서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른바 고도성장을 위해 너무도 값진 댓가를 치루었습니다.

국민소득 일천달러로 올리는 동안 염치를 잃어 버렸습니다. 이천달 러로 올리는 동안 선악의 가치에 대한 감각마저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 다. 지금 우리는 소유는 넉넉한데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 게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잘 살게 되면, 즉 돈이 많아지면 바로 행복해 진다고 노래 부르듯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돈도 벌었습니다. 선 진국으로 진입하게 되고 옛날의 가난을 잊어 버려도 좋을만큼 잘 살 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심성은 여지없이 파괴 되어 버렸고, 웬만한 폭 력이나 부정에는 끄떡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혈안 이 되고 보니 공장들만 만들어 낸게 아니라 범죄형 사회까지 만들어낸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잘 사는 나라란 짐승처럼 건강하게 살 수 있 는 나라뿐입니다. 그것은 육적 욕구만을 위하여 산다는 말입니다.

짐승에게는 먹는욕구, 성적욕구, 투쟁적 욕구만이 있습니다. 지금 이 런 짐승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인간처럼 사는 나라 는 분명히 아닙니다. 폭력을 합법화시키고 부정을 눈감아 준 사람. 권 력을 부정에 이용한 사람. 돈으로 양심이나 신념을 사고 파는 사람들 이 사는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살기 좋은 나라란 돈이 많고 편리해진 문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 다. 인간성이 살아있는 나라라야 합니다. 인간성이 말살되면 짐승 만도 못해집니다. 이 나라는 어찌하려고 짐승 같이 물질욕구에만 사로 잡혀 있을까요.

그래서 의식있는 사람들은 이 시대를 가르켜서 대화가 단절된 시대 라고 합니다. 대화의 단절은 오해와 갈등을 낳습니다. 불신과 충돌 을 낳는 것입니다. 짐승의 세계에는 대화가 없습니다. 오직 잡아 먹 고 먹히는 투쟁만이 있습니다. 대화의 단절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입 니다.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하나님과의 대화의 단 절입니다. 대화의 단절은 동물적 욕구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 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돈을 벌고, 더 좋은 집을 장만하고, 더좋은 가전제품, 마이카 시대이니 더 좋은 자가용도 마련해야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웃과의 대화할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학교는 입시경쟁으로, 회사에서는 승진할 욕심으로 눈이 벌겋습니 다.아름다운 동료의식은 채아볼 수가0 없습니다. 길거리에는 양보없는 차량행렬의 다툼으로 불의의 사고는 경감할 줄을 모릅니다.

한마디로 대화가 없습니다. 양보가 없습니다. 대화의 단절은 극단 론으로 치닫습니다. 대화가 단절된 곳에는 독선과 편견, 그리고 아집 이 싹트게 됩니다. 이러한 독선의 양극화 현상은 흑백대결로 끝없는 불행의 연속선을 낳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현상은 돈만 있으면 된다는 단세포적 발상에서 빚어진 것 입니다. 참으로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일도양단하는 결단으로도 해결 할 수 없는 깊은 괴리현상인 것입니다.

이런 비극적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변화시키고 바람 직한 차원으로 승화 시킬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슬픈 우리 현실의 참다운 해결의 치유 책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 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본문 말씀을 보십시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 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우리가 발딛고 있는 현실세 계를 부정하는 차안의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론이 아 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님이 왕래하시며 역사하시는 우리의 현 실 위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아들 예수님의 피로 부단 하게 구속의 사실이 선포되고 구원행위가 성취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 위에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불러 함께 모인 거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죄가 용서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질병이 치유되는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 받아 그리스도의 몸을 이 룬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대리기 관이 아닙니다. 파출기관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도 아닙 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땅위에 있는 교 회는 그래서 중요한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 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먹기 위해 삽니다. 먹기 위해 돈을 법니다.

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인류는 이 지구위에 문명을 이루어 왔습니 다.

우리는 먹기 위해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국력은 높아지고 소유가 넉넉해졌습니다. 그런데 반비례하여 인간성은 상실되고 동물적 삶이 되어 버리는 것은 어인 일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류의 시작부터 이 사실을 경고합니다.

아담과 이브는 먹기위해 금단의 과실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 과 인류에게 죄의 멍에를 씌워준 것입니다. 홍수의 의인 노아는 홍수 는 잘 통과 하였으나 먹는 일에 실패하여 아들에게 저주의 유산을 물려 줍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송아지 우상 앞에서 앉아서 먹고 서 서춤추다가 십계명 돌비가 깨어지는 언약의 파괴를 가져옵니다.

복음서도 이 사실을 매우 따갑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호화 로이 연락하며 먹기만 탐하다가 불타오르는 지옥에 가게 됩니다. 혀 끝에 물한방울도 용납받지 못하는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부자의 상아래에서 먹는 빈곤을 겪었던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사람의 행복은 아닙니다. 좋은 옷 입고 좋은 집에 사는 것이 만족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말사면 종 잡히고 싶 은 것이 소유의 욕구입니다.잘 먹고 마시고 싶은 욕망은 끝없는 범죄행위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헤롯은 술좌석에서 춤추는 조카 딸의 손에 술 한잔 받아 먹기 위해 세례요한의 목을 안주 삼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헤롯의 제물이 된 세 례요한은 사람이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가 된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였습다. 현대인은 황금과 건강과 쾌락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로 사람사는 삶의 기준을 삼고 있습니 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입니다. 인간의 무지는 가치관을 전도 시킵니다. 성경에서 무지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라고 하였는데 무지는 이렇게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병인 것입니다 자연인이 추구하는 것은 짐승 같은 생활 밖에는 기여하지 못합니다.

사자 같이 싸우고, 뱀 같이 흘래 붙고, 소 같이 먹는것 밖에 없습니 다. 이것이 육적인간이 추구하는 가치관입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은 몸과 마음을 참된 요구로 가득 채워줍니다. 영 원을 살게하는 지혜요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보양제인 것입 니다.

사람의 의는 기준이 없습니다. 인간 선이 추구하는 의는 허공을 치 는것 같이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행여 무슨 잘한 일이라도 있으 면 자기 힘으로 된줄 알고 교만하고 뻐기다가 넘어지고 꼬꾸러져서 결 국은 패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육신의 넘어짐만이 아닙니다.

영원한 불구덩이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의가 아닌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 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의로 칭의를 받은 사람들입 니다. 그 리스도는 하늘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인 그리 스도의 교회가 곧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와 같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생각 한것 같이 생각하고. 그리스도가 행동한것 같이 행동해야 합니다. 그 리스도가 사랑한것 같이 사랑하고 그리스도가 덕을 세운것 같이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십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사업을 번창 하게 하고 생활에 안정을 줍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게해 줍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희락으로 가득차서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복 즉 지복을 받아 누리게 해주십니다.

이 땅에 사는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는 지대한 의무가 있습니다.

갈 길을 알지 못하고 세상에서 방황하는 내 형제 내 친척이 올바른 삶 을 살고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얻도록해야 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육적이고 세상적이 되어서 썩어질 세 상의 것들에 매달려 함께 아웅다웅 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진정한 의와 평화로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려면 모든 교회들이 오직 성경의 모범만을 따라서 성경적인 교회를 이루어야 합 니다.

자신의 교회만을 살찌우게 하려는 이기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파 당 싸움을 그쳐야 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성령님을 모셔야 합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은 의와 평강과 희락을 이루게됩니다. 진정한 그리스 도의 교회가 이루어지면 대한민국 나의 조국의 현실도 그렇게 슬픈 것만은 아닙니다.

이 방송을 청취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합 니다. 오직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참 삶을 이 땅에 재현해야 합니 다. 온전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럴때에 그리스도 가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의 처처에서아름답게건설 되어질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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