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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에 속한 사람 (롬 0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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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바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이야말로 씩씩한 『영에 속한 사람』의 표상이라 할 것입니다.
어느 성도의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나는 조국을 위하여 조국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위하여, 육이 죽고 영이 살아 천국생활이요, 나는 죽고 주님 살아 최고 영광이라』
우리가 죽음에 대하여 몇 가지 각도에서 고찰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불교에서는 『만사가 諸行無常(제행무상)이요, 輪廻(윤회), 還生(환생)하는 것으로 보며, 그 최고의 죽음은 열반에 해당되며,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실존주의 견지에서는 『인간의 본질은 불안의 요소를 갖고 있는 불안의 동물이라 보며, 허무와 고독과 절망을 면치 못하는 운명이므로 사나 죽으나 다 같은 불안이요, 절망이니 죽음에 대하여 그대로 태연하게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3) 기독교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5:1)
즉 영에 속한 영원한 집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마음이 굳세어 육체를 떠나 주의 집에 거하기를 더욱 즐거워한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희열로서 죽음을 『영생의문』으로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참된 신앙을 소유한 자는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신무기 핵무기의 출현은 우리를 더욱 급속히 하나님께로 가게 하는 방편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더 적극적이요 신앙적인 말을 들어보면 성령충만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23-24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욱 유익하리라』
잘 믿는 적극적인 신앙은 빨리 죽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요 어디까지나 살아 남아서 이 땅을 『靈(영)의 나라』로 『義의 나라』로 변화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마치 용맹한 군인이 전선에 나가 싸우는 것을 후방에서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그 사명을 다함에 있어 적극적입니다. 이 땅을 악령과 불의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웁니다.
深山幽谷(심산유곡)으로 도피하는 격의 寺院(사원, 절)과는 달리 죄악의 도시, 복판에 교회를 세워 복음과 의를 외치며 실제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아! 영의 나라는 가까워 오고 이 땅에도 하늘나라가 이룩되는 여명의 아침은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력의 위대성을 認知(인지)하여야 합니다.
동시에 인간의 정신력과 智力(지력)의 유한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히틀러의 의지의 투쟁이나, 『정신력은 무한하다』고 했던 일본 수상의 기백도 결국은 전쟁에서 패함으로서 인간의 정신력은 결코 무한한 것이 아니고 유한한 것임을 입증하고야 말았습니다.
스가랴서 4:6을 보십시오.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되 오직 나(하나님)의 신으로 되느니라』더욱 급속히 하나님께로 가게 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바에야 인간의 힘 이상의 異蹟(이적)까지 믿어야 할 것입니다. 터툴리안은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파스칼은 『이적에 반대하여 합리적 신앙을 가질 수는 없다』고 하였으며, 어거스틴은 『기적이 없으면 나는 크리스챤이 될 수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는 것만 하는 하나님, 과학원리만을 순행하는 하나님으로 믿는 것은 인간의 주관, 일방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자기 멋대로 약하게 만든 일종의 불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썬다 싱』은 독이 든 도시락을 먹고 심한 복통을 느끼고는 죽어 가는 몸을 이끌어 선교사를 찾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한 영력은 선교사의 기도에 의하여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자연의 이치, 의학의 이치를 무시하고 『썬다 싱』은 건강하게 회복되었던 것입니다. 불치의 병인 문둥병에 걸렸던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의 명령을 좇아 요단강물에 일곱 번 담갔을 때 완치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영에 속한 인물과 함께 말세에 사람의 지혜가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큰 역사를 이룩하실 것을 의심 없이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한국은 과학계에 있어서, 경제계에 있어서 즉 물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세계적으로 볼 때 뒤떨어져 있습니다. 인공위성도 없고, 로케트도 없으며, 국민소득은 불과 80불밖에 되지 않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며, 『가난한 자에게 주목하여 복음을 전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가난한 우리 한국을 주시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에는 새벽기도를 통해 무장된 영적인 용사들이 많습니다. 다른 면에서는 우리가 뒤쳐진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영에 속한 면에 있어서는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터전과 소질을 갖추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땅을 영적으로 넘치게 하십시다! 우리는 지금 청명한 계절을 맞이하여 저 푸른 하늘 위로 오르고 또 오르는 독수리를 우러러보십시다. 그 높은 곳에서 더 높이! 정신적으로 더 높게, 그리고 무한히 높은 영적 차원으로 더 높게 올라가십시다!
오늘 저녁예배는 박 집사님, 전 집사님의 가정이 서울로 올라가시게 되어 송별예배로 드리게 됩니다. 그분들의 생애가 서울로 올라 가셔서 가정적으로 더욱 화목하고, 경제적으로 육신적으로 더욱 형통하며 모든 면에서 향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높이 올라가는 가정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도 다같이 영력을 얻고 올라가는, 한 층 더 힘찬 우리의 생애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이사야서 40:30-31을 보십시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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