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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피조물의 고통과 탄식 (롬 08: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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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까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환경문제가 90년대 이후 빠르게 커다란 문제로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피부에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자연의 오염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따라서 사회단체들은 자연에 대한 심각한 우려와 함께 여러 가지 환경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샛강 살리기 운동', '녹색 운동','쓰레기 분리 수거 운동'외에도 많은 환경운동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연은 매연과 폐수, 기타 여러가지 원인 때문에 이제 물은 먹기 힘들 정도가 되었고 공기는 그 오염의 정도가 도를 지나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며 어떤 신앙의 자세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까요

1.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환경의 문제는 기독교 있어서 단순한 자연보호의 차원이 아닙니다. 자연의 파괴와 회복의 문제는 신앙의 문제이며 하나님과 관계된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신성한 창조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으며 모든 피조물은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 탈신성화된 자연의 이해가 커져 가면서 자연은 인간의 지배와 점유의 대상물로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중심주의의 팽배로 인한 결과이고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대한 범죄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땅을 정복하라',`모든 것을다스리라.'는 귀절은 무비판적으로 인간중심주의의 근거가 되었고, 인간과 다른 자연을 구분하여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의 왜곡과 오만과 무지가 생태적 위기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많은 문제를 가져온 것입니다.

성서는 언제나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시며,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자연을 파괴할 어떤 권한도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권리만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고 인간도 그 피조물 중 하나이므로 우리 모두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2. 환경의 회복은 신앙의 회복을 의미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우리의 땅은 인간의 욕심과 무절제로 인해 창조의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의 행위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의 도전이며 범죄입니다. 따라서 우리 기독인들은 이런 문제들을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인들은 환경의 회복을 위하여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사회운동처럼 자연보호 캠페인을 하여야 합니까 물론 그런것도 중요하지만 기독교인의 환경회복운동의 출발은 바로 창조질서의 회복이어야 하며 그것은 신앙의 회복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의 결과이며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자 범죄입니다. 따라서 오염 속에서 탄식하고 있는 모든 피조물의 외침은 인간의 회개로부터 회복을 위하여 가장 필요한 신앙적 요구입니다. 이런 모든 창조질서 회복의 가능성은 바로 우리의 잘못된 신앙의 회복 속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중심으로부터 인간 중심으로 오만해진 인간의 일그러진 진상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에의 참여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울 사도의 말씀은 생태적 문제에 대해 많은 의미를 던져줍니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재창조의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 한 개인의 인격적 차원을 넘어서 자연의 병듦,환경의 오염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또한 성서에는 자연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들에 있는백합화도, 하늘의 새도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마 6:26),씨앗 뿌리고 성장 추수하는 것 모두는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논술(막 4:3),구름과 비와 천둥 속에서도 하나님이 심판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눅 12:54) 등은 이를 잘 나타냅니다. 자연의 죽음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의 파괴이며 하나님의 영광의 상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로마서 글은 피조물의 탄식과 고난, 그리고 하나님 아들들의 출현에의 대망을 생태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고난과 죽음에 직면함에 있어 구원의 현실성에 대한 복음을 삼중적 구조 속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창조 질서의 파괴는 (19-22절) 그리스도인의 고난(23-25절)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영들의 고난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자연은 인간을 통해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고난은 극복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창조질서의 회복이며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회복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왜곡된 자연의 극복은 결국 인간과 자연의 화해 속에서 이루어지며, 인간과 자연 모두는 자연과 신앙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한 불신앙으로 말미암은 환경의 파괴는 이제 우리의 신앙의 회복으로 극복되어야 합니다. 그 신앙은 바로 창조질서의 회복을 위한 실천의 신앙이며 적극적인 신앙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고통과 고난을 극복하며 부활로써 재창조되었듯이 고통받는 피조물은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말미암아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예화

1. 환경회복을 위한 지침

① 함께 차를 타면 하루 240만 리터의 휘발유 절약, 500킬로의 이산화탄소 감소.

② 자동차의 배기가스는 한 사람이 15-30일 동안 쉴 수 있는 산소를 1시간에 소비

③ 냉장고는 도시 전기료의 20%에 해당

④ 백열등을 형광등으로 바꾸면 도시전력 20%절약

⑤ 된장국 한 그릇 정화시 욕조물 25통 분량의 맑은 물 필요.

⑥ 사무실의 폐지 하루 사용량 회수하면 6톤,하루 120그루의 나무 보호

⑦ 우유 30매 재활용하면 화장지 5개 만듦.

⑧ 아기 한명 키우는데 쓰는 일회용 기저귀에 나무 72그루 소비

⑨ 한 해 버려지는 음식물 값은 8조원.

예화

2. 시애틀 추장

1855년 미국의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이 시애틀 추장 부족의 땅을 매수하려했을 때의 일이다. 시애틀 추장은 다음과 같은 대답으로 생명을 선포했다.

하늘이나 토지를 어째서 당신네들은 파고사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런 생각은 우리에겐 기묘하게 생각됩니다. 공기의 신선함이나 물의 반짝임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데도 어째서 살 수 있습니까 이 토지 모두가 우리에겐 신성한 것입니다. 만일 이 토지를 우리들에게서 사들인다면 거기에 있는 공기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 공기는 생명을 지탱하며 혼을 길러주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대지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인간이 대지에 속한다는 것을. 모든 것이 인간 모두를 이어주는 피와 같이 이어져 있습니다. 인간이 생명이라고 하는 직물을 짠 것이 아니라 인간은 그 생명 중의 한 가닥 실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이 그 직물에 대해 하는 일은, 실은 그 자신에 대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우리의 신은 당신네들의 신이기도 합니다. 대지는 신에게 있어 소중한 것이어서 그 토지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 창조주에 대해 모욕을 하는 것입니다.

 기 도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 피조물인 저희가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여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더럽혀왔습니다. 오직 주인은 한 분이시며 창조주도 주관주도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환경보호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무절제와 불경건의 생활을 버리고 청결하고도 절제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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