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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들 사이의 관용 (롬 1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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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신앙 잡지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두 사람은 가까운 친구 사이인데, 한 사람은 장로교인이고, 다른 사람은 침례교인입니다. 두 사람은 신앙 생활에 관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에게 미묘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침례교인 친구가 먼저, 장로교에서 어린 아이에게 침례(세례) 를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장로교인 친구는 장로교에서는 세례 를 할례와 비슷하게 생각하기 때문 이라고 대답하면서, 아브라함이 구원받 을 때, 아브라함의 전 가족이 할례를 받지 않았나 그런데 침례교에서 어 린 아이들에게는 세례(침례)를 주지 않는 이유는 뭔가 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침례교인은 침례교에서는 구원받은 성도에게만, 그 표시로 침례 (세례)를 주기 때문에, 자기 믿음을 고백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기 전에는 침례(세례)를 주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빙긋이 웃으면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유쾌하게 서로의 의견이 다른 것 을 이해하게 된 것에 만족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믿음 안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경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는, 지난 2000년 동안 계속되어 온 일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런 논의들이 언제나 우호적으로 끝나 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성경적인 논쟁의 원칙을 제시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논쟁의 원칙은 성경에 명백하게 언 급된 원칙에 대해서는 단호하라, 그러나 성경에 명백하게 언급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와의 의견 차이에 대해서 관용하라는 것입니다. 로마 서 14장 13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 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그 렇습니다. 때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어떤 문제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벌일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는 성경의 원칙에 굳게 서서, 상대를 설득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원칙이 아닌 문제에 대해 서 상대의 의견을 인내하며 경청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 느 경우든, 창조적인 논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상대의 의견에 귀를 기울 이는 관용의 태도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할 것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본질에 있 어서는 일치(연합)하고, 비본질에 있어서는 자유하며, 이 모든 것에 사랑을 더하라 는 신앙 선배의 지혜를 기억하며, 성경적인 삶을 사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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