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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확실히 구원받으셨습니까 (딛 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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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교리이자 절대로 필요 한 경험입니다. 즉,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예수를 믿는 자는 자기가 거 듭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거듭났는데도 거듭났다는 말의 의미를 몰라서 혼동합니다. 그것은 한국 교회의 잘못입니다. 거듭났 다는 단어를 아무 때나 씁니다. 교회에서도 말 실수하지 않는 사람, 화 내지 않는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와서 거듭나 보려고 애쓰는데 안 되는데요라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듭 난다는 것은 마치 아기가 태어나는 것과 똑같습니다. 순간적인 일입니 다. 난 다음에 보면 장애자도 있고 건강한 아이도 있지만 어쨌든 일단 태어난 것은 태어난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나는 것 은 즉각적인 사건입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헬라어로 팔링게네시아(palingenesia)인데 팔린(palin)은 다시라는 말이고, 게네시아(genesia)는 낳는다는 말입니다. 디도서 3장 5절에 따르면 거듭난다 는 것은 인간의 마음 속에 새로운 영적 질서가 생기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 속에 영적인 생명, 즉 영원히 죽지 않는 하나님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7절에서 예수께서는 거듭남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으려면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없 습니다. 태어나야 비로소 그때부터 나무도 보이고 돌도 보이고 새도 보 이고 하늘도 보이고 부모 얼굴도 보이는 것이지, 태어나기 전까지는 아 무리 뱃속에서 몸부림을 쳐도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멀쩡한 사람들이 맨날 주여 주여 하고 앉 아 있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요한복음 3장 7절에서 거듭난다고 한 표현은 헬라어 성경에는 겐 네데나이 아노덴(gennethenai anothen)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위 로부터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즉, 이 세상의 부모를 통해 태어나는 것 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 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 13).

거듭남의 의미로 어떤 때는 부활이라는 단어도 씁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 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27).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다시 산다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하나는 영 적으로 살아나는 것이고 하나는 마지막 날에 사는 것, 곧 육신으로 부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살아난다는 것은 지금 영적으로 죽어 있 음을 의미합니다. 밥 먹고 공부하고 음악 듣는 것은 육(肉)으로 사는 것 이지 영(靈)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어 있는 영에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넣어 주심으로 그 영 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는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돌이키는 그 순간에, 우리가 만질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영적으로 새 롭게 창조하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회심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는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께서도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하 셨습니다. 여기서 바람이라는 단어는 성령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 도의 복음을 들어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돌아서 는 그 순간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서 우리가 영적인 생명을 갖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런데 거듭나는 순간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상당히 극적으로, 몸부림을 치고 눈물을 흘리는 반면 어떤 사람은 조용히 거듭 납니다. 성령이 반드시 불 같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조용한 바람 같기 도 하고 물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개 우리는 불 같은 성령을 원하지 바람 같은 성령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성령은 여러 모양으로 역사하십니 다. 신앙을 획일화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타고날 때부터 차분합니 다. 그런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조용히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활달해서 교회 가서도 그저 기뻐 즐거워하며 찬송합니다. 나와 다른 모습으로 표 현된다고 해서 저 사람 성령 못 받았나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들도 다 다릅니 다. 거듭남이 그리스도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험이라고 한 것은 극 적인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온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거듭남의 필요성 첫째로, 인간은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엡 2:1-5).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1절).

모태에서 한 번만 태어난 사람의 경우 영(靈)은 죽어 있습니다.

 둘째로, 인간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요 8:44).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든 마귀의 자녀든 둘 중 하나입니다. 그래 서 우리는 사단의 세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셋째로, 인간은 영적인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고전 2:14).

육(肉)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 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靈的) 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영이 죽어 있으면 영적인 것들을 깨달을 능력 이 없습니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입으로 고백하는 그 순간에 성령께 서 나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거듭나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 시오. 사실은 너무 쉬워서 어려워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신학적 오해입니다. 거듭남은 내가 주관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 고 돌아와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선물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치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생명을 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거듭났다고 해 서 화를 안 낸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성화(聖化)와 관계되는 일입 니다. 성화와 거듭남은 다릅니다. 즉, 출생과 성장이 다른 것과 마찬가 지입니다.

 넷째로, 인간 스스로는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전혀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후 4:3, 4).

내가 나 자신을 영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서 생명을 받은 것처럼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께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시 기 때문입니다(요 3:3, 5, 7).

네가 반드시 거듭나야 하겠다(7절).

모든 사람은 다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그분을 자 신의 구주로 고백하면, 그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당신 안에 역사하 셔서 당신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고 영적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 다.

 거듭남의 본질 첫째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영적 인 생명을 공급해 주십니다.

비록 아무런 느낌이 없더라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합니 다 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살리시고 내 안에 영원한 생 명을 집어넣어 주심으로 새 생명이 생기는 것(요 3:6, 7)이며 이로써 새 로운 피조물(고후 5:17)이 되는 것입니다.

거듭나면 새 성품이 생기는데(벧후 1:4) 이것을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합 니다. 본래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 이스마엘이 먼저 태어났습니다.

이스마엘이 15세쯤 되었을 때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이삭은 언약의 자녀 였습니다. 이삭이 서너 살이 되자 이스마엘은 자기가 장자인데도 이삭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는 게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미워 하고 구박했습니다. 우리는 본래 이스마엘처럼 태어났는데 거듭나면서 우리 속에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먼저 난 이스마엘이 이삭을 누 르려고 투쟁을 합니다. 이스마엘을 잘 먹이면 이스마엘이 잘 크고 이삭 을 잘 먹이면 이삭이 잘 크게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에도 나왔듯이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를 쫓아내십니다. 거듭났다고 해서 금방 성인(聖人)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양육하고 가르치며 영적 인 이삭을 내 안에서 키워야 합니다. 이것이 성화의 과정입니다. 이스마 엘이 강하면 육적(肉的)이고 이삭이 강하면 영적(靈的)입니다. 성숙과 미성숙의 차이는 어느 편이 더 커 있냐에 달렸습니다.

거듭나면 새 마음도 생깁니다(겔 36:25,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 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 운 마음을 줄 것이며(26절).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어린아이의 살과 같이 부드러운 새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거듭나면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됩니다(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를 주셨으니.

여기에서 자녀라는 단어는 복수(複數)입니다. 형제가 많아지는 것입니 다. 모두가 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영원한 자녀들입니다. 거듭난 사람 들끼리는 거듭나지 않은 자기 혈육보다 더 가깝습니다. 혈육이라도 거듭 나지 않은 사람은 이상하게도 말이 안 통하고 거리감을 느낍니다. 육신 의 가족과 영의 가족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거듭나면 새로운 영적 통찰력도 생깁니다(요 3:3).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거듭나면 영적인 것이 보이고 들리고 깨달아집니다. 제가 25세에 거듭나는 체험을 했는데 그 전날과 다음날 이 달랐습니다. 매일 하루에 3장씩 성경을 읽었는데 그 전날 읽은 3장과 그 다음날 읽은 3장이 달랐습니다. 전에는 말씀 읽는 게 지루할 때도 있었는데 거듭난 후로는 영적 생명이 생겨서 말씀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생명이 있는 아기는 젖을 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 때마다 은혜를 받는 반면, 어떤 사람은 지겨워합니다. 영적인 성숙도와 통찰력에 따라 서 각기 반응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은혜가 되고 자꾸 말씀에 대해 목말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도 저히 이해를 못 합니다.

그러나 거듭나면 그런 사람에게도 새로운 통찰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거듭나면 새로운 도덕적 성향이 생깁니다(엡 4:23, 24). 전에는 좋지 않은 것을 좋아했어도 거듭나서 점점 성숙해지면, 좋지 않은 것이 자꾸 싫어집니다.

미국에서 초빙 교수로 일 주일에 한 번씩 대학에 강의갈 때 있었던 일입 니다. 어느 날 지나가다 보니까 학생들이 시끄럽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상급생 두 명이 신입생을 훈계하고 있고 신입생은 따지고 있었습니다.

신입생이 저를 보자 교수님,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이렇게 머리를 여 자처럼 길게 하고 록큰롤 듣는 게 뭐가 잘못된 거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라고 했는데…라고 하소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 믿은 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었더니 6개월 되었다고 했습니다. 히피(hippie)가 예수 믿어서 이제 막 신학교에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는 히피식으로 살지 말라는 이야기가 없지만, 성경에 없는 것은 상급생들이 하는 대로 따르라고 했습니다. 거듭나면 새로운 도덕적 성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악에서 점점 멀어지고 선이 점점 좋아집니다. 또 악을 행했을 때도 금방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제가 볼 때 하나님 의 자녀들이 악을 행하고 싶어 행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둘째로, 거듭난다는 것은 오랜 진행 과정이 아니라 순간적인 사건입 니다.

출생은 사건입니다(요 5:24). 분만시에 진통하는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아기가 나오는 시간은 잠깐입니다. 태어나는 그 자체는 시간이 안 걸립니다. 영적인 출생도 이와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 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하게 들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교회 안 에서도 그렇습니다. 복음을 정확하게 들으면 그 복음의 씨가 박혀 언젠 가는 태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람들이 복음을 정 확하게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대개의 경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전도할 때 대개 교회 가자고 하지 복음을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복음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성령께서는 복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셋째로, 인간의 인지(認知)를 넘어선 하나님 자신에 의한 신비스러운 역사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태어나는 자도 이와 같으리라(요 3:8).

거듭남은 눈으로는 안 보이는 영적인 사건입니다. 새로운 출생은 그 결 과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나뭇잎이 흔들리 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부는 것을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새로운 도덕적 가치와 태도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성화(聖化)와 거듭남 을 혼동해선 안 됩니다. 거듭난 결과 성화로 가는 것입니다.

 넷째로, 거듭남은 느낌이나 감정적 경험이 아니라 내면에 생기는 영 적 현실입니다.

거듭날 때 반드시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거나 감정적 움직임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그 반응이 다릅니다. 그러나 어쨌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면 영적인 거듭남의 실체 가 그 내면에 나타납니다.

거듭남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요 1:12, 13), 성령께서 중재하 시고(요 3:8), 말씀이라는 방법(벧전 1:23-25)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복음을 듣고 깨달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 다.

 거듭남의 조건 첫째/하나님 편의 조건 하나님 편에서의 조건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 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人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4). 들려야 한다는 말은 원어에 따르면 절대 필수적 조건을 의 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없이는 거듭남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십자가를 통한 구속(救贖) 역사는 하나님께 속한 일이므로 인간이 좌우할 수 없습니다.

출애굽 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해서 뱀에게 물렸습니다. 마 찬가지로, 한 번 태어난 사람들은 다 뱀에게 물린 것입니다. 그래서 뱀 에게 물린 사람의 몸에 독이 있듯이 인간의 몸 속에는 죄성(罪性)이 있 습니다. 또한 독이 퍼지면 죽듯이 죄성 때문에 인간은 결국 죽습니다.

서서히 죽어 가는 것입니다. 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서는 장대에 달린 구리뱀을 쳐다보면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구리뱀을 바라본 사람들은 다 살았습니다. 구리뱀 속에 치유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쳐다보면 살리라는 말씀을 그들이 믿었기 때문 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 광야의 사건은 예수 그리 스도에 대한 하나의 모형이었습니다. 구리뱀을 통해 누구에게나 살 길이 열렸듯이 십자가 사건 이후 구원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렸습니다. 거듭 남을 위한 하나님 편의 조건은 2천 년 전에 이미 충족되어 끝이 났습니 다.

 둘째/인간 편의 조건 인간 편에서는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믿으면 됩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죄 문제와 죽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신 분이라고 믿고 고백하면 됩니 다. 간단합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 심이니라(요 3:16).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나님 편의 조건은 충족되었기 때문에 인간 편의 믿음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사실 거듭 태어나 구원받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습니다. 그런 데 이 진리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 좋은 소식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복음의 내용을 잘 설명해 줄 책임이 있습니 다.

 거듭남의 증거 첫째로, 의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의(義)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 2:29).

거듭난 사람은 의롭게 살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장성한 사람도 두 발로 잘 걸어다니다 어쩌다 돌에 걸려서 쓰러질 때가 있듯이, 가끔 실 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의롭게 사는 것이 거듭난 사람의 삶의 방식입니 다.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의롭게 살아갑니다. 또 그런 삶을 소원 하게 됩니다. 새 마음, 새로운 도덕성, 새로운 통찰력이 생겨서 새롭게 살고 싶은 의욕이 생깁니다.

 둘째로, 죄를 싫어하게 됩니다.

죄를 좋아하면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면 죄를 미워하며 죄를 짓지 않습니다(요일 3:9/5:18). 그런데 어쩌다 죄가 좋아지는 때도 있습 니다. 하루아침에 죄된 삶에서 완전히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차근차근히 꾸준히 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꺼 번에 성숙하려고 하니까 힘들어서 완전히 두 손 놓게 되는 일들이 생기 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웃을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요일 4:7).

하나님께로서는 난 사람의 특징은 사랑입니다. 남을 위하고 싶은 마 음들이 속에서 생깁니다.

 넷째로, 예수님을 믿습니다.

주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요일 5:1).

주(主)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입니다.

 다섯째로, 세상을 이깁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요일 5:4).

세상에 지는 때도 있긴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대부분 이기며 살아갑 니다. 통상적으로 이기며 사는 것이 정상적인 삶입니다. 거듭나면 새로 운 생명이 그 안에 있고 성령이 그 안에 임재해 계셔서 도와주시기 때문 에 세상을 이기며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 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적으로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 으로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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