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라오디게아교회:구토하게 하는 교회 (계 03:14-22)

첨부 1


1.라오디게야 市

1.위치
빌라델비야 동남쪽 68KM 지점, 골로새로 가는 길에 있다. 그 도시는 편지쓰기 35년전인 AD62년에 지진으로 파괴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금으로 도시를 쉽사리 재건하겠다고 선포하면서 황제와 국가의 도움을 거절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번창하는 도시중 하나였습니다. 그 도시는 전지역에서 주요한 금융 중심지였으며, 자신의 부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2.眼科 의학의 융성
유명한 의학교가 이름나 있었으며, 고대 세계전역을 통해 안질의 치료로 유명했습니다. 여기에 그들의 眼科學으로는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눈병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3.쾌락의 경기장
소아시아에 있는 대부분의 도시들처럼, 그 도시도 쾌락에 미쳐 있었습니다. 3개의 극장과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은 라디오게아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기 보다는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물론, 강력하고 힘있는 교회가 거기 생겨났는데, 그 교회는 후에 우리가 살펴본 이 구절에서 두려운 용어로 묘사되어야만 했습니다..

1.책망만 있는 교회(15-16)
라오디게야 교회는 칭찬거리가 하나도 없는 교회였다. 예수님이 가장 협오하여 구토가 나는 교회였다. 왜 그러했는지 알아보자.

1.미지근한 교회

고대 사람들은 종교적인 희생제사에서나 연회에서 뜨겁거나 차거운 술은 먹지 않았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물 사정이 좋지 못하여서 히에라폴리스에서 수 십리를 공급하여서 먹기 때문에 물이 도착할 때에는 미지근해 있었다. 여행객들이 까끔 그곳에
와서 물을 먹고서는 구토를 하였다고 한다. 물은 맑았지만 미지근 했기 때문이다.
술이나 물은 미지근한 것을 싫어 하면서도 신앙은미지근한 그 상태로 있었다. 이 미지근한 상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랬동안 되어온 것이 었다.

2.미지근한 교회의 네가지 특징

하나님께서는 열심있는 남자, 열심있는 여자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크리스챤의 삶인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열정을 상실했습니다. 17절에서 매우 분명하게 미지근함의 네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자만과 물질주의
성도는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들이라곳 성경은 말합니다. 오늘과 같은 시대, 즉 수백만 달러짜리 건물을 마치 텐트 하나 치는 것처럼 서둘러 지으면서도, 성경을 달라고, 문서를 달라고 절규하는 지역에 사는 한번도 복음을 듣지 못한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중 단지 조금만을 보내주는 시대에는 다소 당혹스러운 것입니다. 이러한 자비심의 결여와 이 영역에서의 현실감의 결여는 필연적으로 우리가 라오디게 교회라는 표시는 아니라도 라오디게아주의가 교회에 몰래 스며들어 표시라고 생각합니다.

2)자급자족
미지근함은 재산이 증가되면 될수록 커졌습니다. 자급자족-그것은 현대인의 증명서 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는 교제와 공동체의 실체가 우리 가운데 그다지도 적은 것입니다. 보험증서 및 슬며시 다가오는 사회주의로 인해 우리는 모두 자급자족하고 있으며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누구에게든지 의지하는 것을 당혹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만심을 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게도 강조되고 있는 교제로부터 떠나 떠돌아 다니는 것입니다. 부자들이 잠더 자자 좀더 쉬자 하는 날 주님께서 도적같이 임하신다는 말씀에 관심을 가집시다.

3)안심
성도는 靈的戰鬪를 치루고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것을 어떠한 술어를 사용하건간에 성도의 신앙생활은 신병훈련, 사훈련캠프라 불리는 것과 비교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영적전투로부터 휴일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연료를 보급합니다. 때로 성경공부나 구역예배를 통하여 연료를 보급하고는 성령의 검과 믿음의 방패로 무장을 하고 전쟁터로 되돌아 갑니다.

4)가련한 것 가난한 것 눈먼 것 벌거벗은 것
라오디게아 교회의 진정한 모습은 가련하고 가난하며 눈멀었고 벌거벗었습니다.그러한 상태에 있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우리 삶에 스며들어올 때 우리는 점점 더 그러한 상태에 가까이 가며, 이러한 교훈들을 따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권면(18-19)

1.뜨거워 져야 한다.

오늘날에도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교회가 있으며, 라오디게아 크리스챤들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보다도 그것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고전 9:27).
빌리 그래함 목사는 1967년에 열린 대집회에서 말하기를
“예배나 수련회에서 만일 우리가 훈련된 삶을 기꺼이 배우고자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를 위해 살지 않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메시지를 갖고 실행에 옮기고자 하는 매일의 훈련을 취하게 도시길 바랍니다.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나는 (히 12:29)을 떠울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분이심이라.’ 여러분은 성경에 나오는 ‘불’이라는 단어에 대해 흥미로운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부족한 것은 열정이 아닐까요 열정이 결어되어 있을 때에 널리 퍼지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가르침을 받고 실천에 옮길 때, 사로잡힘이 되어 열정에 묻히게 됩니다. 그런 성도는 말씀을 전하건 안전하건 간에 증인 됩니다.
사무엘 프링글은 열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사랑이다. 그것은 믿음이다, 그것은 소망이다. 그것은 정열이다. 그것은 목적이며 결심이다. 그것은 완전한 헌신이다. 그것은 형식에 구애받는 것, 형식주의, 미지근함, 무관심, 협잠, 소란, 과시, 영적 죽음에 대한 신적 불만이다...그것은 겸손하고, 경건하며, 신실한 사람 안에서 그를 통해 불타고 있는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것이 바로 정상적인 크리스챤의 삶입니다. 누구나 이러한 사람은 일종의 종교적인 유물-아마도 그는 군사 동원등에 참가해야 하며 보통의 교회 또는 보통의 사회에서는 정말로 마음 편하게 느끼지 못하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내고 있는 사람은 정말로 약간 이상한 사람이며, 그 나머지 우리들이 정상적인 크리스챤들이라고 생각하도록 속아왔던 것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내 생각에는 악한 자가 널리 뿌러놓은 속임수가 있는데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을 미지근 형태, 이런 성도는는 분명 주님께 구토를 나타낼 것입니다. 나는 성령충만한 생활-열심에 사로잡힌 남녀들-이 정상적인 크리스챤의 삶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모두 꼭같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분이 우리의 개성을 소멸시키고자 애쓰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 등이 있지 않다면 우리는 결코 성장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진심으로 느낍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대로의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2.횐옷과 안약을 사라

고통을 지불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깨끗게 함은 때로 우리가 보는 것처럼 괴로운 것이 될 것입니다. 영적 뜨거움을 위하여 우리가 매일 성경을 꾸준히 공부하는 것을 대체시킬 수는 없습니다.
성도들 중에는 ‘네, 하지만 나는 성경이 매우 무미건하게 느껴져요’하는 부들도 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저 자신도 종종 성경이 매우 무미건조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느껴질 때가 성경이 더욱 더 필요한 상태입니다. 이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