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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상실, 회복, 감사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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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는 새보다 귀한, 백합보다 아름다운 주님의 자녀입니다. 내 삶의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입니다.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맥박이요, 신앙의 열매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리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고 했습니다.
우리도 보다 성숙한 감사를 주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말씀을 기초로 상실, 회복, 감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상실(삭개오가 잃은 것)

삭개오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지위를 잃었습니다. 그는 결코 잃어서는 안 될 것을 잃었습니다. 오직 아브라함의 행동을 본받으며, 아브라함의 삶을 살며, 아브라함의 정신을 소유한 자만이 참 아브라함의 자녀들입니다. 주님 자신도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요 8:39)
참 아브라함의 자손은 믿음으로 행하는 하나님의 종이요, 친구인 자들입니다(사 41:8). 그러나 삭개오는 이 참되고 실제적인 자손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의 삶이 아닌 부당착취와 타락된 일을 행하는 것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닌 악한 세상과 짝을 맺고 있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또한 삭개오는 길을 잃었습니다. 그는 길을 잃고 분명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위험한 절벽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고독했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버림받은 자가 되는 길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그리고 삶의 가치를 잃었습니다. 거룩하신 주님과 닮은 모습을 잃었습니다. 그는 어리석은 자가 되었고 추악하며 무가치한 자로 전락하였습니다. 그 결과 잃어버린 자가 되었습니다. 부자였지만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만나고 싶어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4절). 예수를 놓칠 수 없다는 강한 결의는 체면이나 명예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리장이었지만 소외감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빛(요 1:4)과 등진 그의 삶은 혼돈, 공허, 흑암(창 1:2)뿐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0절)

2. 회복

잃어버린 자란 잘못된 위치에 있음(in the wrong place)을 뜻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게 될 때 잃어지게 되는 것이며 다시금 아버지의 권속과 가족 안에서 순종하는 자녀로 자신의 마땅한 위치에 서게 될 때 그는 찾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삭개오에게는 주를 찾는 열심이 있었습니다(4절, 6절). 삭개오는 부자였습니다. 부자는 종교적 열심에 부적합한 자들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도 나타나 있습니다(눅 18:24). 부는 생수의 샘을 버리고 그의 갈증을 낮은 물가에서 해결하도록 유혹합니다. 사치,태만, 영적 무관심으로 흐르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그의 영적 갈망은 세속적 욕망을 극복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탐욕에 이끌리는 직업에 종사하였지만 그는 주님을 향한 열심은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소와 모욕을 무릅쓰고 어린애처럼 예수를 잘 볼 수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삭개오는 구원을 얻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9절). 구원의 시작은 예수의 오심입니다. 예수께서 여리고에 오셨시 때문에 삭개오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존 웨슬리가 말했던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자유의지적인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나무에서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6절). 이제 '분노의 자녀'이었던 그가 '하나님의 아들', '지혜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구원을 얻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9절)

3. 감사-삶의 변화

삭개오는 잃은 것을 찾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스스로 과거의 삶을 청산했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재산을 모으던 사람에서 이웃과 나누는 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당시의 규정에 의하면 부당하게 취득한 소득의 경우 원금의 20%를 더붙여 돌려주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금의 400%를 더하여 주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상실에서 회복의 자리로 옮겨진 사람은 삶이 사랑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구원은 한 순간에 시작될 수 있지만, 성화(sanctification)를 위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삭개오는 삶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이루어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삶은 계속되어져야 할 일입니다.
41세의 젊은 나이로 소천하신 고 김선옥 전도사님(충주 동지방 주치리 교회 담임)의 삶은 주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92년 12월 19일 자신의 신장을 아무 대가 없이 전혀 알지 못하는 한 가난한 여인에게 주었고, 95년 7월 12일 췌장암으로 죽으면서 자신의 각막과 시신까지 기증하고, 통장의 모든 것은 시무하던 교회의 건축을 위해, 책은 모교에, 집기는 후임자에게 주고 떠났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그의 삶을 이렇게 변화시켰습니다. 가장 성숙한 변화는 감사와 사랑입니다.

주님게서는 이 추수감사절에 삭개오처럼 상실에서 회복으로 다시 감사로 승화되어 우리의 삶이 참된 의의 열매를 맺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마 7: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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