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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약속대로 (막 02: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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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약속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약속의 실행에 매우 성실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건 사건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특히 상대방과의 약 속을 할 때는 더더욱 신중을 요합니다. 약속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지켜야 하기 때문에 사전에 그 약속이 실행될지 안될지 모릅니다. 약속을 한 후 만약 그 약속을 못지킨다면 상대의 기분이 상하게 되고, 자기의 약속을 굳 게 믿었던 사람은 위신이 떨어질 뿐 아니라 낭패를 주기 일쑤입니다. 본래 인간사회는 약속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형구 하나가 모두 인간이 살아가 는 것들에는 각자 지켜야할 약속들을 정해 놓고 있어서 이를 지킬 때 질서 가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길거리를 다니게 되면 으례껏 지켜야 하는 교통질서가 있습니다. 녹색의 불이 켜지면 가고 빨간불이 켜지면 멈 추어야 한다는 것은 서로의 약속입니다. 이러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당장 커다란 사고들이 잇따라 생겨날 것이고 더 이상의 교통질서는 필요없 게 됩니다. 이외에도 우리는 모든 약속들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혼자만 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함께 사는 가장 작은 단위의 가정이라는 곳도 서로의 약속이 있어서 질서를 유지하게 됩니다. 일어나는 시간, 식사하는 시간, 함께 모여야 하는 시간들은 식구들끼리 자연스럽게 약속이 되어져서 살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가정이 혼란스러워 질 것은 당연합니다. 식사하는 시간이 식구들마다 다르다면 여자분들은 하 루종일 상차리는 일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시간도 약속된 시 간입니다. 만약 이러한 약속을 해놓고도 지키지 않는다면 그 약속은 무의 미하게 되고 맙니다.

그런데 이러한 약속들은 때로 바뀌어집니다. 여름에 해가 길어지면 식사 시간이 그만큼 빨라지고, 겨울에 해가 짧아지면 식사시간은 그만큼 늦어집 니다. 우리가 매주 예배드리는 시간도 해가 길어지고 짧아짐에 따라 그 약 속시간도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약속들이 바뀌어집니다. 앞서 말씀드린 교통신호도 전과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차들 이 직진하는 것을 먼저하고 다음에 좌회전을 했는데 지금은 좌회전을 먼저 하고 다음에 직진을 합니다. 이러한 약속들은 각자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두 가지 다 좋은 점이 있다고 해숩 함께 사용할 수 는 없는 것입니다. 각각 정해 놓은 약속들은 나름대로 훌륭하지만 이러한 약속들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들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율법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율법들을 주시면서 이 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하나님을 대하여 어떻게 예배를 드 려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얻으려면 양의 피 를 흘려야 함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길 때 복을 받는다는 것도 가르쳐 주셨습니다.제사를 드리는 것보다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의 뜻이라는 것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방법도 구체 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약속들은 모두 하나님의 거룩하 심과 완전하심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인간은 그 죄악성만 더욱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행하여야 하는 모든 선행들이 기록되어 있으 나 아무리 이를 이행하려고 노력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표준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율법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율법 전체를 잘 지키다 가 그 하나만을 범해도 전체를 범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서 2장 10절 말씀에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 두 범한 자가 되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음과는 달리 율법을 잘 순종하지 못하여 하나님과의 약속 을 잘 지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처음 약속한대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백성을 선택하셔서 이들과 약속을 하시고 이 약속들이 잘 지켜지면 세상 모든 나라들이 다 하나님을 잘 믿을 줄 알았덟 데 먼저 선택된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어기므로 문제가 생겼습니다.

처음 약속으로는 인간이 죄를 지은 것에서부터 구원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 다. 죄인된 자들을 율법으로는 자유케 하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약속을 하셔야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상에서 우리 모든 인 류의 죄를 위하여 죽게 하심으로 이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누구나 죄로부터 자유를 얻고 구원받게 하시는 새로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할 때, 우리는 우리가 범빙틴 마땅했던 형벌을 주 님께서 대신 받음으로해서 영생의 길이 열렸습니다. 이제는 이 약속은 영 원히 세상의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약속으로 이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거룩하게, 죄없이 설 수 있 게 됩니다. 이제 처음 약속들은 새로운 약속들로 대체 되었습니다. 새로운 약속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새로운 질서속에서 새로운 계명을 따라서 살 면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에는 우리의 마음을 좌우할 수 있는 중심된 자리가 있 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분야를 다스리는 왕좌와도 같습니다. 이 왕좌 에는 내가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나의 옛 모습이 자리를 차지하고 왕노 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를 내 마음 자리에 들어오시 도록 영접하였을 때 나는 그 분께 나의 왕좌의 자리를 내 드리고 나의 삶 을 다스리시고 나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왕노릇을 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삶은 내가 다스려 나가야 겠다고 하는 생각으로 뒤덮일 때 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의 왕좌의 자리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고 내 가 왕노릇을 하게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왕노릇을 하게 될 때는 언 제나 사탄이 함께 왕노릇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죄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매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종류의 생활 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이러한 사람은 주님을 나의 생활의 손님으 로 여기려 할 뿐 실질적인 통치권을 양도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의 이기적인 욕망과 죄를 통하여 나를 다스리려고 하는 사탄과 손을 잡던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던가 해엊 합니다. 내가 내 마음의 왕좌에 앉아서 사는 생활은 겉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산다고 하나 구원받기 전의 모습과 같은 생활이 될 뿐입니다. 이러한 옛 생활은 주님께서 나의 왕좌에 앉으셔서 왕노릇 하시도록 하는 구원 받은 자로서의 새로운 생활과 결코 혼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러한 우리의 삶을 아시고 적절한 예화를 들어서 잘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제격이라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포도주는 처음에 공기와 합치면 알콜이 생기게 되 면서 팽창됩니다.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에는 물이 귀하기 때문에 포도주 를 많이 담아서 먹었는데 이를 보관 하는데 부대자루를 사용하였습니다.

심하게 팽창되는 새 포도주를 헌 부대자루에 담아 보관 한다면 터지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되면 부대자루도 못쓰게 되고 포도주도 못먹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는 것이 당연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새로운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새로운 마음을 가지면 내가 살던 옛 모습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서 살게 됩니덟. 만약 내 마음이 아 직도 헌 부대자루와 같은 모습을 버리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질서가 담겨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왕좌에 앉으셔서 왕노 릇하셔야 하는 새로운 마음, 새로운 천국의 질서대로 살려면 내 마음이 새 부대자루가 되어야 합니다. 새 부대자루는 내 뜻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하 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며 온전하신 뜻대로 사는 모습입니다.

나는 지금 옛 모습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을 받아 들인 새 부대자루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나의 삶을 그리스도의 생명의빛웠 비추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아직도 이제까지의 헌 부대자루를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새 생활을 담으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는지요.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에 따라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의 왕좌에 오시어 우리의 삶을 다스려 주시 도록 간구하므로 새 부대자루의 모습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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