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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피조물 (겔 36:22-31, 고후 05: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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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 폴 틸리히는 말하길 날더러 우리의 시대에 있어서 그리스도 교의 메시지를 통틀어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바울처럼 그것은 '새로운 창조'의 메시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창조된 세계를 소망하고 그것을 선포하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그 리스도를 통하여 만물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후 모든 것은 새롭게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권세있 는 새 교훈이었고, 그래서 그것은 새 옷감 또는 새 술로 비유되었습 니다.

그는 그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셨고, 그의 제자들에게 새 계명인 사랑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본 뜬 새로운 인간성을 입게 되었고, 만물도 새롭게 되어 새 하늘과 새 땅 이 창조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새로운이라는 말이 하 나의 상투어처럼 사용되었습니다. 즉 새 예루살렘, 새 이름, 새 노래, 새 하늘, 새 땅 등의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세계가 재창조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한번도 써보지 아니한 새 것을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이미 사용하던 낡은 것을 새롭게 하여서 쓰는 것도 특별한 맛이 있습니다. 큰 병을 앓아 죽을 줄 알았는데 치료를 잘 받아 기적적으로 다시 살게 되었을 때 제 2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새롭게 느껴지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도 이와 같습니 다. 처음부터 죄를 모르는 상태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더라 면 아주 좋았겠지만 한번 타락하여서 죄로 말미암아 오는 고통이 무엇인 지 뼈속 깊이 체험한 후 구원함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더 큰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 탕자가 일단 집을 떠나므로 체험했던 뼈아픈 경험들이 전에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절실하게 깨닫게 주었다면 그의 방탕은 결코 무의미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죄의 처절함을 체험한 후에 새롭게 되어 얻은 기쁨은 더 크게 마련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 는 재생의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지금 죽음의 쇠사슬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 들이 누릴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말씀으로 이룩하신 창조의 주제는 생명과 빛이었습니다. 빛이 들어오므로 흑암과 혼돈이 물러가고 새로운 생명들이 창조되었습니다. 창조된 생명들 가운데 으뜸은 역시 인간의 생명이었습니다. 아니 바로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 창조의 최대 목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의 이야기에 보면 엿새동안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인간은 맨 마지막에 창조되었습 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살 수 있는 모든 조건과 환경을 창조하신 후에 인간을 그곳에 살게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처음에 창조된 인간 생명의 본질은 자유였습니다. 자유는 인간 생 명의 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의 형상에 따라 특별히 창조하시므로 다른 생명과 다른 특권을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자유와 특권을 인간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 창조의 협조자로서의 역할을 감당케 하시기 위하여서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관리하고 그것을 보다 아름답게 꾸며가며, 혹은 이름을 붙여주는 역할을 인간에게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역할 을 위하여 하나님은 인간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을 주셨다고 하였는데, 그 내용은 생육하고 번

성하며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었고, 땅을 정복하라 또 모든 생물을 다스리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제약이나 억압이 없는 자유로운 인간 생명의 성장 내지 번 영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처음 사람인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유로운 인간의 삶의 모습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동산 안의 각종 나무의 실과를 마음대로 따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은 인간에게 허락된 자유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궁핍으로부터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처음 인간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는 자유만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처음 창조의 세계는 아름다웠습니다. 빛으로 가득 차 있 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말씀은 특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을 보시면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인간은 행 복했습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모든 자연은 인간과 친구였습 니다. 자연 역시 인간과 함께 아름다운 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사탄의 역사가 개입되므로 인간과 세계는 빛을 잃었고 급속히 흑암의 세계로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자기의 영역 속에 머물려 하지 않고 그 한계를 벗어나려 했기 때문에 비극은 시작되었고, 이 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이 함께 저주를 받으며 생명의 빛은 꺼져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람과 친숙했던 자연은 거칠어지고 사람의 적이 되었습니다. 그 리고 생명나무의 길이 막히어 인간은 진정한 생명의 본질 즉 자유를 상 실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로부터 사람은 타락하여 땅에 얽매어 땅엣것만 추구하게 되었고, 죽음의 권세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그래서 악마의 자녀 라고 불리우게 되었고,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생활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 다.

이때로부터 사람들 안에는 모든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 득차 있으며 시기와 살기와 분쟁과 사기와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 다. 그들은 뒤에서 수군거리는 자요, 남을 중상하는 자요, 하나님을 미 워하는 자요, 불손한 자요, 오만한 자요, 스스로 자랑하는 자요, 악을 꾸 미는 모략군이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우매한 자요, 신의 가 없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들이 되었습니다(롬 1:29-31).

모든 사람들이 다 죄 아래 사로잡혀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은 없다. 단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비뚤어졌다. 모두가 쓸모없게 변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들의 혀는 사람을 속이며 그들의 입술에는 뱀의 독이 있고 그 들의 입은 저주와 독설로 가득하다. 그들의 발은 피 흘리는 일에 재빠르며 간 데마다 파멸과 비참을 남긴다.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고 그들 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롬 3:10-18).

 여기에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려는 역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하 나님은 처음에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한탄하셔서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생 물을 땅에서 쓸어버리시려고 계획하사 홍수를 통해 이를 시행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를 남겨두시고 그로부터 새로운 인간의 후손을 기대 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악한 인간의 마음은 물로 씻을 수 없는 것임을 잘 아셨습니다. 그후 인간의 역사는 재창조를 위한 실험의 역사였습니다. 그 실험을 위해 이스라엘 민족이 선택되었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어 그것을 지 키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은 잘 지켜지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그 들을 여러 모양으로 훈련시키거나 닥달을 하였습니다만 결과는 마찬가지였 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이를 고치지 아니하고는 재창조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새 언약의 노래를 부릅니다. 에스겔은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

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 를 행하게 하리니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를 통해 얻은 은 결국 하나님께서 직접 새로운 창조를 하시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이 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 보라 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 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17)고 하였습 니다.

 결국 이 예언자들의 예언과 기대를 따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 스도께서 직접 인간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오시게 된 것입니다. 처음 창조에서 빛으로 말미암아 흑암과 혼돈이 물러가고 새로운 생명들이 창조 되었듯이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지고 혼란된 인간의 마음속에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과 빛되어 오심으로 어두움이 물러가고 새로운 생명의 창조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 빛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 녀가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누구나 이 생명의 빛 앞에 나서서 그 빛에 쬐이기만 하면 그의 모든 죄는 사라지고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빛 앞 에 나선다는 것은 자기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개라고 부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빛 앞에 나서는 것을 주저합니다. 부끄럽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병을 감추려는 환자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부끄럽더라도 드러내야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빛은 살인 광선이 아니라 사랑의 빛입니다. 우리 영혼 속에 깃들인 죄를 죽이고 우리 영혼을 살리는 사랑의 빛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 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보시오, 옛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새로운 창조를 이룩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 권한을 하 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새 창조의 역사를 이룩하시는 목적은 첫째로 인간으로 선한 일을 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에베소 2:10에 선한 일을 하 게 하시려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다고 하였습니 다. 둘째로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게 하시려고 새 창조를 하신 것입니다. 에베소 4:24에 여러분은 오히려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올 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공동번역)고 하였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드시는 까닭은 우리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는데 있습니다. 골로새 3:10에 새 사람을 입으시오. 이 새사 람은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와져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 에 이르게 됩니다(새번역)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속량 하시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시 려는 것입니다(엡 1:6,12,14).

 그러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합니까 첫째 로, 이 세상에서의 모든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이 세상에 서 빈부귀천의 가치 판단이 완전히 철폐되고 새로운 가치 체계가 생긴다 는 말입니다. 골로새서에 보면 거기에는 헬라 사람이나 유대 사람이나 할 례자나 무할례자나 미개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의 구별이 없고 오직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가 모든 것 안에 계십니 다고 하였다. 이것은 이 세상의 인종의 차이나 종교간의 차이나 신분의 고하나 혹은 문명의 차이가 다 철폐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새로 운 생명의 평등성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제부터 아무도 육적인 표준으로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고후 5:16)고 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는 말하길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 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 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고전 1:27-2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리하게 하는 조문들이 적힌 이 땅의 증서를 완전히 없애버리신 것입니다. 우리를 노예로 얽어매던 노예문서를 하나님 이 완전히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신 것입니다(골 2:14). 그러므로 여러분 은 이제 종이 아니라 아들입니다. 아들이라면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상 속자입니다(갈 4:7).

우리는 완전히 자유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의 어떤 가치 척도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직 우리는 누구를 보든 지 그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적대 감정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갔다가 다시 아버지께 돌아와 그와 화해하였을 때 탕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새 아들로 영접 된 것입니다.

화해란 악화되었던 관계가 좋은 관계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 님과 우리 사람들의 관계가 정상적인 관계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떼가 되는 것입니 다.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요, 따라서 이제까지의 방황과 고난이 끝나고 평안과 안정과 기쁨을 찾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신다는 것(요일 5:14)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문제를 안고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해결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 하실 것이며, 쉴만한 물가로 안내하실 것입니다. 그는 우리 영혼을 풍성케 하실 것이며, 우리 앞에 놓인 모든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여 주실 것 입니다.

 ( )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얽어매던 이 세상의 모든 속박에서 우리는 자유함을 입었습니다. 우리 생 명의 본질인 자유를 우리는 다시 되찾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노예 근성을 버리고 자유인답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모든 우주 만물을 통일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그와 함께 왕노릇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재창조의 역사에 동역자로 부름받은 것입니다. 이 땅에서 이제 창조의 역사를 막으려는 모든 불의한 세력들과 대항하여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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