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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2 (갈 06: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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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과 13절에서 할례주의자의 맹랑한 모습을 요약한 후에 바울은 14절에 서 대조적으로 자신의 태도와 신념을 밝힌다. 바울이 자랑을 하자면 얼마 든지 할 것이 있는 사람이다.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 많은 자랑을 늘어 놓았다.) 그러나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십 자가는 죽음을 가리킨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바울에게 있어 서는 세상 (코스모스)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여기서 세상은 악을 대표한다고 본다. 사르크스가 죄 있는 인간을 가리키듯이 세상은 악한 세상을 가리키며,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바울을 사로잡고 있던 악마의 세력, 죄의 세력은 권세를 잃었다. 자기의 힘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죄의 세력을 거세(去勢)한 것이다. 그것은 또한 바울이 죄에 대해서 죽은 것이 된다. 이제 자기는 죄의 세상과는 담을 쌓은 상태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러한 새 삶을 가져다준 십자가만이 자기의 자랑거리라는 것이다.

 ( 15절 ) 바울에게 있어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다 본질적인 것이 못된다. 할례는 결국 몸에 하나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고, 그것이 사람을 고치거나 변화시키 는 것이 아니다. 할례를 안 받았다고 해서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카이네 크티시스) 즉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일이다. 할례나 율법이 사람을 개조해 주는 것이 아니다. 성령을 통하여 복음을 믿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무죄 선언 을 해 주시고, 전에는 원수였던 자를 자식으로 삼으시고 새로운 자격을 가진 인간으로 개조해 주시는 일이 가장 본질적인 일이다.

 ( 16절 )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 (호소이 토 카노니 투토 스토이케수신). 여기의 규례 (카논)는 원칙 또는 법칙을 가리키는 것이며, 행 한다 (스토이케수신)는 산다, 걷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 원리대로 살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전체에 걸쳐 설명하고 논증한 복음의 진리를 여기서 이 원리라고 했을 것이다. 보다 가깝게는 바로 위에서 말한 것, 즉 율법이나 할례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고 은혜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원리를 가리킨다. 그런 원리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바로 참으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이고 그들에게는 평강이 있고 자비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바울의 복음을 변질시켜 할례나 율법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나테마(저주)를 퍼 부었는데(1:8-9), 그 반대로 참 복음의 원리를 따라 살 사람에게는 평강과 자비의 축복이 내려질 것이라는 대조적인 말로서 마감을 한다.

 IV. 사 역 7 그릇된 생각을 마십시오. 하나님은 농락을 당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니 말입니다.

8 자신의 육체에다 심는 사람은 그 육체에서 썩은 것을 거둘 것이며 성령 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9 좋은 일을 하면서 낙심하지 맙시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제 때에 수확을 하게 될 것이니까요.

10 그러므로 기회 있을 때에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합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 그렇게 합시다.

11 보십시오. 내가 내 손으로 이렇게 큰 글씨로 여러분에게 편지를 씁니다.¡ 12 육적으로 체면을 세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할례를 강요하 는데 그것은 단지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오는 핍박을 받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13 할례를 받는 사람들 자신도 율법을 지키지 안으면서 여러분에게 할례를 주기만 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할례 받은)육체를 자랑하려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아무 것도 자랑하지 않으렵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나에게는 세상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15 할례든 무할례든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새로운 창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16 이 원칙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즉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은혜와 자비가 있을 것입니다.

 V. 메 시 지

1. 하나님의 은혜로 칭의를 얻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우선은 명목상의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구원의 완성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 다. 하나님 편에서 먼저 계획하셨고, 먼저 활동하셨고, 엄청난 능력으로 (엡 1:19)우리로 당신의 아들을 믿게 하셔서 자녀로 삼으셨지만,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은 불신자들과 자격의 차이가 있을 뿐, 삶의 윤리적 내용 에 있어서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할 수 있다. 다만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자각 밑에, 즉 성도(구별된 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참으로 윤리적으로도 성도(구별된 자)가 되려고 계속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여기서 저기로 옮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자격을 바꾸어 당신의 자녀, 당신의 나라의 시민이 되게 해 주셨다는 사실과 아울러,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원 칙에 복종하고 거기에 적응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일이다. 우리의 윤 리성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마땅 히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행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 라의 원리를 신자의 생활 원리로 삼아서 살아야 한다. 7절 이하 10절 까 지에 나오는 몇 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철저한 인과응보(因果應報)가 하나님의 공정한 원리이다. 은총이 라는 보다 고등한 원칙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 원칙은 심은 대로 거둔다 는 것이다.

(2) 신자도 아직은 세상에서 육체를 쓰고 살기 때문에 육적인 유혹 속 에서 산다. 그러나 신자는 성령을 모시고 성령 안에서 만사를 행하여 성령 의 열매를 맺어야 하고 결국은 영생이라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존재이다.

(3) 신자는 허공 속으로 구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 한 일을 맡기시기 위해서 그 일들을 향하여 구원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신 자는 선을 행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살아야 한다.

(ㄱ) 선행은 수고가 따르게 마련이다. 선한 일에는 땀을 흘리고 고통을 당하는 일이 수반된다. 그래서 낙심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 니까 낙심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ㄴ) 선행의 결실은 반드시 가시적(可視的)인 것만은 아니다. 시 간이 걸리고 때가 차야만 그 결과가 나타난다. 과정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제 때에 결실을 맺게 해 주신다. 그러니까 참고 그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슬기가 있어야 한다.

(ㄷ)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한 번 밖에 없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효도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기회를 놓치 면 효도라는 선을 행할 수 없다. 신자에게는 이생이, 그리고 지금이 바로 성행의 기회이다.

(ㄹ) 믿는 형제자매들, 즉 하늘 나라 시민들에게 선을 행하여 참 된 삶의 아름답고 전형적인 모습을 나타내자. 그리고는 세상의 불신 사회 에까지 선행을 확대해 나가자. 그것이 정책상으로나 양심상 옳은 일이다.

 2.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허물과 죄로 더러워지고 낡고 죽었던 인간들이 하 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다시금 창조되어 새 인간 (카이네 크티시스)이 되는 일이다. 그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달성하기 위한 올바르고 합리적인 길을 찾아야 한다. 엉뚱한 것에서 해결책을 찾으러 하는 사람들 이 있다. 연목구어(緣木求魚)격으로 잘못된 판단과 방법을 가지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의 재 창조는 첫 번 창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다시 나고 새 인간이 되는 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계획이나 꾀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자비에 의해서만 이루어 지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복음적 제안 offer 을 믿고 받아들이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주변적이고 불요불급(不 要不急)의 것들을 가지고 진리를 흐리게 하고 있다.

 우리들도 기독교의 핵심적 진리를 확실히 붙들고 놓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흐려지거나 곡해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십자가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칭의를 얻어 새 인간으로 창조된다는 표준적인 도리 (카논)를 굳게 붙들고 살아간다면 평강과 자비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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