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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 03:1-13)

첨부 1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셔서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가정을 이루도록 해서 낙원에 살도록 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는 거룩한 계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담 가정은 이 계명을 지킴으로서 낙원을 영원토록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보면 아담과 이브는 사단의 꼬임에 빠져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맙니다. 그 결과로 낙원에서 추방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기록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사람을 유혹하여 죄에 빠지게 하는 사단의 정체가 무엇이며 죄지은 인간을 찾으시며 뜨겁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배울 수 있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잘 응답하여 다시금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를 받게 되는 서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유혹하는 사단과 범죄 하는 아담 가정(1-6)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였습니다. ‘간교하다’는 말은 사악(邪惡)하거나 음흉하다는 말이 아니고 지혜롭고 영특하다는 말입니다. 뱀이 사단의 도구로 쓰임 받기 전에는 짐승들 중에 가장 지혜롭고 영리하여 사람과 가까이 지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뱀의 천부적인 지혜를 칭찬하신 적이 있습니다.(마10:16)
그러나 뱀이 사단의 도구로 사용되므로 그 부여된 은총과 혜택이 사단의 노리갯감이 되고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는 온갖 좋은 것으로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이렇게 주신 은혜와 축복을 복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러므로 로마서 6:13절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했습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사단은 바로 뱀의 이 간교한 점을 이용하여 사람을 유혹하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어느 날 이 뱀이 하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은 하나의 금지 사항을 과장해서 동산의 모든 나무의 실과를 하나님이 먹지 못하도록 금한 것처럼 질문을 합니다. 사단은 “참으로” “모든 나무”란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진실성에 대한 회의와 하나님을 가혹한 분으로 취급합니다.
공동 번역에는 “하나님이 너희더러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하나도 따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정말이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든 것을 금하신 가혹한 분으로 취급하는데 2:16,17절을 보십시오. “네가 임으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아흔 아홉 나무를 임으로 먹되 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한 나무를 금하셨습니다. 그 한 나무도 우리의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준 Adam's Bible입니다. 이 계명을 지키면 낙원(paradise)을 영원히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감사 없는 아담에게 이 2:16,17절의 진리의 말씀을 과장하고 거짓으로 바꾸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을 심고자 했습니다. 사단이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의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더냐” 라고 공격을 해 왔을 때, 하와는 어떻게 대답을 했습니까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2,3) 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 하와의 대답을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의 말씀(2:16,17)과 유심히 비교해 보십시요.
하나님께서는-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를 임으로 먹으라 마음대로 먹으라고 무한한 자유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자는-‘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는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감사가 없어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도 감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타락의 첫단계입니다.(롬1:21)
또한 하나님께서-‘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분명히 지적을 하셨는데,
여자는-선악을 빼고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였습니다. 그 보다도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먹지 말라’ 했는데,
여자는-‘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더라고 자기 생각을 덧붙이고 부풀려서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과장해서 불평 조로 말했습니다.
선악과를 두시고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은 생각하지 않고 율법적으로 생각하고 부담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여자는 점차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의 말씀을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해석하고 뜯어고치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죽을까 하노라”고 대답을 함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홀히 여기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의 말씀에 경외심이 없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사단은-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으로 바꾸어 유혹했습니다.(마4:1-11) 또,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하여 유혹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경외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이 있을 때,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노아 시대 때나 소돔과 고모라 시대 때의 사람들도 하나님이 말씀에 경외심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고 농담으로 여기다가 다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인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그 말씀을 순종하여 모든 유혹을 이기고 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성을 잃고 흔들리며 “죽을까 하노라” 라고 말을 하자 사단은 재빨리 기회를 포착하고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사단은 흔들리는 여인의 마음 속에 거짓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고 유혹합니다.
사단은 이제 적극적으로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합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진다, 하나님과 같이된다, 선악을 알게 된다 하며 부추기면서 여자의 호기심과 교만을 충동질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못 따먹도록 한 것은 너희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되는 것을 시기하기 때문이야”라고 여자를 유혹했습니다.
공동 번역에는 “그 나무 열매만 따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나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하자 여자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절대성이 없어지고 피해 의식에 젖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6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그 나무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나무 실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결국 이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고 명령한 나무 실과를 따먹고 범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낙원을 잃게 되고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생들에게 죽음이 왔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뱀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유혹자(tempter)입니다. 계시록 12:9절에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뱀의 정체는 유혹자 사단입니다. “사단”이란 말은 “대적자” 라는 뜻입니다. 또 마귀라는 말은 “훼방하는 자”, “중상하는 자”, “참소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온 천하 만민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고 중상하는 원수입니다.
그러면 이 사단은 어떤 존재입니까
유다서 6절을 보면, “자기의 위치를 지키지 아니하고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라고 했습니다.
또, 베드로후서 2:4절 “범죄한 처사”라고 했습니다. 곧 사단은 타락한 천사의 무리입니다. 원래 천사들도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골1:16)
특히 사단은 빛의 천사들로서 하나님의 보좌를 섬기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사14:12-17, 겔28:11-15) 그러나 교만하여져서 하나님과 비기려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사단(대적자)라는 말이 유래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천사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영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들의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천사장 미카엘도 감히 사단을 꾸짖을 수 없을 만큼 사단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유다서 9)

그러므로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나아갈 때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사단을 대적해야 합니다.(엡6:1-8) 사단은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가장 무서워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또 무엇보다도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마귀는 무기력하고 발붙이지 못하고 떠나갑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되어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또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사단의 공격 목표는 아담입니다. 사단은 아담을 공격 목표로 삼고, 먼저 여자를 유혹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가장 신뢰하는 하와를 통해서 아담을 쓰러뜨린 것입니다. 이처럼 사단은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역사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으로 아무리 가깝거나 친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면 단호히 거절하고 사단의 역사인 줄 알고 책망하고 진리 위에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범죄한 아담의 결과(7-8)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은 눈이 밝아지기는커녕 영의 눈은 어두워지고
① 육신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데는 눈이 밝아, 찬송가는 1절도 안보고 못 불러도 대중가요는 1절에서 4절까지 보지 않고도 잘합니다. 찬송 모임보다는 노래방은 더 자주 잘 갑니다. 찬송가 몇 장은 아라비아 숫자를 기억할 수 없어도 고스톱 하는데 계산은 굉장합니다. 물욕에 눈이 밝아 5천 억 원을 불과 몇 년만에 모을 수 있는 정욕에는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② 둘째 범죄한 결과는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그 아내는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버렸습니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숨었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존재 의미가 상실된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기뻐하는 대상입니다. 또,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자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명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어 버렸으니 존재 목적이 상실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존재 의미를 상실해 버렸기 때문에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잃게 되었습니다.
③셋째, 범죄한 결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10절을 보면 아담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아담이 벗은 모습에 대하여서 그 누구도 왈가왈부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숨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한데서 오는 죄의식에서 나는 것입니다. 또한 죽게 되었으므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사단이 여자를 꼬일 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같이되기는 커녕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하나님을 대할 수 없어서 나무 사이에 숨고 부끄러워서 나뭇잎으로 치마를 해 입으며 수치를 가리고자 했습니다. 빛이신 하나님께 나오지 못하고 숨고 은둔하고자 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범죄할 경우 하나님과 같이되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짐승과 같이되고 허무주의와 죽음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언제나 죄의식에 시달리게 됩니다. 사단은 선악과를 따먹기 전까지는 따먹어라 따먹어라 하지만 일단 따먹고 나면 ‘너는 죽는다, 너는 선악과 따먹었으니 너는 죽는다’ 고 하며 참소 합니다. 이것이 사단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어디까지나 속이는 자요, 괴로움을 더하여 주는 더러운 인격을 가진 영적 존재입니다.

Ⅲ.아담을 찾으시는 사랑의 하나님(9-13)

이렇게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금단의 실과를 따먹은 아담은
① 육신이 눈이 밝아져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해 입고
② 의미 없이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③ 또 두려움에 사로잡혀 방황을 하며 하나님께 나오기를 두려워하며 나무 숲에 숨었습니다. 이런 아담을 하나님은 찾으셨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찾으셨습니다. 아담아 어디 있느냐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은 아담이 어디 숨어 있는지 몰라서 찾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숨어 있는 장소를 몰라서 하나님이 부르시고 찾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기 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왜 숨었는가를 깨닫고 죄를 고백할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음성입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음성은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은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과 같습니다.(눅15:20)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했다고 그냥 내버려두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 이전이나 타락 이후나 한결같이 사랑하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타락 이전에 온갖 것을 다 갖추어 주시며 에덴 동산에 살도록 하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 후에도 여전히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시며 찾으시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범죄하고서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떠났다고 생각하고 못 돌아오는데 하나님이 변했거나, 하나님이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났으므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옵시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대로 사랑으로 계십니다.
얼마 전에 지훈이가 밤 한 두 시까지 공부하고 돌아오기 때문에 도시락을 제 어미가 두 세 개 씩 싸 주는데 도시락 반찬으로 해 줄 것이 없어서 김치만 넣어 준 적이 있었나 봅니다. 밤늦게 돌아와서는 하나도 먹지 않은 도시락을 그냥 내어놓으며 불평을 했습니다. 친구들이 반찬 그렇게 싸 오면 같이 먹지 않겠다고 했나 봅니다. 영 자존심이 상해서 어쩔 줄 몰라 하기에 제가 타이르고 뭘 없을 때는 그렇게 싸 갈 수도 있지 하며 꾸중을 하니까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밤 12시, 1시가 되도 집에 들어오지를 않으니까 이 아빠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소파에 그대로 앉아서 돌아오기까지 문을 열어 놓고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다가 돌아오니 얼마나 그 아들이 반갑더군요.
이것이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기쁨이요, 하나님의 기쁨이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는 범죄하고서 하나님이 변했다고 생각하고 못 돌아가는데 변한 것은 인간이지 하나님은 변했거나, 하나님이 떠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팔 벌리고 기다리시는 하나님께로 내 모습 이대로 돌아갑시다. 오늘도 여전히 찾아 부르시는 하나님께로 죄의 길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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