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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생을 얻는 삶 (말 03:1, 요 0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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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예수께서 출애굽 당시의 불뱀과 놋뱀사건과 당신의 십자가 희생사건을 연결시켜 구원의 위대한 진리를 가르치신 장면이다. 십자 가에 달린 예수를 자신의 구원주로 믿고 쳐다보는 자, 그분만을 앙망 하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사실적 배경을 말하자면 예수께서 메시야의 권세로 당 시 종교지도자들의 활동중심지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처인 예루살 렘 성전을 정결케 하셨다는 소문은 팔레스틴을 휩쓸며 일대 센세이션 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급기야 예수께서는 이 소문을 들은 당시 유대 의 최고 종교지도자요 율범학자이며 산헤드린 공회원 가운데 한 사람 인 니고데모의 방문을 받기에 이르렀다.

 실로 당시 성경에 박식하며 메시야의 강림을 손꼽아 기다리던 신실 한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위해 밤중에 주님을 찾았다. 때는 한밤중인지라 팔레스틴의 날씨가 그러하듯 신선한 미풍이 예수님과 니고데모를 감싸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교훈하시면서 때마침 불 어오는 바람에 빗대어 정녕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합당한 자는 중생 케 하시는 성령의 신비로운 은혜를 체험한 자임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밤이 깊어가면서 점점 구원의 진리는 고조되어 갔다. 그리하여 주님은 본격적으로 니고데모를 향해 기독교 진리 가운데 서로 가장 핵심적인 구원의 복음을 교훈하시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실로 이 한 구 절은 성경 전체를 흐르는 구원의 진리를 한마디로 압축한 '작은 복음' 이라고 루터는 말했다. 기독교 진리를 이 한마디로 요약한 이 '작은 복음'을 통해 구원의 길로 나아오도록 권유하신 주님은 적으로 니 고데모를 향해 정녕이 구원의 복음을 들은자의 행실을 교훈하심으로써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마쳤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구원 방법을 제시하고 있 다. 불교는 명상을 통해 자아(自我)를 발견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구원의 방법을 가르친다. 유교에서는 윤리도덕을 통한 인격 수양을 최 고의 선으로 여긴다. 또한 인도의 종교들은 고행이나 수도가 진리를 발견하는 최고의 방법이라 가르친다. 그러나 본문은 분명히 구원의 방 법을 제시한다. 예수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 심이라고 한다. '저를 믿는자마다' 혹은 '저로 말미암아'라는 공통된 표현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곧 진정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서만 얻을 수 있으며 세상의 다른 어떤 방법으로는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한가 그 리고 어찌하여 다른 종교들이 제시하는 구원의 방법은 잘못되었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 무이한 구세주이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하시사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신 구세주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예수 그리스 도만이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더욱이 예수는 그 근본 본체가 하나님이시며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 이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주님은 나의 깊고 오묘하신 구원의 섭리와 경륜을 온전히 통찰하고 계신다. 따라서 이런 분만이 하나님의 구속계 획을 이루시고 또한 완성하실 수가 있다. 이방 종교는 인간의 노력과 행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자.

죄 가운데 잉태되어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 어찌 스스로의 노 력으로 구원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이런 형편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직접 당 신께 나아오게 하지 않고 구원자가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 셨다. 실로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구원의 길로 나선 것이 아니라 하나 님께서 멸망 가운데서 스스로 구원의 능력을 갖지 못한 우리 불쌍한 죄인을 친히 찾아오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로부터 구원의 복음을 들은 빌립보성의 간수는 갈급한 심령으로 바울과 실라를 향해 '선생들아 내가 어찌해야 구원을 얻으리까'라고 질문했다. 이때 바울은 이 간수를 향해 '주 예수를 믿 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라고 했다. 우 리는 주를 믿는 믿음으로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는 곧 주님이 우 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인정하고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이 사실을 자 신의 믿음으로 진실되게 고백하는 행위를 가르킨다. 진실로 주님을 믿 는 믿음이야말로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오직 믿음(Sola fidei)으로만 말이다. 이러한 믿음의 신앙안에서 고백할 때 우리는 세 가지 위대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인간이 받아온 사랑중에 가장 위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많은 사랑을 받아오면서 오늘의 우리가 되었 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서 잉태된 우리가 태어나면 부모의 사랑, 형제 의 사랑 속에서 자라고 장성하면서 친구와의 사랑을 나누고 결혼하면 아내의 사랑, 남편의 사랑 속에서 살며 자녀를 낳으면 자녀로부터 크 고 작은 사랑을 받으며 우리는 산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을 받는다 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곧 존재한다는 의미 이다. 우리가 살아 갈 수 있는 것은 지금 사랑을 받고 있고 또 앞으로 도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우리가 받아 온 크고 작은 많은 사랑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어떤 신학자는 기독교의 핵심이 3단계로 요약된다고 한다.

 1. 하나님 은 계신다.

 2.하나님은 사랑이시다.

 3.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

라는 세문장으로 요약된다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음을 통해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사랑 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우리는 하나님께 꼭 필요한 존재라는 말과 같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살아 갈때에 우리의 삶은 변화된다. 이것이 성 서는 거듭나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다.

 두번째는 인간이 이제까지 받았던 것 중에 가장 위대한 선물은 예수 라는 선물이다. 사랑의 속성은 주는데 있다. 마음 속에 사랑이 가득차 있으면 주고 싶어 견디지 못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우리 인간을 위하여 무엇을 아끼겠는가 사랑이신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자신의 전부를 내어 주었다. 그 사랑의 표현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 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밖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온전히 입을 수 없으며 살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은이 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흠과 점이 없는 어린 양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 랑을 유일하게 깨달을 수 있는 장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이 다. 십자가 밖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알 수 없다.

 세번째는 인간이 이제까지 선택한 것 중에 가장 위대한 선택이다.

오늘의 내가 나 된것은 과거의 선택의 결과이다. 과거에 무엇을 선택 했느냐에 따라서 우리들의 오늘이 결정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명 기에 내가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노니 너희가 복을 선택하면 복된 인생이 될 것이고, 저주를 선택하면 저주스런 인생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해 주고 있다. 순간의 선택 앞 에 잘못 선택하여 일평생 울고 지내는 사람이 있고 지혜롭게 잘 선택 하여 일평생 복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선택가운데 가장 위 대한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이보다 더 위대한 선택은 없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선물로 주셨으니 누구든 지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 곧 영생이 주어져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그리스 도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함을 말한다. 하 나님의 공의에 참여함을 뜻한다. 예수를 믿으므로 죄를 미워하고 지난 날의 잘못을 탄식하게 된다 그리고 구별된 삶을 살기 시작한다. 의를 위해 살아가게 된다. 이유는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평화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평강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아와의 깨어진 관계가 조화를 회복하게 된다.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다.

 세째는 영생은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사 랑이시다. 예수를 믿는자는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미움과 질투와 시기를 떠나고 사랑의 용기를 갖게 된다. 그것은 영생 을 얻었기 때문이다.

 넷째는 하나님의 능력에 참여하는 삶이 영원한 삶이다. 하나님은 전 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영생을 얻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떤 도전이나 시련도 이길 수 있는 힘이 그 속에 있다. 그것은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은 자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왜 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죽음을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생 을 얻은자는 죽어도 산다. 이것이 영생을 얻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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