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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키는 삶 (마 05: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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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진 이 세상, 그리고 그때 그때 제빠르게 처신하며 바꾸어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한결같고 언제나 변함없는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 어디까지 타당한 것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각도 바뀌고 당연하게 행동도 바뀌어가는데, 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인데 무엇을 변함없이 지켜내고 유지하겠다는 것이냐”고 물어올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즉흥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임으로 우리에게 있을 수 있는 다른 가능성들을 우리가 버리거나 제거해 버렸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여기에는 하나의 함정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것을 내어주거나 자신에게 중요한 무엇을 잃는 댓가라는 사실입니다. 사실은 이것을 꼼꼼히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을 팔아 무작정 즉흥적으로 변화라는 물건을 충동구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자신에 대해 치밀하지 못하고 무책임하고 엉성한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은 하나도 남지 아니하고 산만한 느낌에 이리 저리 끌려다닌 굴욕적 흔적만 남아 끝없이 자신을 부끄럽게 할 뿐이란 생각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마음 구석에 여전히 “끝까지 자신을 지켜내는 어떠한 고집스러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합니다. 이것은 나 자신이 맹목에 끌려다니지 아니하고 창조적인 주체가 되어 움직이는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와 공동체에 대해 느슨한 마음으로 적당하게 시간과 사건의 흐름을 타면서 관람하는 자세로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왔는지를 물어볼 일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옹골지게 스스로를 지켜내는 한결같은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 얼마나 어색한 일인지 생각해 봅니다. 얇팍한 처세술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가 사람을 사람답게하는 세상에 대하여, 그러한 삶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라면 “적당히”라는 모호한 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끝까지는 아니지만 적당하게 편리한 방법으로, 적당하게 치밀한 태도로 접근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물러서는 “적당하게 현명한 처세술”로부터 우리는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행태가 결국에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을 우리가 살아가게하는 것은 찬란한 “명예”도 아니며,그렇다고 굴욕적인 “멍에”도 아닙니다. 또다른 “영웅담”을 만들어 내기위한 수고도 역시 아닙니다. 오늘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서에로 돌아갑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 없어 밖에 내버려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 본문에서 우리는 한가지 분명한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선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빛이며 소금이라는 선언입니다. 이것은 오직 지켜내야 할 것이며 고집스러움으로 표현해야할 삶의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즉흥적인 변화의 처세술”이 파고들 여지가 없습니다. 만약에 이러한 처세술을 적용하려 든다면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는”격이거나, “아무데도 쓸 데 없어 밖에 내버려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입니다. 오직 우리에게 고집스럽게 오늘을 살게하는 것은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우리의 행동을 보고 아버지 야훼를 깨닫게 하는”일이라고 말해 줍니다.
우리는 쉽사리 고민의 경로를 거치지 않고 “그렇다면 이렇게 해버리지 뭐”, “그렇다면 그럴 수 밖에 없겠네”라고 말해 버립니다. 여기에는 자신에게 손해나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판단하는것을 배경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지켜내야할 것에 대한 치열함이나 고집스러움이라고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운명인듯 여기며, “사건의 흐름을 타고” 때로는 구경하며 때로는 냉소적인 태도로 돌변하는 “적당히 현명한 방법”만 남습니다. 무엇을 해보겠다거나 넘어서겠다는 의지는 애초 상관이 없는 듯하고 물같은 맹목만이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태도는 자신과 공동체에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거나 “무의미한 파편”들만 남겨줄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금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하신 의미를 새겨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쉽사리 중심을 잃어버리거나 적당선에서 행동하는 모호함으로 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오늘 우리의 일이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지경인듯 하고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될대로 되라”라는 천박한 무책임이 우리에게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막연하게 말하면서 자신이 일의 중심에서 도망해 버리는 일이 우리에게 어색한 일이라면, 막다른 곳에서도 일의 구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흐트러짐 없이 다시 시작하는 태도가 정말 필요합니다. 이것이 다름아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삶”입니다. 결정적인 때에,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이 믿음을 주는 “고집스러운 자리지킴”이 서로에게 얼마나 커다란 용기가 되는지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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