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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도2 (행 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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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장에서는 가르침이라는 요구가 우리가 갖고 있는 내용의 절대성, 우리만이 갖고 있는 내용이라는 문제에서 우리가 가진 권위, 우리가 가진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이 말씀을 살폈다.
오늘은 ‘왜 주님께서는 가르치라는 요구를 내걸었는가’ 하는 면들을 살펴보자. 가르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교육은 크게 나눠서 두 가지를 시키는 것이다. 하나는 용량을 극대화하는 것이고 하나는 판단력을 주는 것이다.
교육의 중요한 목표는 그가 가진 것을 확대하고 또 언제 어떻게 이것을 쓸 것인가를 그에게 맡기도록 판단력까지도 그에게 주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가르치라는 말 속에는 피교육자가 교육자와 대등하고 독립된 가치를 인정받는 존재라는 뜻을 것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너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이 말씀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내용을 많이 오해하고 있다. 하나님을 위하여 내가 소모된다고 생각하는 신자가 의외로 많다.
가르치라는 말 속에 하나님의 가장 궁극적인 관심사는 우리의 행복이요, 완성이요, 우리의 영광이라는 것이 감추어져 있다. 주를 위해서 무엇을 할꼬라는 표현은 사실 훨씬 깊은 내용이다. 우리 부모들에게 가장 큰 욕심이 있다면 자신을 위한 것보다 자식을 위한 욕심이 있지 않은가 자식이 잘되도록 온갖 정성을 다 기우리고 때로는 매도 드는데 그 이유가 나중에 자식의 덕을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식이 잘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만으로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흘러나온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와 같다. 신자가 잘해서 하나님께 덕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자녀가 잘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는 기쁨이다.
성경이 그의 자녀, 신자들에게 도대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어떤 내용을 그 핵심으로 삼고 있는가를 이 차원에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
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
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
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
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
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3-48)”
하나님의 요구는 이것이다. 그의 온전함 같이 우리도 온전해 지는 것, 그의 자녀라는 이름에 걸맞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최고 목표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의 유지하시고 확장하시는 일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가장 애타 하시고 가장 큰 관심을 갖고 계시고 가장 큰 능력으로 간섭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와지는 것이다.
우리가 이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 말씀하시고 45절에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 아들이 되리니”라고 말씀하신다.
원래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무엇으로 되는가 믿음 이외에 어떤 방법도 없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하고 말씀한다. 이것은 구원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의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아무런 것도 없다. 그러나 바로그것이 성경의 시작이요,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십자가로 불러내신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일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그런 표현들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바로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인생을 살게 하신다. 그것 자체가 무엇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빚어내신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
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
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3-17)”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거룩함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라 하는 기능적인 차원이나 수단, 일의 차원에서 요구하지 않고 신분이나, 수준, 본질에 관한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신다고 했다.
여기서 행위란 무슨 일을 했다는 업적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그의 수준을 나타내는 외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럴듯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안되고 일을 해라,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봐서 나타난 것이 ‘그’라는 것이다.
신자면 신자 같은 모습이 어디선가 실력으로 나타나는 수준이어야 한다. 남들 눈치보면서 따라하는 정도면 안된다. 꼭 건드렸을 때 그의 실력이 나오는 거기까지가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을 행위대로 판단하신다는 것이다.
구구단 외우듯 우리는 먼저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내용들을 외우고 그 다음에는 실천해야 한다.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왼 뺨도 돌려 대라고 하셨다. 연습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부딪히는 문제는 오른 뺨 맞은 얘기가 아닌가 그러나 억지로 오리를 가지고 하면 십리를 가야 한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
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사람을 감찰
하시는 자여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로 과
녁을 삼으셔서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하셨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
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 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찾으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
이다(욥 7:17-21)”
이 말씀은 고난을 참다 못한 욥이 불평하는 말씀이다. 욥의 말이 옳다. 나 같은 것 하나가 잘한다 한들 하나님께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나 하나 못한다 한들 하나님에게 무슨 해가 되겠는가 일일이 참견하는 일이 귀찮다는 것이다.
신앙이란 결국 우리가 가고 싶은 길로 가는 것만은 아니다. 매 맞지 않고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단지 매맞는 것이 두려워 무조건 잘못했다고 비는 태도도 옳지 못하다. 그러면 전혀 잘못이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매 맞지 않고, 한 자 한 자 따져 들어가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머리에 들어오는 것은 없다. 그래서 어렵다.
지금 우리는 신앙의 본적, 주소, 전화번호, 이름을 갖고 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부르며 기도할 수 있으며 십자가의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그것은 우리의 본적이고, 주소며, 주민등록이다. 그것은 채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서 그 완성을 향하여 지금 가르치고 있고 인도하고 있고 간섭하며 그것을 훈련시키기 위한 인생과 삶의 현장 속에 우리는 놓여 있는 것이다.
이름을 쓰는 것으로 우리는 채점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구체적으로 우리는 이런 시험과목을 거쳐야 한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
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
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
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
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
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
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
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
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
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4:31-5:9)”
이것이 신자의 구구단이므로 외워야 한다. 이것으로부터 많은 응용이 나온다.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십시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며 감사하며 용서하며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
처음부터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작해서 열심히 하자. 맞는 문제만 하지 말고 틀린 문제일수록 더 해야 한다. 성경에 있는 대로 하자. 빛의 자녀처럼 행하기로 결심하자. 이것이 구구단이다. 외워서 신령한 인격을 넓히라. 깊어지고 높아져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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