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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됨의 대가 (창 18:1-15, 롬 05:1-8, 마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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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세 사람이 약속이 성취될 시기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방문했습니다.
이 세 사람은 하나님과 두 천사였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왜 이러한 방식으로 아브라함에게 나아갔는가 하나님은 왜 신탁이나 환상 또는 목소리 등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으셨는가 아마도 하나님은 이러한 방문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소돔 사람들을 시험하려고 하셨던 듯합니다.

그러나 보다 있을 법한 것은 아브라함을 방문한 자들이 친밀한 교제를 나누려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교제와 화목제, 그리고 조약 등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여습니다.
(2-8절)까지에 아브라함이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는 광경이 자세히 묘사되고 있습니다. 식사 후에 한 천사가 일년이 지나면 사라에게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이 천사는 분명히 야훼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사라는 이 예고를 우습게 여기고 마음 속으로 웃었습니다.

이처럼 믿기 어려운 어떤 일이 선포될 때 인간 편의 반응은 항상 똑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라와 마찬가지로 방심한 채로 웃어 넘기며 그리고 나서는 두려움 속에서 자기가 웃었다는 것을 부정합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자에게서 아이가 탠생한다는 것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것은 전혀 웃을 일이 아닙니다. 그는 그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1-8
(롬5:1-8)“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짐을 서술한 후에 바울은 하나님의 특성을 묘사하는 데, 이것은 왜 사랑이 부어지면 믿는 자들이 소망을 확신하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갈4:4)“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나타내심은
첫째로, 기약대로 나타났습니다.
둘째로, 그것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되었습니다.
셋째로, 그것은 경건치 않은 자들을 위하여 되었습니다.
분명히 그리스도의 죽음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은 대속적인 죽음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사랑과 헌신의 최상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본질과 정도, 양 면에서 인간의 사랑과 대조를 이루는데, 그것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9:35-10:8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천국에 대해 가르치시며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의 이러한 악조건에 대한 반응으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추수하는 주인이신 성부 하나님께 일꾼들을 더 보내주실 것을 요청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이 이미 가까왔으므로 추수는 준비되었습니다.
일꾼들의 명단이 뒤이어 나온다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열두 제자는 ‘사도들’ 이라 불렀습니다. 이 열둘은 예수님께로부터 특별히 파송받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악한 것을 고치는” 예수님의 권능을 부여받았습니다.
여기에 열두 사도에 이름이 둘씩 짝지어져 있는데, 아마도 이렇께 두씩 파송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전도여행을 위한 조달품들을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음으로 그들이 영업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방지했습니다. 금지 품 목록에는 지팡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사도들이 지팡이를 휴대할 수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기록한 데 반해, 마가는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지팡이는 ‘가지고 올 수 있었다고 기록했음을 감안할 때 해결됩니다.

예수 믿고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 그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주님은 2천년 전 12제자를 택하시고 훈련시켜서 각지로 파송하였던 것처럼 오늘날도 제자를 택하시고 훈련시켜 세상에 파송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택하시고 훈련시키신 우리들은 어떻게 그 제자된 삶을 살것인가

예수님의 제자란 지위는 높은 강단 위에 군림하며 높임을 맏는 자리가 아닙니다.(마16:24,눅14:33,요13:35)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즉 제자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며,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 헌신하고 희생하며, 열매를 맺는 예수님의 종을 말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너무 호화습럽게 지어졌으며, 교회마다 비싼 옷으로 치장한 교인들로 들어차 있습니다. 교인들도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서 힘든 일은 기피하며 편안히 교회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 저마다 높은 명예를 얻기 위해 힘쓰며 높아지려고 안달입니다. 다시 한번 예수님 앞에 끊어 엎드리며 우리의 제자로서의 의미와 자세를 재고할 때가 아니겠는가.

3.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1).예수님은 모든것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눅14:33)“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셨으며, 심지어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포기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2).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마16: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예수님은 죄인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된 우리도 마땅히 십자가를 지는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아야 활 것입니다.

3).주님은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벧전4: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창 18장에서 아브라함은 손님들을 극진히 대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감당하셨던 예수는 부활하셨으며 하늘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의 삶은 하늘과 땅의 ‘모든 복’ 이 함께 할 것입니다. 그러나 상급을 바라기 보다는 부족하고 허물 많은 우리를 택하시고 제자 삼으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부족하고 보잘것 없는 저희를 택하셔서 제자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 부름받은 저희들 주의 뜻을 위하여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달게 지고 고난과 어려움을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저희도 남을 섬기고 봉사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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