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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과 사람들3 (딤후 0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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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를 흔드는 작은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사람들은 우수에 잠겨 인생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계절은 이제 가을이 깊어 겨울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3주간에 걸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만을 위해서 살고 복음만 증거 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 대하여서 말씀을 나누고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하였습니다. 드로아의 가보에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는 말씀은 로마에도 겨울이 닥쳐오고 있고 감옥에도 추위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에 감옥에 갇힌 파울이 추운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 옛날 가보에 집에 맡겨 두었던 두꺼운 외투를 다시 가져오라고 부탁을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마음에 자유를 잃으면 겨울이 더 춥습니다. 그래서 군대에 가면 추위를 더 느끼고 감옥에 있어도 추위에 더 많은 고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동안 바울과 함께 지내던 사람들 중에 데마는 바울을 배신하여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도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각처로 흩어져 떠나 있고 디모데는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며 마가도 로마에서 먼 소아시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이 닥쳐오는 시기에서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가 보고 싶었고 마가가 보고 싶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관계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바울의 1차 선교여행 때 함께 동행하였지만 부잣집에서 귀엽게 자란 어린 마가에게는 선교여행이 너무나 힘이 들어서 중도에 포기하고 밤빌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에 바울에게는 심약한 마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선교여행을 준비하면서 바나바는 자신의 조카인 마가를 데리고 가려 했고 바울은 믿음이 약하고 의지가 약한 마가와 함께 떠날 수 없다고 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심히 다투게 되였고. 그 이유로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로 떠나 버렸고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구브로로 선교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그 후에 바울은 마가가 훌륭한 전도자가 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화해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바울은 마지막으로 마가를 더 보고 싶어서 디모데에게 로마로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떠나서 제 갈 길로 갔지만 누가만이 끝까지 나와 함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마지막까지 바울을 사랑하고 바울의 옆을 지켰던 누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누가는 이방인으로 의사였습니다.
그는 신약성경 저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방인입니다. 즉 유대인이 아니라 외국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시고 사랑하는 택한 백성 선민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방이의 병을 고쳐주시지 않으려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7장에서는 끝까지 매달려 간구하는 믿음이 있는 이방여인을 칭찬하시며 유대인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처음에 복음이 전파될 때에는 이방인에게는 복음이 전해지지 않다가 행10장에서 이방인 고넬뇨에게 복음이 전파된 후에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허락하신다고 믿고 본격적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도 여러 도시에 선교여행을 다니면서 이방인들보다는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누가는 언제 어디서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떤 문헌에 의하면 누가는 시리아의 안디옥사람이라고 합니다. 당시 안디옥은 ‘동방의 여왕' 이라고 불리는 시리아의 수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헬라어를 잘 알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문헌에서는 이 누가는 빌립보 사람으로 바울의 고향인 다소에서 의술을 배웠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이방이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일이 흔치 않던 때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누가를 부르셔서 주님을 영접하게 하셨고 또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성경말씀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보면 누가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기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이 이방인이기 때문에 이방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려고 관심을 가지고 기록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는 의사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골4:14에서 보면 “사랑 받는 의원누가”라고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보면 바울은 이 의사인 누가를 사랑했고 누가는 바울과 여러 동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의사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육신의 가시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고후12:7을 보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가 너무나 커서 교만해 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나의 몸에 육체의 가시 곧 질병을 주었다”고 바울은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세번을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네 받은 은혜가 족하도다” 하시며 치료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그의 병을 치료해 주시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은 바울이 교만해 지지 않게 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종 바울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교만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 질병을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초 자연적인 은사를 받은 사람으로 병든 자를 고치고 이적을 일으켰습니다. 심지어는 바울의 옷이나 손수건을 가져다가 아픈 부위에 올려놓으면 병이 낳았습니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교만해 지려고 하면 질병으로 브레이크를 걸어서 고생을 시키므로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깨닫게 하고 감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약할 때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강하게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바울의 병은 먼저 눈에 안질이 있었다고 합니다. 안질에 걸리면 눈의 흰자가 붉게 충혈 되고 눈물이 흐르면 늘 눈곱이 끼어서 추하게 보이는 병입니다. 이 병은 바울이 다메섹으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잡으러 가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을 때 하늘에서 내려 쪼이는 강렬한 빛을 보게 되였습니다. 그 후 삼일간 눈을 뜨지 못하고 소경이 되여 살게 되였고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므로 눈을 보게 되였습니다. 그 때 눈에 너무 강렬한 빛을 보아서 그 충격으로 눈에 안질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바울이 교만해 지려고 할 때 눈에 안질이 더 심해지므로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날 때를 생각하며 다시 겸손함으로 무장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 해보게 됩니다.
또한 바울에게는 간질병이 있어서 가끔씩 뒤로 넘어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고후17:7에서 보면 자신에게 “육체의 가시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사단의 사자란 정신적인 질병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갈4:12-13을 보면 “내 육체의 약함을 너희들이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않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을 때 이 병이 재발하여 고생을 했던 것 같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바울의 병에 대하여서 다 보고 알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간질병의 발작이 일어나 뒤로 넘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바울을 업신여기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여기 업신여기지 않았다는 말은 침을 뱉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침을 뱉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그 당시 간질병 발작이 일어나서 뒤로 넘어진 사람을 보면 사람들이 침을 밭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리디아 교인들은 바울에게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침을 뱉지 않았다는 말을 통하여 바울의 병이 간질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남들의 병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잘 고칠 수 있었지만 자신의 병을 고침을 받지 못하는 육체적으로는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누구입니까 그는 바울이 사랑하는 의사 누가 였던 것입니다. 누가는 바울의 병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이 남의 병은 기도함으로 치료해주어도 자신의 병은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시지 않는 다는 것을 누가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늘 바울의 옆에 있어야 바울이 발작을 할 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늘 바울을 떠나지 않고 어디에서나 바울과 동행한 것입니다.
누가는 바울의 2차 선교여행에 중간에 바울과 합류하여 복음를 전하다가 잠시 헤어져 있다가 다시 3차 선교여행시에도 빌립보에서 다시 합류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였고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잡힐 때에도 함께 있었고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간 옥중생활을 할 때에도 함께 있었으며 바울이 로마로 잡혀갈 때에도 동행하여 그 무서운 유라굴라 광풍도 함께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2년간 감옥살이를 할 때도 누가는 바울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재판을 받고 잠시 풀려났을 때에도 함께 동행하였고 다시 잡혀서 감옥에 갇혀 있는 지금도 누가만 늙은 바울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는 신실한 사람이었고 의리의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신하여 바울을 떠나도 그는 바울 곁을 지켰습니다. 그는 의사이기 때문에 의료활동을 통하여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버리고 바울을 따라 나섰으며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했고 누추한 감옥에서 함께 생활을 하면서 바울과 똑같이 고생을 하였고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바울을 지키다가 바울의 시신을 그가 처리하였으리라 생각을 할 수 있는 의리 있고 충실된 사람임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의사는 어려운 학문을 연구하는 인텔리입니다. 아무나 의사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의사는 높은 권력을 가지지는 못하지만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좋은 직업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도 돈을 많이 벌어서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의 명단을 늘 의사가 끼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의사가 되려고 준비를 하고 있고 의사가 된 사람도 좋은 의사, 인기 있는 의사, 돈을 잘 버는 의사가 되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사가 되기가 어디 그리 쉽습니까 의사가 되려면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부를 해야 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서 배워야 하며 많은 노력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직업입니다. 그래서 의사라는 직업은 여성들이 바라는 신랑감 인기순위에서 늘 선두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의사에게 시집을 가려면 열쇠를 세개나 네개를 준비해야 한다는 등의 말이 떠돌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하지만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해서 의사가 되고 돈 많은 부잣집 딸과 결혼을 하고 장인이 병원을 차려 주어서 큰 병원의 원장이 되였다는 이야기는 델레비젼의 연속극의 이야기만 아니라 실제로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도 간증으로 보았지만 원종수 권사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고시에 1등으로 합격을 하니까 권세를 가진 사람들과 돈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위로 삼으려고 쫓아다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몰론 옛날이나 지금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가가 있던 그 당시에도 의사는 인기 있는 직업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의사로서 가정을 가지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진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바울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느 마을에서 어느 여인과 결혼을 하여 의사로서 평안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삽자가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육신의 질병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보고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자신이 배우고 익힌 의술로 병약한 바울을 도와서 함께 복음을 전해야 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는 죽을 때까지 그 결심을 한번도 번복하지 않고 충실하게 이행한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누가와 같이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술은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각사람에게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뛰어난 재능을 가졌느냐 못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남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하여서 그 재능으로 우리들이 교만하게 행동을 하거나 남에게 상처를 준다면 이는 실패자입니다. 또한 그 재능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 다면 그도 실패자입니다.
우리들은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교만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내가 남보다 조금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고 하여서 교만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이 있어서 성실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들은 실패하게 되고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누가를 사랑하셨고 바울이 누가에게 “사랑하는 의원누가”라고 칭찬을 하였겠습니까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남다른 재주를 가졌어도 겸손한 사람이었고 교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재주는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안락하게 만들 수 있는 귀한 기술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로 드리기로 약속한 것을 한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재주를 가졌다고 자신을 자랑하고 교만해 하는 오늘 우리들에게 누가는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누가는 늘 자신을 들어내지 않고 뒤에 서서 일한 하나님의 일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남이 알아주기를 원하고 남이 자신을 알아줄 때 더 열심히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으면 섭섭해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심성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누가는 남이 자신을 알아주던지 말든지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충실하게 이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는 늘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바울의 앞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바울에게서 한발 뒤에 서서 바울을 도운 사람이었습니다. 즉 자신을 바울뒤에 감추고 자신을 들어내지 않고서 일한 겸손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라는 말씀도 누가만은 끝가지 내 곁을 지지키고 나를 돕고 있다는 말씀으로 누가는 바울의 주치의로 때로는 바울의 비서로 바울이 복음을 증거 하도록 최선을 다하여 도운 바울의 동역자 였고 바울의 후원자였습니다.
현대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바울은 전문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였고 누가는 좋은 기술과 직업을 가진 평신도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느라 늘 가난했고 또한 육신도 건강하지 못하며 자유스럽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바울이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도록 뒤에서 후원한 사람이 바로 평신도인 누가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은 목사와 평신도간에는 좋은 친구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저 목화가 조금만 잘못해도 헐뜻고 쫓아내려는 것이 평신도 입니다.
우리 지방 어느교회에도 오늘 목사님게서 다른 지방으로 이임을 하게 되었는데 다른 곳으로 가신 이유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께서 전도하여 신앙을 키워주고 집사까지 된 사람이 목사를 배격하고 교회에서 돈 1700만원을 만들어 줄테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여 교회를 옮기게 된 것입니다. 목사가 잘못한 이유는 별로 없습니다. 목사가 여자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고 교회 돈을 다 써버린 것도 아닌데 그 집사는 교인들을 찾아다니며 우리 목사는 장관보다 월급이 더 많다는 등, 교회 재정은 혼자 다 써버린다는 등, 감사를 잊어버린 목사라는 둥 욕심이 많다는 중 말을 만들어서 교인들을 충동질 하여 일을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왜 목회가자 어려울 때 기도로 도와주고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이 원수가 되는 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런 때에 누가와 같은 의리있고 좋은 친구같은 성도들이 목회자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교만하지 않도록 질병을 주셨고 이제 순교자가 되에 하시기 위하여 감옥에 갇히게 하셨지만 바울을 돕기 위하여 좋은 평신도인 누가를 보내주셔서 바울의 육체도 돌보고 경제적으로도 돌보는 책임을 다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훌륭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누가와 같은 훌륭한 평신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직업을 주셔서 일할 수 있게 하시고 또한 재주를 주셔서 돈을 벌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능력을 주신 뜻은 우리의 재산만을 늘리고 아이들만 잘 키우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라고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누가가 자신의 온 재능을 다해서 전도자 바울을 도와주었던 것처럼 복음을 전하는 일에 우리의 재능을 쓰라고 주신 것임을 잊어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을 누가처럼 도와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중에 가장 가까이 도와야 할 사람은 바로 여기 있는 목회자 최목사입니다. 여러분은 목회자가 목회를 하는데 어려움이 없는가 살펴야 합니다. 목회자의 가정을 돌보아야 하고 목회자의 자녀들의 교육에 어려움이 없는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도 여유가 있다면 교회이름을 통하여 선교사나 다른 전도자들도 도와야 할 사명이 바로 여러분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누가처럼 결혼도 하지 않고 직업을 가지지 않고 전도자들만을 도울 수는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열심히 일하여서 우리들이 얻는 소득에서 절제하여 최저의 생활을 하고 감사하며 누가처럼 하나님의 사업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런 성도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실 것입니다.
현대 사람들은 늘 일등을 하기를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남에게 뒤지기를 싫어하고 남을 섬기고 수종을 드는 사람이 되기를 싫어하고 도리어 남보다 앞서가고 남보다 존경받고 남에게 대접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일등만 하고 대장만 되게 하려고 어머니들이 애를 쓰고 치마바람까지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의사 누가는 일등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늘 바울을 자신 앞에 세우고 자신은 바울 뒤에 숨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사람이었고 좋은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고 자신은 바울을 돕는 섬기는 자라고 불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일등만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1등이 한 명이면 수천명 또는 수만 명이 일등이 아닌 이등 그리고 꼴찌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남을 지배하는 일등이 되려하지 말고 도리어 남을 섬기는 이등이 되어서 나를 낮추고 뒤에 서서 섬기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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