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맛있는 삶 (요 02:1-11)

첨부 1


금요일 저녁 냉면:내가 섞은 것 맛이 없고 집사람이 섞은것 맛있다. 서울 유명 음식점:모두 맛이 있어야 소문이 나고 소문이 나서 찾아 보고 그 맛을 보면 아무리 먼곳 이라도 찾아가서 먹게 된다.
우리가 먹는 음식들은 독특한 맛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이 그 음식 고유의 맛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그 음식은 인기가 없고 먹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께서도 빛과 소금의 비유에서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아무 쓸데 없어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음식을 맛으로 판단 하게 되는 것 처럼 사람도 그 사람의 독특한 맛을 가지지 못하면 인정 받기 어렵읍니다.
그래서 옛 부터 우리 조상들은 사람들을 음식의 맛으로 사람을 표현한 적이 많읍니다.
음식이 싱거운것 처럼 싱거운 사람.
음식이 매운것 처럼 매운 사람.
소금을 친것처럼 짠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독특한 맛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문제일 것입니다.
또한 그런 맛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더욱 큰 문제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코 게슴슴하고 맛없는 인생을 살기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인생이 한번 연습으로 살아보고 다시 맛있게 살아 갈수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오직 한번의 인생이요, 후회없이 살아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더우기 우리는 하나님앞에 설때를 준비해야 하는 기독교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져야 할 분명한 맛이 있는 것입니다.
남편으로도 가져야 할 맛이 있읍니다.
또한 아내가 가져야할 맛이 있고,
자식이, 부모가 가져야 할 맛이 있읍니다.
또한 기독교인으로 가져야 할 맛도 있읍니다.
그럼 여기에서 우리가 가져야할 맛,
특히 기독교인으로서 가져야 할 맛이 무엇이냐를 알아야 할 것 입니다.
성경의 말씀에는 우리가독교인들이 필수 적으로 지녀야할 많은 맛에 대한 말씀이 있읍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소금의 비유 역시 우리 기독교인들이 지녀야 하는 맛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가나 혼인 잔치의 말씀속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지녀야 할 맛 한가지에 대하여 알아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혼인 잔치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읍니다.
혼인잔치는 본인들에게나 하객들에게나 일꾼들에게나 기쁘고 즐거운 날 입니다.
따라서 혼인잔치가 의미하는 것은 기쁨과 즐거움 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잔치에 참석 하신 것도 그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시고자 함 이었읍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백성, 즉 우리 성도들이 지니고 살아야 하는 중요한 맛 한가지를 알수 있읍니다.
그것은 바로 기쁨과 즐거움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구원잔치에 참석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죄와 허물에 죽을수 밖에 없던 우리가 매일 매일 죄책감과 실패, 좌절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덕이던 우리들이 구원의 복음으로 생명을 얻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그 구원의 복음잔치의 일꾼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혼인잔치에 일꾼입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불쌍한 죄인들이 만나고 구원 받게하는 잔치의 일꾼들인 것 입니다.
물론 전에는 우리도 이런 잔치의 일꾼들이 아니라 초청받은 서먹한 손님들이었읍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그 기쁨속에 살아가는 자녀요 일꾼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살전 5:17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읍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이 구원의 잔치의 기쁨을 나누어 주고 베풀어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세상을 살아나갈 때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남들이 가지고 있지않는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이미 맛보고 장차 얻을 영광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 기쁘게 찬송 부를 수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읍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여기에서 포도주는 혼인 잔치의 즐거움과 기쁨의 상징 입니다.
그 포도주가 떨어진 것 입니다.
즉 즐거움과 기쁨이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읍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데도, 혼인 잔치자리에 있는 데도, 기쁨이 없읍니다.
즐거움은 고사하고 짜증이 나고 불평 불만만 생겨 납니다.
어떤때는 오히려 이자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은 하였읍니다.
그렇읍니다.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져 가듯이 우리가 한번 얻은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져가고 짜증과 불평으로 바뀌어갑니다.
오히려 신앙생활이 짐이 됩니다.
적당히 살면 또다른 즐거움이 있는데 하면서 세상을 바라 봅니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 기독교인들을 괴롭히고 있읍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원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기 계신분 어느 누구도 구원의 기쁨과 신앙생활의 즐거움을 버리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단 한시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함께 산앙의 삶을 맛있게 살아보려는 마음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무엇 때문에 우리가 원하지도 않는데 즐거움이 사라지고 기쁨이 사라지며 불평 불만의 신앙생활이 되겠읍니까
그것은 세상이 너무 악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유혹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재물이 유혹 합니다.
쾌락이 유혹 합니다.
승진의 유혹과 명예와 권력이 유혹합니다.
직장을 통하여, 일을 통하여 어떻게든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욱 큰 문제는 이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것을 하실수 있고 가능케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으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곁에 있었읍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들의 문제를 위하여 구하지 않았읍니다.
포도주가 떨어져서 발을 동동 구르던 연회장이나 식구들도 예수님께 말씀드리지 않았읍니다.
해결이 멀리 있는 것이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 하고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렇읍니다.
우리에게 문제는 기쁨이 없거나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찾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이나 수단에만 의존하고 주님을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쁨을 잃어 버립니다.
즐거움이 점차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엉뚱한 세상 쾌락만 찾게 되고 죄속에 살아가게 되며 갈등과 번민속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혼인 잔치에 기쁨을 되돌려 주는 사건이 있었읍니다.
즐거움을 다시 찾아주는 사건 입니다.
그것은 마리아의 간구 였읍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지체하지 않고 구하였읍니다.
그리고 물이 변하여 맛있는 포도주로 변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리아로 인하여 혼인 잔치에 자칫하면 없어져 버렸을 기쁨이 되돌아 왔읍니다.
줄거움이 다시 찾아 온 것입니다.
마리아의 간구는 기쁨과 즐거움을 다시 찾아준 것이었읍니다.
여러분.
그렇읍니다.
우리에게 문제는 즐거움이나 기쁨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구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들으시는 우리 성도님들은 깨닫고 구해서 하나님게서 여러분에게 주신 기쁨의 삶과 즐거움의 인생을 잃어 버리지 않고 일평생 즐거움과 기쁨속에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또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읍니다.
그것은 이 기쁨과 즐거움을 다시 찾을 수 있었던 원인 입니다.
바로 그자리에 예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읍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초청받아 그자리에 계시지 않았더라면 이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셨기 때문에, 그자리에 함께 하셨기 때문에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 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초청하여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즐거움과 기쁨을 계속하여 가질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기쁨과 즐거움을 잃을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에 빠졌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잊고 다른 쾌락에 빠져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예수님을 계속해서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적의 역사를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과 함께 사셔야 합니다.
어떤일이 있더라도 예수님과 떨어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일생동안 예수님곁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함게 하실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함께 하실때
38년된 병자가 일어났읍니다.
12년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고침을 받았읍니다.
중풍병자,열병자,나병환자들이 고침을 받았읍니다.
눈먼 소경이 눈을 뜨는 기적도 일어 났읍니다.
뿐만 아니라 죽은 나사로와 나인성 과부의 아들, 백부장의 딸이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 났읍니다.
여러분,여러분이 일생동안 맛을 잃지 않고 살아 갈수 있는 제일의 비결이 바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일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세상 삶에 지쳐서 기쁨을 잃어버리고, 신앙의 재미도 잃어 버리고, 방황의 길로 들어섰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모시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지 아니하면 구할 수도, 매달릴 수도 없기 대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도님들은 일평생 주와 함께 언제나 동행하며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곁에서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다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런 맛을 가지고 살아갈 수있는 비결은 순종입니다.
만약에 잔치 집에 있었던 하인들이 예수님과 마리아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만약 하인들의 순종이 없었다면 이런 기쁨과 즐거움을 다시 찾을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돌항아리 여섯에 물을 가득히 부으라는 말에 순종하고 다시 그물을 떠다 손님들에게 주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잔치는 파장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정말 하인들은 그날 힘들었을 것입니다.
주인의 혼인 잔치를 준비하느라고 밤을 새우며 음식을 만들고 준비하다보니 힘들고, 또 잔치의 손님들의 뒤치닥거리를 하자니 힘들고, 이제 거의 끝나갈 무렵인데 또 포도주가 없어 힘드니 정말 꼼작 하기도 싫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잠잠히 순종 하였읍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낳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낳다 는 삼상 15:22의 말씀처럼 그들은 순종의 제사를 드린 것 입니다.
그결과 그처럼 잃어버린 맛을 회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읍니다.
순종은 우리가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 버릴때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되 찾아주는 축복의 방법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횡성제일교회 성도님들은 기쁨과 즐거움 속에 살아가는 신앙인의 맛을
가지고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정말 우리는 대로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짜증과 불평으로 살아갈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오늘 귀한 말씀처럼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께 우리들의 어려움의 해결을 위하여 구하고, 그 말씀에 아멘 순종하여 신앙인의 맛, 우리 주님이 주시는 참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모든 세상을 승리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