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내려가지 말라 (눅 10:30-37)

첨부 1


본문의 말씀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입니다.
본문의 중심교훈은 그 이름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강도를 만난 사람을 구출해 주었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의 선행을 밝히고, 그것을 본받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선을 행했던 사마리아 사람 보다, 강도를 만났던 그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왜 그사람이 강도를 만나 그러한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게 되었는가를 살펴 보고 이 말씀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1. 제일 먼저 그가 강도를 만나게 된 이유는 혼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본문을 좀더 자세하게 이해 하려면은 그 당시의 주변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1,110미터의 높은 지역에 자라잡고 이씨만 이사람이 내려가던 여리고는 지중해보다 낮은 400미터의 저지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해저 400미터라면 사해와 같은 위치입니다.
그 당시 갈릴리 지방에 살던 사람들은 1년에 몇번씩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예배를 드리기도 했고 상거래를 하기도 했습니다.
여리고 지역은 일명 아골 골짜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황야를 통해야 오고갈 수 있는 곳입니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을 오가는 길 좌우에는 황토빛 거친 산들이 겹겹이 병풍처럼 둘러있기 때문에 강도의 출몰이 많았고 추격해도 잡기 어려운 그런 지역이었습니다.
강도들은 적당한 곳에 자라잡고 있다가 기습하여, 돈을 빼앗거나 인명을 해치는 일을 하곤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을 통과할 때는 혼자가지 않고 항상 여러사람이 무리를 지어 그곳을 지나가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사람은 혼자였습니다.
그것이 강도의 기습을 자초한 원인이었습니다.
성경은 혼자있는 것을 좋지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있는 것이 좋지않다고 여기셔서 하와를 만들어 부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도 두세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면 들으신다 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가 할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함께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부부라도 함께 있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항상, 위기상황마다 같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수 있겠읍니까
가능성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혼자있으면 강도를 만납니다.
바로 여기에서 이것은 영적인 이야기임을 알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주님을 떠나 혼자있는 사람은 강도를 만납니다.
강도는 무법자이며, 폭력주의자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상징인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어느날 하와가 혼자있을 때 뱀이 찾아와 휴혹하기 시작했습니다.
혼자있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도의 동지와 함께 있는 사람은 시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주님과 함께있는 자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강도를 만나지도 않습니다.
설사 만난다 하더라도 합심하여 이길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있는 것을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일을 혼자하려고 하지말고 합심하는, 연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전도서 4:9-12에 두 사람이 한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있어 붙들어 일으킬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사람이 함께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사람이면 어찌 따뜻하겠느냐 한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삽겹줄을 쉽게 끊어짖지 아니하느니라
늘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네가 잘난것도 내가 못난것도 없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주고, 주남과 항상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강도를 만나지 않을 수도 이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2.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사람이 강도를 만난 때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다가 강도를 만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예루살렘은 1,100미터의 고지에 위치하고 여리고는 사해와 같은 해저 400미터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려간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고지이고, 이스라엘의 수도이며 성전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올라간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사람이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이야기 입니다.
내려간다는 것, 그것은 영적으로 신앙의 하향을 말합니다.
즉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는 것입니다.
상식쩍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성적도 올라가야지 내려가면 안됩니다.
사업도 올라가야지 내려가면 안됩니다.
수입도 내려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주가나 G N P 도 올라가야지 내려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하물며 신앙생활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천국은 하늘에 있고 지옥은 땅아래 있는 것으로 설명 됩니다.
의사들의 말을 빌리면, 만성 고혈압보다는 저혈압이 더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출발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는 장군의 아들로서 인물이 준수하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손종을 잘하고 겸손하며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위에 올라가자 이제는 내려가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분별력이 마비되기 시작했고 탐심으로 눈이 가려워 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고, 증오심과 질투심으로 이성을 잃고 결국은 비참한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다시말하면 점점 내려가다가 결국 망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사람이 사울왕과 같이 나타납니다.
그는 다윗입니다.
그는 본래 천한 목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왕의 경호원으로 출발한 그는 군대장관이 되고 결국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되어서도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항상 올바른 왕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였고 잘못을 회개할줄알며, 항상 하나님곁을 떠나지 않는 훌륭한 왕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에서 다윗왕은 가장 존경받는 인물의 하나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내려갔던 그 사람의 행동은 교회와 주님을 떠나 세상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의 그림자 입니다.
요 15장에 보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고 결국은 시들어 죽고 만다. 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포도나무는 예수님이고 가지는 우리 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냐가 문제가 아니라 떨어졌느냐 떨어지지 않았느냐가 문제 입니다.
단 1mm라도 떨어지면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루동안 떨어지면 살고 여러날 동안 떨어지면 죽는 것이 아닙니다.
떨아지는 순간부터 나는 죽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금방 잘라서 꽂아놓은 꽃이나 꽃밭에 있는 꽃이나 처음에는 모두 싱싱하기 때문에 살았는지 죽었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 꽃밭에 있는 꽃들은 언제나 싱싱하지만 잘린가지는 시들기 시작하고 결국 죽고 맙니다.
예수를 떠나 내려가는 생활이 바로 그렇습니다.
요나서 1:3을 보면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다 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내려갔다 는 말을주의해야 합니다.
그는 잘못된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계시는 곳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문제를 피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요 문제는 피하면 더 커진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풍랑을 만났고,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산을 오르기는 어렵습니다. 올라가는 것은 결코 평지를 가거나 내려가는 것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계속오르면 정상의 환희가 있습니다.
하지만 쉽다고 계속 내려가기만 한다면 결국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입니다.
더이상 타락하고, 더이상 잠들고, 더이상 믿음이 식어지면 그 다음엔 엄청난 영적인 암흑과 죽음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내려가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밖에서 오는 환란이나 시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유혹에 빠져있기 때문일 수 도 있습니다.
아니면 영적인 교만 때문일 수 도 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신앙이 내려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너무 부자라서 신앙이 내려가는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G N P가 높은 나라는 스위스입니다.
그러나 이 스위스는 영적으로 죽어갑니다.
모든 사람들이 교회를 멀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는 부르지만 영적으로는 곤두박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자나라이면서도 영적으로는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자는 하나님을 외면한 부자를 말합니다.
외관상으로는 잘먹고 잘쓰고 잘지내지만 영적으로는 가난하여 결국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정신병자가 많아서 정신병원이 만원인 나라들은 모두 잘사는 나라들입니다.
왜입니까
그것은 영적으로 잘사는 것이 무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교회를 등지고, 믿음을 등지고 사는 사람들은 잘 살아도 가난뱅이며, 최대의 풍요를 구가하면서도 배고픈 민생인 것입니다.
여러분 !
내려가지말고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모든 싸움이기고 근심걱정 벗은후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같이 이 찬송은 우리에게 용기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은혜안에 뛰놀며 주의 영광 보리라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같이..
사 40:31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돌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새힘을 받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낡은 차는 경사진 언덕을 올라가기 어렵습니다.
힘없는 사람은 높은 산에 올라가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여 새힘얻고 독수리처럼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이사람이 강도 만난 것은 무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이사람은 강도를 만나는 데에 대한 대비가 없었습니다.
무방비상태에서 당하고 만것입니다.
자기가 지나가는 곳이 항상 강도들이 나타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강도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만약에 이사람이 무기를 준비하였다든지, 또는 강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든지 하였더라면 결코 이렇게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화)
그렇읍니다.
준비가 되어있으면 닥쳐오는 환란이나 어려움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그 상처는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열처녀의 비유를 통하여 깨어 있으라 하셨고, 막13:37에 깨어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하셨읍니다.
또한 사도 베드로도 벧전 5:8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자를 찾나니... 라고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도 엡 6:11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고 하셨읍니다.
즉 사탄의 세력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무장을 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강도 만난 사람이 이렇게 어려움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언제 어느 때에 마귀 사탄과 싸움이 시작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께서는 우리 대적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삼킬자를 찾아 두루 다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때에 준비하지 않는 성도가 있다면 그사람은 날 잡아 잡수 하고 강도를 기다리는 사람일 것입니다.
기도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능력있는 말씀의 검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확신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의로운 생활로 무장하시고 믿음의 방패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말씀을 전하므로 더욱 그리스도의 군사를 많게하여 사탄 마귀를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무장하고 준비한다면 어떤 악의 세력도 한길로 들어왔다가 열길로 도망할 줄로 믿읍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혼자있지 않고, 언제나 성도들과 같이하며 예수그리스를 바라보고, 내려가는 신앙을 버리고 항상 앙망하고 올라가는 신앙을 가지며, 수시로 준비하며 무장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때 사탄마귀의 어떤 유혹이나 강도의 침입도 막을 수 있게 될줄로 믿읍니다.
언제나 주님과 함께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내려가는 신앙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올라가는 신앙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나 준비하고 훈련받고 무장하여 어떤 악의세력에도 이기고 승리하는 우리교회 온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