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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롭게 시작합시다 (고후 0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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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아버지, 성자로 불리우는 리빙스턴은 젊은날 선교사로 자원하여 자신은 전생을 아프리카에 바친 사람입니다. 그는 선교활동 중 온갖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풍토병이 시달렸고 사자를 만나 팔 한쪽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가 고국인 미국에 돌아갔을 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제는 돌아와 편안히 여생을 살 것을 제의 했습니다.
그 때에 리빙스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프리카에 살러간 것이 아니라 죽으러 갔습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내 사명을 다할 때까지 지켜주실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사명을 다하기까지는 죽지 않습니다.”
사람은 삶을 살면서 자기가 사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일마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 목표가 없으면 우리는 세상을 살 이유가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두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건강하던 사람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봅니다.
그 이유는 그가 사명을 다했거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목표를 상실함으로 세상에 더 살아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든 날이 주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로 일천일 연속예배를 마쳤습니다. 이제는 끝이 아니라 새롭게 출발하여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새롭게 시작하여야 합니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 시작하여야 할까요

1.날마다 새롭게 출발하여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새로운 하루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역사를 운행하시며 매일 새로운 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어제와 다른 백지와 같은 날을 주셨습니다. 문제는 이 백지 위에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입니다. 누구는 아무 것도 그리지 않습니다. 누구는 먹칠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아름답게 구도를 잡고 채색을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첫째는 호적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아담에게서 태어난 우리가 예수 안에 다시 태어나 생명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셋째는 인도자가 달라졌습니다. 마귀에 끌려 다니던 우리가 참 목자 예수님의 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넷째는 상태가 달라졌습니다.
목표가 다르면 결과도 달리 나타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이제는 달라진 피조물로 달라진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기까지 온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더 새로워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두발 자전거는 달리지 않으면 쓰러집니다. 달릴 때 그 원심력으로 쓰러지지 않습니다. 칼도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습니다. 활동할 때 사람은 건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깊은 죄를 깨닫고 더 새로워짐이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동행하면 할수록 자기에게서 더 많은 죄를 발견했습니다. 그가 더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죄를 더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두운 불빛에 보지못했던 옷의 누추함이, 밝은 태양빛 밑에서 완연히 드러나듯이, 그가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가까이 갈 때에 그는 더 명백하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기의 삶을 볼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죄에 대한 우리의 깨달음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과 비례합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더 새로워지기 위한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더 새로운 하나님의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2.더 큰 것을 바라보며 시작하십시오.
이스라엘은 세계 역사에 그 유래가 없을만큼 큰 수난을 겪었습니다. 430년에 걸친 애굽에서의 노예생활, 70년간의 바벨론의 포로생활, 2000년 동안 나라없는 민족으로 떠돌았습니다. 독일의 히틀러에게 유태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600만에 달하는 동족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민족이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며 세계사에 우뚝 선 비결은 무엇일까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각 방면에 걸출한 사람들을 배출하며 세계사를 주도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의 시간개념 때문입니다. 또 이것은 성서적인 시간관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하루를 자정부터 계산하지 않고 저녁 때로부터 시작하여 다음날 저녁까지로 계산했습니다.
창세기 1장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라”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하루는 먼저 저녁이 오고 다음에 아침이 오는 것입니다. 또 옛날에는 하루를 정밀히 세분하지 않고 다만 저녁, 아침, 낮 정도로만 구분했습니다. 즉 저녁은 ‘해가 졌다’든지 ‘황혼’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아침은 ‘새벽’이라 하고 낮은 ‘폭양’때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시간의 개념이 무슨 의미를 주는 것일까요 보통 사람들의 하루는 빛으로 시작하여 어둠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루는 어둠으로 시작하여 빛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기대하는 소망이 그 참혹함과 처절함을 견디게 한 것입니다. 소망은 현재의 고난을 이기게 합니다. 일시적인 것에 눈돌리지 않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캄캄한 어두움은 아닙니까
빛을 바라 보십시오. 빛을 소망하십시오. 육신의 삶이 있을 동안 우리의 삶은 어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빛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새로운 것을 소망하는 삶입니다. 땅에 살아도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 살아야 합니다. 육신의 삶에 지배당하지 않고 천국을 바라보며 전진하는삶입니다.

3.끝없는 사랑으로 시작하십시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고 했습니다. 왜 사랑이 가장 소중한 것일까요 믿음은 천국을 가기 위한 유일한 길입니다. 소망은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우리는 모든 목표를 이룬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곳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랑으로 이만큼 살아왔으면 사랑으로 또 남은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데 학교 졸업시키는데까지만, 결혼할 때까지만 사랑합니까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녀가 사랑하여 결혼하는데 결혼할 때까지만 사랑하는 것입니까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하여 결혼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일정선에서 끝나면 그때부터 문제가 벌어집니다. 날마다 더 큰 사랑을 목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했습니다. 그의 사랑이 끝없음으로 우리의 사랑도 끝이 없어야 합니다.
바울은 1차, 2차, 3차에 걸친 전도여행으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을 다 겪었고 마지막에는 로마 감옥에서 순교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그로 하여금 로마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자에게 내가 빚진 자로다 하며 전도의 길을 나서게 했던 것입니다. 사랑함으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잠시 쉼은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하나님에 대한 더 큰 사랑, 더 위대한 사랑을 목표로 하여 달려나가야 합니다. 일천일 연속예배를 잘 마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하고 더 큰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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