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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노동과 휴식 (출 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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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지방회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연세가 70이 넘어 장로님 한분이 은퇴를 하심으로 찬하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설교를 맡으신 목사님이 “장로님 오래 사실려고는 하지 마십시오. 노인에게 오래 살라고 하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욕입니다” 했더니 일순간 장로님의 얼굴빛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 “모세만큼만 사십시오”했더니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아무리 나이많은 노인도 더 오래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장수를 복이라고 말합니다. 장수는 분명 복입니다. 그러나 장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건강입니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게 사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건강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했지만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은 건강합니까 여러분의 신앙은 건강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 신앙생활, 오래 한것만 자랑하지 마시고 건강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몸이나 신앙이 건강하지 못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영양부족과 영양과다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먹는 것은 적고 일하는 것은 많았습니다. 그들은 늘 영양실조에 시달렸습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서 건강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정반대입니다. 잘먹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몸이 비대해지고 온갖 질병이 찾아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먹지 못하고 은혜를 받지 못하여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은혜만 잔뜩 받아놓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 비만에 걸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원리가 있습니다. 이 원리는 각 방면에 있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영양과 공급과 지출을 이룰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을 때 누구보다도 사람을 위하여 걱정하신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먹지 말라는 열매를 먹었다는 것은 사람이 그 욕망의 절제를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욕망의 절제를 포기하게 되면 그것 때문에 즉시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하는 치명적인 병에 걸리게 됩니다. 먹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면 비만과 동맥경화와 심장질환에 걸리게 되고 술을 즐기는데 절제하지 못하면 폐와 간과 골수에 손상을 입게 됩니다. 성욕을 절제합지 못하면 결국 퇴폐의 골짜기에 떨어지제 되어 스스로의 죽음을 재촉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심각한 문제들로부터 사람을 조금이라도 보호할 수 있을까 고심하시던 하나님은 결국 몇가지 대책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이 곧 여자에게는 잉태하는 고통과 해산의 수고를 주신 것입니다. 남자에게는 종신토록 수고하여 얼굴에 땀이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도록 하신 일입니다. 즉 여자에게는 한달에 한번씩 경도의 기간과 아이를 낳고 기르는데 필요한 시간을 부과함으로써 끝없는 욕망의 분출을 견제하셨고, 남자는 얼굴에 땀이 흐르도록 일하게 하심으로 콜레스테롤의 축적을 최대한 방지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그 정욕을 억제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 때문에 그 징계로써 사람에게 닥쳐올 신속한 종말로부터 그의 사랑하는 사람을 건져 내시려는 하나님의 비상조치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에게는 기회만 있으면 일하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람이 금단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걷는 사람은 서고 싶어하고, 서있는 사람은 자꾸만 앉으려 하고, 앉아 있는 사람은 또 눕고 싶어합니다. 그리하여 완전히 누우면 그는 죽음에 그는 죽음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자들은 아이 낳기를 싫어합니다. 아이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하여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남자가 일하기 싫아하고 여자가 아이낳기를 싫어하는 것은 바로 죽음을 향해 가는 지름길입니다. 역사상 모든 나라의 멸망들은 한결같이 일하지 않으려는 남자들과 아이 낳기를 싫어하는 여자들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프랑스는 여자들이 아이 낳는 것을 포기함으로 매년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말세를 향하여 가는 징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과거로부터 오랫 전쟁과 가난에 지긋지긋하게 시달려 왔기 때문에 오히려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생존적에너지가 팽배해 있었습니다. 더 이상의 모멸과 치욕 속에서 살 수 없다는 자각이 우리의 생존의지를 불타게 했고 우리는 참으로 지독하게 일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수십 달러 밖에 안되던 1인당 GNP가 6000달러를 넘어섰고 무역거래액이 세계 10위에 육박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은 1천 4백만의 대도시가 되었고 160개국이 참가하는 올림픽도 훌륭하게 치뤄냈습니다. 온세계사람들이 한국을 부러워하게 되었고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 식량원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배가 불러지면서 모세의 경고가 적중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40년이나 고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을 때 모세는 이렇게 경고하였습니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신 8:12-14)”
모세의 걱정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큰 나라를 건설하고 그 소유가 풍부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의 신전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이방의 여인들과 음행에 빠지고 우상숭배에 끼어들더니 마침내 멸망의 길을 걷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비해 놀랄만큼의 생활의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얼마를 쌓았든 더 큰 목적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당신도 지금 이와 같은 죽음의 대열에 빠져들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와 같은 영적비만에 걸려있지 않습니까

2.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아야 합니다.
과거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너무도 열악한 조건 속에서 생계비도 안되는 저임금을 받으며 선진국들과의 경쟁을 위해 노동자들은 쉼없이 일했습니다. 땀흘려 지은 양식을 말도 안되는 가격에 공급하여 농민들은 그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역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사용자들이 뼈빠지게 일시키고 돈 안줄려고 했다면, 요즘은 일안하고 돈받겠다는 식이 되었습니다.
옛날 로마가 가장 강대했던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로마 사람들의 공휴일은 76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새황제가 즉위하면서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휴일을 늘려주면서 로마가 멸망하게 되었을 때 쯤에는 공휴일이 175일이나 되었습니다.
우리의 휴일은 법정일수가 96일입니다. 여기에다 노조와의 단체협약에서 덧붙여준 휴일과 휴가, 연월차, 각종 노조행사에 필요한 휴일, 그리고 예비군 교육까지 합하면 147일입니다. 거기에다 일부에서는 토요일 휴무를 검토 중인데 토요일 휴무를 0.5일로 계산하여 26일을 보태면 결국 173일이 됩니다. 물론 재충전을 위해 휴식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엿새 동안은 열심히 일하고 하루를 쉬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의 멸망은 일주일에서 이틀을 쉬는데서 왔습니다.
서구 교회의 쇠퇴와 타락은 주 오일 근무에서 왔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서도 오일을 근무하고 하루는 야외에 나고 놀고 주일만 교회에 왔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이틀을 쉬면 그나마 나오던 주일도 못지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연휴가 되면 놀러갈 계획부터 세우지 않습니까
“엿새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9-10)”
엿새는 세상에서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엿새동안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일곱째날 안식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놀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전국을 휩쓸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들마저 놀러다니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제 일하는 모범을 보이는 일에 교회가 앞장설 때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얼굴에 땀이 흐르도록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거든 먹게도 하지말라(살후 3:10)”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걱정을 그대로 나타낸 말이었습니다. 일하지 않고 땀을 흘리지 않으려면 차라리 먹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멸망하지 않고 천국에 도착하려면 성도들은 땀을 흘리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일하지 않아서 비만증에 걸린 성도들은 천국에 이르기도 전에 헐떡거리며 쓰러져 버릴 게 틀림이 없습니다.

3.주 안에서 휴일을 보냅시다.
위에서 예시한 부분들이 일하지 않고 먹고 즐기는 일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이제는 정반대로 일에만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얼마 전 일간지 신문의 해외토픽란에 어느 폴란드인의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등기소의 직원인 한 사람은 27년 동안 하루도 쉬지않고 일만해 왔습니다. 그사람은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에 미쳐서 쉬는 것을 아예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하도 딱하게 보이니까 상부에서 강제로 일주일간 휴가를 주어 일을 떠나도록 했는데 그는 오히려 일할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낙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두 사람이 열심히 도끼로 나무를 찍어 내고 있었습니다. 한사람은 한시간 일하고 잠시 쉬고 또 일하고 또 쉬곤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사함은 쉼없이 일을 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각자가 찍어낸 나무를 보니 오히려 쉬엄쉬엄 일한 사람의 것이 더 많았습니다. 어이가 없어 그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자ㄴ네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나무를 찍어낼 수 있었는가” “나는 쉴 때마다 내 도끼날을 갈았다네.” 그렇습니다. 휴식도 사실은 일입니다. 더 큰 일을 하기 위한 재충전인 것입니다. 성도의 휴일은 일주일간 살아갈 수 있는 내 영적 삶을 위한 재충전인 것입니다. 이 충전이 없으면 무력합니다.
주일날 차량운행을 하면 다른날보다는 훨씬 수월합니다. 주일이 휴일이라서 차가 운행하지 않는 차량이 있어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주된 이유는 야외로 빠져나간 차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도심은 한가하고 야외로 빠져나가는 도로는 차들들로 인하여 아예 주차장이 되어 버립니다.
주님 안에서 살아갑니다. 나의 모든 날들을 주님을 위하여 살아갑시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하여 주님 앞에 충성된 모습으로 섭시다. 열심히 벌어서 옳바르게 지출합시다. 주님 앞에 신령과 진정의 참된 예배를 드립시다. 주님이 주신 말씀들로 영적 삶을 재충전하고 그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갑시다. 늘 이기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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