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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은 우셨습니다 (히 0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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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저와 여러분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해 주신 덕분에 기도원에 잘 다녀왔습니다. 산상에서 받은 은혜와 능력은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했습니다. 기도 중에 주셨던 모든 은혜와 사랑을 함께 나누며 주님을 이 시간 찬양하고자 합니다.
언제나 느끼고 깨닫는 바이지만 우리는 무심결로 어떤 일을 행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시고 상황을 인도하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단지 기도의 강력한 필요성 때문에 기도원에 갔습니다.
제가 기도원에 올라간 월요일 저녁에 필리핀에서 ‘생명의 떡’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 120명 그 기도원에 왔습니다. 용문산 기도원이 한국 성령운동의 산실인지라 그 시발지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고자 먼곳 필리핀에서 대규모로 성도들이 몰려 온 것입니다.
필리핀 하면 여러분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못사는 나라, 마르코스 독재의 폭압정치는 끝이 났지만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하고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마침 저와 함께 갔던 명성교회 음태봉 목사님이 C.C.C에서 가졌던 예수 2000운동 때 필리핀을 직접 방문했던 경험이 있는 분이라서 그 나라의 상황을 잘알고 있었습니다. 필리핀은 우리나라의 60년대 초반 정도의 경제력 밖에 가지지 못한 아주 가난한 나라입니다.
과거 다른 나라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기에 여러 인종들이 섞여 사는 그래서 아주 복잡한 나라입니다. 나보다 못사는 나라, 못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됩니까 그 앞에서 으시대고 우쭐거리지 않습니까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피부 빛깔도 다르고, 생김새도 각양각색인 그들을 보면서 신기한듯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러나 2박 3일에 걸쳐 그들이 기도하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은혜를 많이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신실할 수가 없고 찬양이 그렇게 뜨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음태봉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필리핀은 예배를 드릴 때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작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끝나는 시간은 정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보통 3-4시간은 드린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한시간만 넘어도 시간을 보며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몇시간의 예배를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정말 기쁜 마음으로 드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난한고 못사는 나라, 검둥이 흰둥이 섞여사는 혼동의 나라. 쉽게 무시해왔던 그들 가운데서 저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음태봉 목사님이 필리핀에 갔을 때 보았던 일입니다. 청년 한사람이 십자가를 교회에 가지고 와서 바닥에 가만히 내려놓고는 무릎을 꿇고 그 십자가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일어나는 그를 보니 그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여기 우리들 중에 주님의 십자가에 입맞추고 그 즉시로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그 가난 속에서 부유를 자랑하는 우리가 갖지 못한 뜨거운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떡’ 교회의 담임목사는 콘데 목사입니다. 그는 현재 41세로 필리핀 제일의 만명 교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저녁시간에 그분이 설교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열정적으로 예수를 전하면서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그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가 울면서 눈물로 메세지를 전하자 여기저기에서 흐느껴 울기 시작합니다. 모두가 울었습니다. 저도 물론 울었습니다. 그가 전하는 설교의 핵심은 다른 게 아닙니다. “예수가 나와 당신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주 듣고 매일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무미건조합니다. 아무런 감동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 안에 어떤 생명의 역사도 일으키지 못합니다.
목사님들을 만나면 너나할 것없이 한 목소리로 목회가 옛날과 같지 않다고 합니다. 불신자들은 아예 신앙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고 신자들 역시 형식적인 신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신앙을 위해 몸부림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 역사 100년에 천만 성도를 자랑하지만 1988년을 고비로 교회는 정체 내지는 쇠토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생활이 윤택해지면 질수록 하나님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연합집회를 할 때마다 보면 모이는 인원이 그 교회 주일낮 예배 참석인원도 채우지 못합니다. 지방 전체 교회가 연합으로 드리는 예배가 이렇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도 사실 그런면에서 목회를 하면서 고전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기도원에 가서 저는 신선한 자극을 받았고 도전해야할 목표를 정하고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강팍해져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이 세대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다고 탄식하셨습니다. 이 세대와 다가오는 세대가 예수님이 일하시던 시대보다 악해지면 악해졌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악한 세대 가운데서 우리가 살고 우리가 신앙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는 콘데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악해도 눈물은 그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습니다. 입으로 하는 설교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해도 가슴으로 영혼에 호소하는 설교는 능력을 일으킨다 믿습니다. 필리핀 성도들의 그 간절한 통곡의 기도를 들으면서 저는 성경의 한구절을 생각했고 저의 목회의 한 방향을 정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잃은 본문 7절을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에 웃으셨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러나 곳곳에 그가 우셨다는 이야기들은 가득합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그가 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떠나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셨습니다.
병든 육신과 상한 심령들을 바라보며 우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그가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인류를 위하여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방법이 오직 이것 한가지였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20장에서 자기의 사역을 겸손과 눈물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도 이렇게 사역하겠습니다.” 서원했습니다. 눈물의 사역, 이것만이 오늘 이시대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역의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울고, 죽어가는 저들이 불쌍해서 울고, 저는 그날부터 오늘 이자리까지 계속 그 기도만 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그 능력을 주세요!” 그런데요, 그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첫째날 콘데 목사님이 울면서 설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울면서 설교하고 나도 울면서 목회해야 하겠다 결심했는데 나는 눈물이 말라서인지 도대체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몸부림쳤습니다. 목요일 내려오는 날까지 그 기도만 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왜 눈물이 나지 않습니까” 화가 나서 소리 지르니까 눈물이 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대청산 기도원에 올라가 다시 하나님 나에게 눈물을 주세요! 기도했습니다. 어제 청년부 예배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또 기도원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눈물을 주세요! 여러분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이 능력을 구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흘리는 눈물,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한 눈물을 하나님께 구할 것입니다. 함께 우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설교의 황제라 불리우던 스펄젼 목사가 어느날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다가가 물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 왜 우십니까” “오늘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이 말씀 앞에서 아무런 감동도 일어나지를 않아요” 18세기에 일만명이 모이는 사역을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눈물 때문이었습니다.
이 눈물을 저는 하나님께 구하겠습니다. 함께 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흘려야할 눈물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자기의 영혼을 위하여 웁시다.
세상에 물들고 죄로 더럽혀지고 날마다 추해져 가는 스스로의 영혼을 눈물로 닦아 냅시다. 이 시대 가운데 우리가 흘려야 하는 눈물은 남보다 많이 갖지 못한 가난 때문도 아닙니다. 남보다 못났다는 열등감 때문도 아닙니다. 이 시대 가운데 빛으로 소금으로 살지 못하는 나의 죄악 때문에 울어야 합니다. 다윗은 눈물이 넘쳐 침상을 적셨다고 했습니다. 내 영혼 때문에 울어야 합니다.

2.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웁시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멸망해 가는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에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권력을 이용하여 부동산 투기를 일삼고 축재를 하였습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맞긴 격이 되었습니다. 양심의 보루라고 했던 교육마저 썩어 다시 언론이 들썩거리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꿈을 잃고 방황합니다. 사치와 향락에 일하지 않고 쉽게 살겠다는 의식이 팽배합니다. 지금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용문산 구국제단에서는 63년부터 지금까지 한시간도 빠짐없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가 올려지고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잘해서 이 나라가 유지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눈비 맞으며 그렇게 소리없이 기도하는 이들이 있기에 하나님이 이 나라를 붙들어 주신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과거 총동원 전도주일을 위해 몇번에 걸쳐 24시간 기도회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곤욕을 치루었습니다.
기도는 사람이 많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의 사람만 있어도 됩니다. 용문산에는 많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고 있습니다. 영락교회에서 매일 24시간 기도회를 하다가 한달만에 포기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기도는 사명자들이 합니다. 지금은 더욱 깨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할 때입니다.

3.교회와 사명을 위하여 웁시다.
하나님 제게 주신 양떼를 위하여 울겠습니다. 낙심한 자를 위하여, 병든 자를 위하여, 사명을 위하여 울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직분 때문에 웁시다. 능력을 위하여 웁시다.

4.나의 가정과 이웃을 위하여 웁시다.
가정이나 가족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합니까 부자는 음부에 가서 자기 형제를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그들이 이곳에 오지 않도록 나사로를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구원은 내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하여 울면 됩니다. 눈물이 마르지 않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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