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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가치 (눅 1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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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지 7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한 목사님 내외가 있었습니다. 교회도 부흥되었고, 성도들의 많은 사랑도 받았지만 아이가 없음으로 늘 허전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집사님 한분이 애완견을 한 마리 사다 드렸습니다. “목사님, 허전 하실텐데 이 강아지에게 정 붙이고 사십시오. 이놈이 보통 귀엽고 똑똑한 게 아닙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강아지를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집사님이 사다 주신 것이라 정성들여 길렀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강아지에게 정이 듬뿍 들었습니다. 강아지는 외출했다 돌아오면 꼬리치며 반가워 했습니다. 그들은 강아지와 같이 식사하고 같이 잠을 잤습니다. 나중에는 강아지가 자식같이, 가족같이 느껴졌습니다. 어느날 외출했다 돌아오는데 강아지가 반갑다고 막 달려 왔습니다. 마침 그날은 비가 왔습니다.
흙발로 자기에게 달려드는 바람에 옷을 버릴까 싶어 강아지를 발길로 뻥 차버렸습니다. 깽!하고 강아지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날 이후로 강아지는 목사님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걱정이 되어 가축병원 찾아 갔습니다. 강아지는 콜레라에 걸린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강아지가 아픈 것이 자기가 발길질을 해서 그런 것만 같았습니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교회에 가서 강아지를 살려 달라고 하나님께 밤새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간절한 기도도 아랑곧 하지않고 강아지는 죽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은 미어질듯한 가슴을 안고 하나님 앞에 가 통곡했습니다.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그렇게 살려 달라고 했는데 당신은 끝내 그 생명을 데려 가셨군요.” 얼마를 울었을까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사랑하는 종아, 네가 사랑하는 강아지가 죽었다고 너는 그렇게도 우는구나. 너는 목사로서 네 양들이 아프거나 죽어갈 때 너는 그들을 위하여 얼마나 울었느냐” “하나님, 운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 너는 또 강아지에게 무엇을 먹였느냐” “소고기와 우유, 과자 등을 먹였습니다.” “네 양들이 주릴 때에 그들에게는 그런 것들을 사다 주었었느냐” “그런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면 너는 사람 목사가 아니라, 개목사였느니라”
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양들을 강아지만큼도 사랑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울면서 회개를 하였습니다. 장로님이 들어와 우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장로님, 나는 개목사입니다.” 그러자 장로님은 앞에 나아가 “나는 개장로입니다” 또 울기 시작했습니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양과 강아지를 놓고 생각할 때 분명히 양이 귀합니다. 그러나 강아지만큼도 양을 사랑하지 못하는 목사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게 나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보다 사랑하고 강아지를 사랑함으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입니다. 현대인들은 무엇이 더 소중한지를 모릅니다. 무엇을 더 사랑해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가치가 혼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오늘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더 사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더 소중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참된 가치를 발견해야 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속고 살 때가 많습니다. 부수적인 것을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삽니다. 일시적인 것을 영원한 것인양 착각하고 삽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꼭 해야할 일로 착각하고 삽니다. 여러분은 생존이라는 말과 생활이라는 말의 의미를 아십니까 생존은 단지 목숨이 붙어 있는 살아있음만을 의미합니다. 생활이라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제반 여건들을 누리는 삶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는 아주 대조적인 두 사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평생 질병과 가난 속에 살다가 잠든 나사로가 있고, 평생 일하지 않아도 이미 소유한 재물로 매일 잔치하며 향락하며 살았던 부자가 있었습니다. 누가 생존했고 누가 생활을 했습니까 차마 죽지 못해 살았던 나사로입니까 배부른 부자입니까 육신의 눈으로 보면 나사로는 생존했고 부자는 생활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 반대입니다. 부자가 생존했던 사람이고 나사로는 생활을 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부자처럼 살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삶은 재미로 살지 말고 의미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철학자는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가치를 추구합니까 누구를 부러워 합니까 누구와 같은 사람이 되려 하십니까 부수적인 것을 필수적인 것이라고 우기지 마십시오. 일시적인 것을 영원한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양을 강아지만큼도 사랑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십시오.
돈이 있어야, 명예가 있어야, 시간이 있어야 예수 믿는다고 변명하지 마십시오. 나사로는 아무 것도 없어도 신앙이 가능했습니다. 부자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신앙을 갖지 않았습니다. 신앙은 삶의 의미는 소유의 많고 적음의 문제도 아니고 있고 없음의 문제도 아닙니다. 철저하게 본인의 의지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돼지가 되느니 소크라테스가 되십시오. 부자가 되느니 나사로가 되십시오. 그렇게 살기로 아예 이 시간 결정하십시오.

2.영원한 것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갈릴리 바닷가로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고기를 잡아놓고 제자들에게 주며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는냐’ 세번이나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말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묻는 질문 속에는 세 가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이것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돈보다, 명예보다, 권세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네 행복을 위하여 필요하다 생각하는 그 어떤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것이 없어도 나사로처럼 일평생 거지로 살아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느냐’하는 말씀입니다.
진지한 물음입니다. 솔직하게 본인에게 물어 봅시다. 정말로 그렇게 사십니까 둘째는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마땅히 사랑해야 할 네 부모, 네 자식, 네 남편과 네 아내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부모와 형제와 자매는 우리가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사랑의 우선 순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따금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교회에 신앙생활을 못하겠다고 말하는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자신도 지옥가고 부모님도 지옥에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십시오. 모두가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최고 사랑하십시오. 주님을 최고로 높이십시오.
세째는 ‘여기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가운데 네가 나를 가장 많이 가장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겠느냐’ 물으셨습니다. 신앙에 대한 거룩한 욕심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이 각오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이와같은 태도가 아니면 우리의 신앙은 거짓이요 위선입니다.
내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여야 합니다. 내가 마땅히 사랑하여야할 부모와 자식과 남편과 아내, 형제와 자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내 사랑이 가장 뛰어난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무엇이 영원한 것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을 위한 최선의 길이 될 것입니다.
어느 부흥집회에서 강사 목사님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독자를 바치라 하면 바칠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손 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얼마 후 아들 하나를 두고 남편도 없이 사는 여자 집사님이 통곡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면 순종하겠습니다” 하면서 일어 섰습니다. 이 집사님을 어리석다 생각하십니까 천만에요, 이 집사님은 최고로 참 행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시간을 다 드리고, 물질을 다 드리고 삶을 다 드리는 분이 어리석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땅에 대한 욕심으로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한 자들은 반드시 후회하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하나님 앞에 최고의 헌신을 드리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축복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적게 드리는 자는 적게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 것도 드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땅에 살아도 땅에 것에 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육체의 때에 영혼의 때를 준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아주 이기적인 존재인지라 살아서는 부자처럼 살고 죽어서는 나사로처럼 되기를 원하는 게 여러분의 마음이 아닙니까 나는 예수도 알고 천국도 알고 있으니 최소한 부자처럼은 안되겠지 안심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그렇게 자신하지 마십시오.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했습니다.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1)불신자가 가는 곳입니다.
2)최소한의 은혜도 허락되지 않는 곳입니다.
3)영원한 저주가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임종을 앞둔 어느 성도님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목사님, 나는 살아서 하나님께 그렇게 많은 것들을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죽음을 앞둔 이 순간에는 예수라는 이름 밖에 필요한 게 없네요” 그렇습니다. 죽음 앞에서, 천국의 문턱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그렇게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내 삶에는 오직 예수님만이 필요합니다.’ 고백하면서 사십시오.
야곱과 에서는 형제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아주 상반된 인물들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의 얻기에 혈안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세상 일에만 급급했던 사람입니다. 야곱이 간교함으로 장자의 명분과 아버지의 축복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 에서에게도 그 원인이 있음을 간과하지 마십시오. 창세기 25장을 보면 내용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에서가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아무 것도 잡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마침 야곱은 부엌에 들어가 팟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그 냄새가 진동함으로 침이 꼴깍 넘어 갑니다.
에서가 배가 고파 달라고 하자 야곱은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고 합니다. 이 때 에서는 잠시 동안의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했습니다. 사람이 한끼 굶는다고 죽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 때문에 신앙이 어렵다고 핑계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없어서 죽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죽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그것은 신앙보다 급하지 않습니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잃으면 평생 저주 받습니다. 일생 고생을 당합니다.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은 연고로 야곱은 일평생 고난을 길을 걷게 됩니다. 차라리 그것이 없었으면 야곱의 일생은 평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무엇이 유익하리요’해서 팔았습니다. 이는 내가 죽게 되었는데 우선 살고 봐야지 예수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하는 태도입니다.
그는 그렇게 살아서 사백인의 사병을 거느릴 정도로 땅에서는 부요했습니다. 그러나 다음을 또 살펴 봅시다. 창세기 25장 30절에 에서가 팟죽을 달라고 함으로 그의 별명이 에돔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에서는 에돔 족속의 조상입니다. 오바댜나 말라기는 이 에돔 족속에 대한 저주의 말씀입니다. 무섭도록 그의 후손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불신앙의 저주는 본인과 후손을 지옥 가게 합니다.
우리의 삶은 육신의 삶 이후에 영원한 삶이 있습니다. 육신이 있을 동안 우리는 이것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죽은 후에는 불가능합니다. 손가락 끝에 물 한방울 찍어 내 혀를 적셔 달라는 간청마저도 용납될 수 없는 무서운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무한한 행복의 천국을 상속받기 위하여 우리는 나사로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런 각오로 살아야 합니다.
육신의 때는 영혼의 때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육신의 때에 영혼의 때를 준비하지 못하면 영원한 고통이 이르게 됩니다.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이 각오로 참된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길로만 달음박질하는 믿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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