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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으로 충만하라 (행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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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순’은 숫자상으로 ‘열’을 뜻합니다. 오순절은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유월절로부터 일곱 안식일이 지난 49일 다음날 즉 50일째 되는 날을 말씀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초대교회 이후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주일을 지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는 세가지 의미가 있습니다.1)창조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엿새동안 천지만물을 만물을 지으시고 일곱
째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이날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고백입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한 쉼, 휴식에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이레 되는 날을 쉼으로써 엿새 동안에 하나님께서 천하만물을 만드셨다는 신앙고백을 형식화하는 것입니다.
2)종 되었던 곳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2-15)”
하나님은 안식일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나올 때 열가지 재앙을 내리십니다. 아홉가지 혹독한 재앙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이스라엘을 내보내지 않습니다. 마지막 열번 째 애굽의 장자가 죽는 재앙을 겪고 나서야 보내게 됩니다. 이는 유월절 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인간의 구원이 가능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종되었던 곳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힘입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내가 믿습니다’라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거룩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너와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함이라(출 31:12-13)”
거룩함은 구별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은 그의 권위와 창조의 능력과 구원의 은혜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불순종은 하나님에 대한 무시요 도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말씀을 거절하고 불순종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 되기 때문에 죄가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불순종은 자기 권위나 또 다른 존재의 권위를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룩한 존재요 내가 마땅히 듣고 순종하여야할 대상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창조와 구원의 은혜는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이 이루어 놓은 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고백함으로 소유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구원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인정하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는 창조와 구원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심으로 이것을 절기화하고, 의식화 규칙화하십니다. 이것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를 삼아 죄와 악과 더러움과 부패함에서 구별하사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안식일은 제 7일입니다. 그날에는 자기 생업을 중지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안식일의 의미가 확대된 것이 안식년입니다. 안식년에는 사람도 땅도 쉬도록 되어 있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먹을 양식과 입을 옷 등 인간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이 채워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을 갈 때에 매일 매일 그 날의 만나를 주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엿새째는 이틀분의 양식을 주심으로 안식일에 일하지 않아도 모든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이레째 되는 날에는 광야에 나갔어도 만나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주일을 성수하면 하나님은 그날의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그러나 주일을 성수하지 않고 모은 재물은 하나님이 불어 버리십니다. 안식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일, 안식년은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안식할 때가 올 것임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은 오순절, 즉 성령강림절입니다. 성령은 오순절에 오셨습니다. 오순절에 오신 의미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그 개념이 확대된 희년을 통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1.희년에는 자유의 신분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모두 안식일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희년과 오순절의 개념을 살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순서에서 마지막으로 인간을 지으시고 인간에게 만물을 주사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누리기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금한 선악과를 따먹게 됨으로써 죄가 인간에게 들어야 인간은 안식을 잃어버렸습니다.
인간에게는 형벌이 주어졌습니다. 남자에게는 노동의 수고를 주사 이마에 땀이 흘러야 먹고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여자에게는 남자를 섬길 것과 해산의 수고를 감당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이레에 하루를 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날의 안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만물창조를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하루의 안식을 통하여 인간의 죄악에 대한 회상과 하나님이 주신 안식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안식일은 지키는 것이지만 또한 누리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무시요 권리에 대한 포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한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이 지나 일곱 안식일이 지나면 오순절을 지킵니다. 이날은 칠칠절입니다. 이때쯤이면 보리를 베는 시기입니다. 거룩한 안식일이 일곱번 지났다하여 이를 기념하여 50일째 되는날 크게 잔치를 벌입니다. 광야를 유리하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그땅의 소산을 처음 먹게됨을 기념해서 지키게 되는 절기입니다.
안식일의 개념이 확대된 것이 안식년입니다. 칠칠절(오순절)의 개념이 확대된 것이 희년입니다.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년이 일곱번인즉 안식년 일곱번 동안 곧 사십구년이라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되돌아갈지며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레 25:8-12)”
노예로 부렸어도 희년에는 놓아 주어야 합니다. 만일 그가 속하여 돈을 내려면죽을 때까지가 아니라 희년까지를 계산하여야 합니다. 희년은 종이 풀리는 때 이고 기업을 회복하는 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고, 배반하고 죄 가운데 빠진 모두를 회복시키는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그 표현을 ‘종되었 던 것’과 ‘종에서 자유를 얻는 것’으로 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희년에는 어떤 이유로든 종이된 사람은 모두 자유로이 풀어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신 것은 성령이 오심으로 인간이 죄의 결박과 사슬에서 풀어져 자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상징하고자 성령은 오순절에 오셨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자유할 능력과 명분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은혜로 구원을 주실 뿐입니다.

2.희년에는 돌아갈 땅을 주십니다.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땅을 사고 팔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와서도 제비를뽑아 전부 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설혹 땅을 팔았다 하더라 도 희년에는 반드시 원주민에게 돌려주게 되어 있습니다. 땅이 있다는 것은 이 사람들에게 영원한 처소가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기업이 생겼다는 것은 우리 가 하나님으로부터 외인이 되고 타락해서 이방인이 되어 죽을 수 밖에 없는자, 기업이 되고 소망이 없는 자인데 영원한 처소를 되돌려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땅을 판자가 다시 돌려 받는데 있어서 댓가를 치루는 것이 아니라 희년에는 무조건 아무런 댓가없이 돌려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규례와 절기로 반드시 지키도록하셨습니다.
규례를 지킴은 이미 있었던 것을 추억하게 하는 의식이지 그 규례를 지킴으로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도 규례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앞에서 한 것들이 아직 상징이었지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영적으로 죄와 사망의 종되었던 곳에서 꺼내어 하나님의 자녀삼을 일이 상징화 되어야 하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입니다.
희년에 잃었던 토지를 다시 찾는 것은 에덴동산을 잃어버리고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인류가 영원히 행복한 처소, 에덴동산을 돌려받는다는 것입니다. 종의 신분에서 자유하고 잃었던 토지를 다시 찾게 되는 것은 죄악의 사슬에서 자유한 신분을 되찾고 새하늘과 새땅 영원한 천국을 얻을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3.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도는 마땅히 모두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라는 명령 이전에 먼저 우리는 오순절에 성령께서 오셨다는 그 의미를 먼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순절에 오시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어떻게 친히 죄와 사망의 종에서 꺼내셨는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종노릇 하던 곳에서부터 꺼냄을 받았다는 것이 어떻게 증명됩니까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던 우리에게 성령님이 오실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주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던 120인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오순절 이전과 이후 제자들의 확연한 변화의 결과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했습니까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은 어떻게 오셔서 어떻게 하십니까 불의 혀같은 능력이 임했습니다. 예수의 보혈이 모든 인간의 죄악을 씻기듯 불은 모든 것을 소멸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악을 소멸하고 예수로 충만케 했습니다. 천국의 시민이 될 것과 그땅을 차지하게 될 소망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예수로 충만합니까 천국의 시민으로 자유케 될 소망으로 기쁨이 충만합니까 생명수의 나무와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영원한 처소 잃어 버렸던 에덴동산보다 더 아름답고 완전한 천국에 가슴벅차 하십니까
오순절의 성령은 우리에게 이것을 제공해 주십니다. 성도는 이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이 능력이 있을 때 나가서 죽음도 두려워 하지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500여명이 성령강림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믿고 기도한 사람은 120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열흘을 합심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오순절이 되어 120명은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 당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믿음, 소망, 사랑으로 충만한 당신을 원하지 않나요
언제 어디서나 성령으로 충만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죄와 사망에 매여 종노릇하던 나, 에덴에서 추방되어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 형벌에 놓여있던 나, 이런 나에게 성령이 오셨습니다. 구원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천국의 시민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근심되게 하지 마십시오.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
그는 성령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를 알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을찌라도 성령을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무엇과도 성령을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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