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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가 살기를 원하거든 (창 0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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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이성이 있고 양심이 있습니다. 어떤 사건을 만나거나 사물을 보면 이성은 판단하고 양심은 판결합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우리는 그것을 통해 남을 보기 전에 나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그의 행위를 비난하기 전에 나에게는 그런 마음의 소원이 없었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어떤 사건이나 사물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모두 재판관이 됩니다. 옳고 그름을 판별하고 나름대로 선고도 내립니다. 그러나 이렇듯 나의 주관과 이성에서 나온 판결이 얼마나 옳은 것일까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얼마나 일치될 수 있는 것인가요 저는 그 생각이 틀렸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가인은 아벨과 아벨의 제사만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자신과 자신의 제사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지 않는 것에 분개해서 동생을 죽였습니다. 동생을 죽인 사람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늘은 살인자 가인을 앞에 세워 두고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인간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어느날 예수님 앞에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끌려 왔습니다. 끌고 온 무리가 “모세의 율법에 보면 이런 여인은 돌로 쳐 죽이라 하였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처리하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에게 질문했습니다.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치라”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양심의 가책을 받고는 슬며시 돌을 내려놓고 돌아갔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여인은 들킨 죄인이요, 자신들은 들키지 않은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행위로 죄지은 여인이요 자신들은 마음으로 간음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중심을 보셨기에 그들 중에는 여인을 벌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있으면 돌로 치라”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가인이 동생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형제는 서로 사랑해야 할 대상이지 원수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가인은 아벨을 죽여 버렸습니다. 만일 우리 앞에 가인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판결을 그에게 내리시겠습니까
사형, 무기징역 아무리 가볍게 벌을 내려도 10년 형 이상은 내리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는 무리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 성경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이미 간음한 자요,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이미 살인한 자라”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누구 할 것없이 다 간음자요, 살인자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도 다른 인간을 심판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우리는 모두 나 자신이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질기디 질긴 죄악의 뿌리가 내 속에 있음을 알고 바울처럼 고백하여야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2.죄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항변합니다.
잘못했으면 혼이 나고 벌을 받아야 합니다. 잘못하고 벌을 받지 않으려 한다면 얼마나 비양심적입니까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얼마나 가증합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셨고,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었습니다.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주님이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었을 때에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하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대들었던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이런 가인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 같으면 당장에 벼락을 내려 죽여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죄는 벌로써 징계하십니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 4:11-12)”
현대인들은 무의식 중에도 죄를 밥먹듯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제 밤에 밖에 나갔다 올 때 보니까 이 건물 계단에 앉아 여학생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한심스럽고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왔습니다. 남자들은 담배를 피우는데 여학생이 담배를 왜 나쁩니까 항변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정말 그게 정당한 일입니까
제가 보아도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게 정당한 것일까요 그게 옳은 일일까요 정말 그게 옳고 정당한 것이라면 숨어서 몰래 몰래 하지말고 할아버지, 아버지 앞에서 하세요. 나이 들어서 하지 말고 유치원 다닐 때부터 하도록 가르치세요. 잘못입니다. 죄악입니다. 그럼에도 죄책감이란 찾아볼 수 없고 “내가 왜 죄인이냐”고 항변을 합니다.
모든 일에, 모든 범죄에 같은 태도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요일 1:8,10)”
인간들은 자신의 죄를 알고 인정하는 죄인과 인정하지 않는 죄인이 있을 뿐 모두가 죄인입니다. 인간들이 내게 무슨 죄가 있느냐고 우기는 만큼 인간은 스스로 죄인됨을 부정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죄를 억수로 지어놓고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항변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인과 같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든 안하든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인간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들에게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수준 미달의 죄가 있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불순한 동기의 죄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앙의 죄가 있습니다. 인간은 예외없이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3.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여야 합니다.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합니다. 때렸으면 맞아야 합니다. 죽였다면 죽어야 합니다. 가인은 죄없는 동생을 돌로 쳐서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동생을 죽였으니 본인이 죽어야 합니다. 우리들도 그를 죽여야 한다고 소리치지 않습니까 사실 죽어도 할말이 없는 처지가 아닙니까 차라리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 있느니 죽어버리는 게 본인에게도 낫지 않을까요 그런데 살인자 가인의 태도를 보십시오.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창 4:13-14)”
가인의 이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너무 뻔뻔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는 살인자입니다. 그 살인자가 하나님 앞에 살기 위하여 보호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인간에게 사망이 왕노릇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됨으로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죽습니다. 영원한 사망 지옥에 가게 됩니다. 죄를 지었으니 지옥에 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 앞에 살려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저는 동생을 죽인 살인자입니다. 죽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래도 부탁합니다. 나를 살려 주옵소서.”
가인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인간은 죽어 있는 존재입니다. 죽어가는 존재입니다. 죽을 존재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살고 싶었기에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시는 하나님, 만물을 만드시고 모든 생명을 생성케 하시고 그 생명을 거두시고 심판하실 하나님 앞에 가인은 부르짖었습니다. “살려 주옵소서!”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가인은 죽어 마땅한 죄인임에도 살고 싶어서 살려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하여 누구를 찾아가야 합니까 누구에게 부르짖어야 합니까 하나님께 간구하여야 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4.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가인은 살인자라도 살고싶은 마음에 살려달라고 호소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조가 너무 크기에 하나님이 가인을 용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의 요구를 들으사 그를 구원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 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창 4:15)”
가인을 살려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는 불만을 터뜨리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감격하고 놀라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죽어 마땅한 죄인을 용서하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벌하기 이전에 용서를 베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죄의 용서만 원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용서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인자라도 자살하거나 남에게 죽임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가 진정 살기를 원하면 살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무 공로없이 살기를 원하면 살려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죄인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여러 곳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①노아 방주
②소돔과 고모라
③성막의 제단뿔
④이스라엘의 도피성
하나님은 죄인도 용서받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간음한 자라도, 살인자라도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어떠한 범죄자라도 그가 구원얻기를 하나님 앞에 구하면 하나님은 그를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심판에 있지 않고 구원에 있습니다. 용서가 없는 정죄는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율법이 하나님 말씀이지만 용서가 없기에 사망의 법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작은 죄도 용납지 않는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모든 죄도 얼마든지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주님 앞에 가인과 같이 절박한 심정으로 살려주시기를 호소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앙이 깊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가 어떤 분인가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그보다 더 귀한 존재가 없습니다.
저는 딸 아이를 보면서 아이의 욕심에 놀랍니다. 사랑에 대한 독점욕입니다. 자기 오빠가 엄마 품에 안겨있는 것을 보면 발을 동동 구르며 울어댑니다. 사랑받고 싶고 그 사랑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단순성이 있습니다. 매를 맞아도 다시 달려듭니다. 잘못을 해놓고도 도망하지 않고 사랑에 의지해서 달려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들의 모습이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살려주십니다. 살려주시는 하나님 앞에 살기 위하여 나가야 합니다. 내 죄를 주께 고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살려달라 호소하면 들으시고 구원하십니다. 그 주님 앞에 날마다 무릎으로 나아가 구원얻고 생명얻는 여러분들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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