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방향 잃은 영웅들 (창 06:13-22)

첨부 1


역사 가운데는 암기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해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응용하는 역사도 있습니다. 1919년에 기미 독립운동 사건이 있었습니다. 6.25는 1950년에 일어났습니다. 1960년에는

4.19 학생의거가 일어났습니다. ‘어떤 사건은 몇년도에 일어났다, 몇년도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다’ 이것은 기억하는 역사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단순히 기억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나아가 다가오는 시대 속에 그 역사의 교훈을 응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를 공부하는 것을 지식이라 합니다. 과거를 통하여 장래를 내다보며 응용하는 것을 지혜라 합니다. 우리는 지식과 지혜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전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실 역사를 곰곰히 되돌아 보면 역사보다 더 귀한 교훈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잉카와 마야의 엄청난 문명이 폐허로 변했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입구가 없는 나라였습니다. 나라 자체가 요새로 폐쇄되어 있는 철옹성이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망했습니다. 바벨론은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에 이미 영수증을 주고받으며 뛰어난 과학기술을 자랑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유브라데강 위에 해상도시를 세웠습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바벨론이 고레스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로마의 정치, 군사, 조직 등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세계를 정복하고 세계 곳곳으로 통하는 국로, 상로, 해로, 고속도로를 건설했습니다. 말 그대로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 내분으로 무너졌습니다. 그 엄청난 나라들이, 전혀 쇠할 것 같지 않던 그들의 영화가 어쩌면 그렇게 하루 저녁 꽃과 같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을까요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역사를 바로 보면 우리의 신앙에 크게 유익이 됩니다. 그들의 역사는 하나님이 실패시킨 역사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들을 실패시키셨을까요
창 6:1-3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
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
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
라(창 6:1-3)”
말씀 속에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아벨의 후손들을 말씀합니다.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들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육체의 생명은 120년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떠나 죄악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들의 범죄상이 창세기 4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들을 홍수로써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셨을까요 또 왜 하나님은 이런 길을 걸어가는 개인과 민족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어떤 경우에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일까요

1.영적인 면을 포기하고 육신적인 면에 치우칠 때입니다.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네가 이 일을 행하
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 하나님을 잊어
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시 50:20-22)”
영적인 면을 포기하고 육신적인 일에 치우칠 때 하나님이 찢으시는데 건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요한삼서 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
구하노라(요삼 1:2)”
이는 삼박자 축복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가 잘되고 육신의 강건함도 얻을 수 있다는 우선순위에 관한 말씀입니다. 영적인 일과 육신적인 일 중에 여러분은 어떤 면에 비중을 두고 생활하십니까 하나님의 심판,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입니다.
미국은 강대국으로 세계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온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다음에 학교와 자신들이 사는 집을 지었습니다. 그 당시 함께 영국을 떠났으나 남미로 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집을 지었고, 학교를 세웠고, 그 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일보다 육신적인 일을 우선했습니다. 그들에게는 항상 먹고사는 것이 늘 문제가 되었고 굶주림에 시달린 그들에게서 해방신학이 나왔습니다.
성도는 영적인 일에 갈급해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전진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파할 길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당시를 보시며 모두가 육체라 하셨습니다. 영적인 일에는 눈감고 육신적인 일에만 미쳐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 때문에 울고 웃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가 당시와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세 때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영국, 프랑스와 같은 나라에 가면 거리에 개 양복점, 개 양화점이 즐비하다고 합니다. 개가 씹는 껌도 있습니다. 개가 죽으면 무덤을 만들고 비석을 세워 줍니다. 언젠가는 고양이에게 수억불의 돈을 상속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주인이 세상을 떠나 화제가 된 일도 있습니다. 개나 고양이에게는 관심을 가져도 하나님께는 관심없는 것, 이것이 육체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 세상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 없으셨습니다.

2..우상숭배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
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창 6:4)”
네피림은 ‘나팔’이라는 동사가 명사화 된 히브리어입니다. 이는 “위에서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마귀는 하늘에서 타락하여 떨어진 존재입니다. 마귀가 사람 속에 들어가자 그들이 네피림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타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상에 죄악이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가장 미워 하십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무당은 무조건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탄이 역사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네피림 시대, 우상의 시대, 타락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하는 개인과 국가는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의 역사입니다.
일제시대 때 주기철 목사님, 최덕지 목사님, 주남선 목사님, 한상동 목사님 등이 순교를 당하고 고난과 핍박을 당한 이유는 신사참배를 반대한 이유도 있지만 우상숭배에 대하여 경고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일본은 반드시 망한다. 그 이유는 우상숭배 때문이다”경고하였기 때문입니다. 일제 말 혹독하게 성도들을 핍박하며 신사참배를 강요한 결과 일본은 완전히 패망했습니다. 일본은 잿더미 가운데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 한 저들은 다시 망할 것입니다.
우리라나 전국에는 50만여명의 무당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기독교 목회자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이들이 81년 여의도 광장에서 ‘국풍 81’이라는 무당행사를 갖고자 했습니다. 여의도 광장에서는 여러 차례 대규모 집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예배단을 설치하는 그곳에 우상의 제단을 세우고 행사를 가지려 했습니다. 그런데 연 이틀 폭우가 쏟아지므로 행사는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용납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네피림 시대, 우상숭배의 시대, 귀신이 판을 치는 세대 바로 오늘 이 시대입니다.

3.죄악이 관영한 세상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
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하나님을 떠나니 모든 계획이 악한 일밖에 없었습니다. 육에 속한 생각들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청산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런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심판보다는 구원에 뜻이 있었습니다. 방주를 예비하사 불의한 세대 속에 의로운 자들을 건지고자 하셨습니다.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예비하게 하사 누구든지 방주 안에 들어가면 구원얻게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어떤 짐승이든 방주 안에 들어온 자는 모두 살았습니다. 신앙생활은 방주(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방주 안에는 역청을 발라 물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평안합니다. 방주는 상중하 3층으로 만들었습니다. 큰 창문을 위로 내도록 하였습니다. 신자로 하여금 위를 바라보고 살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방주 안에 들어와서는 다시 문을 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온 자는 다시 밖에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왜 노아로 하여금 120년간 그 엄청난 모멸과 비난을 받아가면서 방주를 짓도록 하셨을까요 세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①노아 자신을 위하여 짓도록 하셨습니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
팎에 칠하라(창 6:14)”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누구를 위해 믿어 주고, 교회를 다녀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십시오. 기도하고, 성경보고, 헌금하고, 봉사하는 것 모두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②가족과 후손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
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창 6:18)”
박지만 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입니다. 그가 최근에 마약 복용혐의로 다시 구속되었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마약을 복용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몇차례 석방이 되었는데 외로움과 정신적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마약에 손을 댄 것입니다. 딸들은 시집도 못가고 사람들을 피해가며 살았습니다. 자매들끼리 원수가 되어 벌써 십수년째 만나지도 않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0:5에 우상숭배한 죄는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당 자녀가 삼 사대를 가지 못하고 대가 끊깁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후손들이 이처럼 처절한 고통을 당하는 것은 우상숭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을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 나와 내 집이 구원받기 위함입니다.
③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함입니다.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
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하라(창 6:20)”
방주 안에 들어온 짐승들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우리의 재물도 모든 위치도 안전합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산에 올라가 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방주 안에 들어오는 자를 구원하기 위함인 것을 알았을 때 노아는 모든 고난을 참고 견디며 120년 간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같습니다.
영적인 일을 버리고 육신만의 향락을 좇는 시대입니다. 우상숭배의 시대입니다. 죄악이 관영한 시대입니다. 노아시대를 단지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이 그 시대 사람들을 멸망시키셨구나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늘 마지막 시대, 이 시대가 노아의 때임을 깨달아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알고 방주되신 예수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방주 안에 들어간 노아의 여덟 식구와 짐승들만이 구원받은 사실을 깨달아 우리도 방주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거기까지 연결되어야 우리는 지혜있는 자입니다. 응용하는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의 구원을 위하여, 가정의 구원을 위하여, 삶에 넘치는 축복을 위하여 날마다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 위해 살아가시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