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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약속 성취 (창 07:1-14)

첨부 1


신학자 칼 바르트는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있다”고 했습니다. 에밀 부른너는 “성경 절대 사상은 우상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볼테인은 “50년 후면 성경은 자체 내의 모순에 의하여 없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볼테르는 “성경은 수천년 동안 편집되었으나 수십년 후에는 없어질 것이다”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현재까지 있으며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대부분 신화요,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로 보이고 또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고대 유적들을 탐사하면서 성경 속의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임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의 답을 성경에서 찾을 때가 있습니다. 성경의 해답을 가지고 역으로 추적해 가면 문제가 풀리는 것입니다. 어쨌든 예수 믿는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 진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 사실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과 능력이 됩니다.
사탄은 사람들과 성경을 분리시키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분실하게도 했습니다. 바리새인 속에 들어가 성경을 잘못 가르치게 했습니다. 신신학자들 속에 들어가 성경을 사실대로 믿지 못하게 합니다. 천주교에 들어가 사제계급만 성경을 독점하도록 했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라틴어 성경을 만인이 볼 수 있는 독일어로 번역할 때 사탄은 얼마나 방해했는지 모릅니다. 루터는 그때마다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1517년에 성경이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독일어로 번역되었습니다. 루터는 후일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귀와 개는 엎드리면 도망간다. 개는 돌을 집는 줄 알고 도망하고 마귀는 예수 때문에 도망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바른 권위를 두어야 합니다. 성경에 관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
라(요 6:63)”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사40:8)”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
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0-21)”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
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
고 꽃은 떨어지되(벧전 1:24)”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
찰하나니(히 4:12)”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
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감동은 ‘호흡’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으로 성경을 읽고 듣고 받을 때 성경은 우리의 영에 역사하며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한 개인이 사사로 풀어서는 안됩니다. 잘못된 오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개인이나 한 시대에 있어 안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인 통일성을 가지고 있으며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말씀입니다. 약속이 성취되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목적은 생명입니다.
성경 속에는 불신자들에게도 부담없이 이해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신자들에게만 이해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나아가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이해되는 말씀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억지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지나가십시오. 계속해서 읽다보면 하나님이 감동을 주사 몰랐던 부분을 뒤에서 깨닫게 되고, 또 영감을 주사 하나님이 깨닫게 하십니다. 그때가 되면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하더러도 그를 보지 말고 그를 통하여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그 입술을 통하여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로 창세기 6-7장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1.하나님을 떠난 자는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노아 시대, 바벨탑 시대, 시드기야 시대, 신구약 중간기 400여년, 중세 1,000년 세월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캄캄한 암흑기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니 인간에게 죄가 찾아왔습니다. 그 결과 죄악은 더욱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을 멀어지게 했습니다. 더욱 불행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성경을 앞에 펼쳐 놓고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을까요 이 성경은 우리에게 있어 과연 무엇입니까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
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
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 10: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벧후 2:6)”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시대를 기록하고 알려주는 이유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거울처럼 보고 나를 고치라고 주신 것이라 했습니다. 본을 보여 주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대로마 제국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니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처럼 강성했던 에집트, 앗수르, 바벨론이 망했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빈약해 보였던 이스라엘이 말씀을 붙잡자 이천 년이 지난 후에도 나라가 재건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일본과 한국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은 세계 어디에서나 상권을 잡았습니다. 한국은 100년이라는 짧은 역사 안에 찬란한 부흥을 이루었고, 한국인이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축복하실까요 일본의 경제부강을 부러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사상누각(沙上樓閣)입니다. 하나님이 우상숭배하는 일본을 허물자 일본 전역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다시 일어섰으나 우상숭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일본은 다시 잿더미로 돌아갈 것입니다. 영국, 독일이 경제를 회복시켜 볼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신앙을 회복하기 이전에는 절대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멸망이 찾아옵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의 부유함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부유함과 지위와 능력을 하나님이 허무실 것입니다.
오늘 가난하고, 연약하고, 낙심한 사람이 새힘을 얻어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십시오. 말씀은 육신의 양식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영생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2.말씀의 방주 안에 들어오면 구원얻습니다.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창 7:10)”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창 7:22)”
잘사는 사람과 부강한 나라를 보고 부러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만 바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라합, 다니엘, 세 친구는 죽기를 각오하고 말씀만 붙잡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오히려 살았습니다. 육신이 살고, 일시적으로 살기를 원해 신앙을 버렸던 사람들은 오히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어떤 일을 만나도 감사했습니다. 어디에 가도 말씀만 붙잡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초대 교회를 부러워 하고 배우려 합니다. 초대 교회는 어떻게 했습니까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
니라(행 2:42)”
이 짧은 한 구절 속에 초대 교회의 모든 것이 다 담겨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①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②서로 교제하였습니다 ③떡을 떼었습니다 ④기도에 전혀 힘을 썼습니다. 신앙생활의 성공은 기도하여 말씀을 받는 일에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읽고, 말씀을 따라 기도하였고,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늘 말씀의 방주를 찾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늘 기도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기도하여야 합니까 말씀 안에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기도에는 어떤 종류가 있습니까 어떻게 기도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첫째는 개인기도입니다. 개인기도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개인구원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그룹기도입니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모여 기도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세째는 전체기도입니다. 교회 공동의 목표를 위한 기도입니다. 이것을 무시하면 교회를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개인기도, 그룹기도, 전체기도. 이 셋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안됩니다. 이 세가지 기도가 축복받고 응답받는 고리입니다. 기도가 서로 연결되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들 가운데 늘 실패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실패도 어쩌다 한번 해야지 늘 실패하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왜 실패할까요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을까요 성경읽고, 내게 주시는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신문 TV는 밤새도록 보면서 성경은 한 말씀도 읽지 않으니 실패하는 게 당연합니다. 많이 안읽어도 관계없습니다.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생명이며 능력입니다. 날마다 나를 살리는 방주를 찾아야 합니다.

3.내게 주시는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어느날 예수님은 먼저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가시고, 제자들은 밤에 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무서운 바람이 일어났습니다. 풍랑이 배안까지 무섭게 밀려 들었습니다. 모두가 이제는 죽게 되었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때 저쪽에서 누군가가 바다 위를 걸어 오고 있었습니다. “유령이다!” 제자들은 소리쳤습니다. 풍랑에 두려움에 제자들은 초죽음이 되었습니다. 그때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예수님이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로 명하여 이 바다 위를 걸어 오라 명하소서!” “오라!” 베드로는 그 말씀을 듣고 바다로 뛰어 들었습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하는 말씀은 모두가 함께 들었습니다. “오라”하는 말씀은 베드로에게만 하신 말씀입니다.
모두에게 동시에 하신 말씀은 ‘로고스’입니다. 오늘 나에게만 주시는 말씀은 ‘레마’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하면서 오늘 내게 주시는 레마를 들어야 합니다. 보아야 합니다.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때 응답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늘 주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노아의 신앙생활은 어떠했습니까 또 오늘 우리에게는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은혜의 보좌로 나갔습니다. 우리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 시간 은혜가 내게 필요합니다. 주님의 은혜 보좌 앞에 날마다 나가야 합니다. 연약하기에 매일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부족하기에 교만할 수 없습니다. 노아는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갔습니다. 노아는 매일 은혜 안에 살았습니다. 로스엔젤레스에 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또 죽었습니다. 그 일이 남의 일일 수만은 없습니다. 잠시 후에 우리에게도 어떤 일이 일어날른지 모릅니다. 어떤 위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늘 기도하며 주님의 보호와 도우심을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노아는 매사에 은혜를 구하며 살았습니다. 그 비결이 바로 말씀 안에서의 삶이었습니다. 날마다 내게 주시는 말씀을 찾고, 그 말씀을 붙잡고 사는 생활입니다. 우리도 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노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의 생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담이 태어난 후 1656년 만에 노아 홍수가 있었습니다. 아담가 죽은지 726년 만에 일어났습니다. 아담 622세 때에 에녹이 탄생했습니다. 노아와 에녹은 308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308년을 에녹과 함께 살게 하셨을까요 그 당시에 사람들이 그토록 오래 산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후에 무두셀라가 태어났습니다. 무두셀라가 죽던 해에 홍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무두셀라는 969살을 살았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오래 살아야 했습니까 신앙으로 사는 삶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노아는 이와 같이 여러 조상들과 더불어 살면서 그들로부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신앙을 배웠습니다. 노아는 자기 앞서 살았던 사람들로부터 신앙을 배웠습니다. 글도 TV도 없던 시대, 하나님은 그들이 오래 살아야 신앙을 배울 수 있겠기에 900세 이상을 살게 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배워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생활로서 전승하였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타락하던 시대, 우상숭배의 시대, 죄악이 관영하던 시대, 그 시대 속에서도 오직 말씀을 붙잡고 살았던 신앙의 선진들은 의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기도응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기도응답을 받으며 사십니까 ‘나는 왜 기도의 응답이 없을까’ 궁금해하는 분이 안계십니까 성경 안읽고 기도 안해서 그렇습니다. 하는 일마다 안되는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살아서 역사하는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조로부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배웠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때 믿음을 주십니다. 선물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셨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짓고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
노아는 의와 구원을 선포하였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주셨던 은혜를 우리에게도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노아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대할 때 그 영의 말씀이 영으로 내게 역사합니다. 말씀 안에 살며, 말씀으로 사는 축복이 넘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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