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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자녀를 낳는 사람 (딤후 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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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잘 아는 목사님 따님이 뇌막염으로 충북대 병원에 입원하고 있어 병문안을 다녀 왔습니다. 그 목사님에게는 유일한 혈육입니다. “목사님 힘드시죠” 하고 제가 물었더니 바로 앞에 있는 침대를 가리키면서 “저분들을 보면서 위로 받고 있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앞 침대에는 어머니가 울고 있는 간난 아이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 아기는 어머니의 모태에서 7개월만에 나왔습니다. 3개월을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제대로 발육이 되지 않아 지금 6개월이 지났는데도

3.5Kg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주사를 맞았는지 얼굴에는 주사바늘의 흔적이 가득했습니다. 온몸은 약물에 절어서 까맣게 변해 있었습니다. 제 눈에는 기근에 죽어 가는 아프리카의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남들이 보면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싶은데 어머니는 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안타까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식을 저렇게 해서라도 반드시 살려야 하고 길러야 한다. 그래야 어머니다.’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돌아왔습니다.
저에게는 세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어떤 자녀든 부모는 자식을 낳을 때 생명을 걸고 낳습니다. 자식은 생명으로 낳는 것입니다. 죽을 각오하고 낳는 것입니다. 창세기 35장을 보면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죽습니다. 사무엘상 4장에서는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이를 낳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식은 생명으로 낳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낳았기에 소중하고 생명으로 낳았기에 생명으로 양육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한 생명에 눈뜨시고 한 영혼에 여러분의 생애를 투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한사람 철학
창세 이래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인류의 역사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지배되어 왔습니다. 영어로 인생을 Life라 합니다. 여기에서 첫자와 끝자를 빼면 if가 됩니다. if, 가정해서 만약에 이미 지나가버린 역사입니다만 그 역사 가운데 그 한 인물이 없었다면 분명히 역사는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없었다면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은 없었을 것입니다. 레닌이 없었다면 러시아 혁명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몽고의 징기스칸은 흩어져 있던 여러 부족들을 규합하여 세계를 정복했고, 200여 년간 지배했습니다. 그의 영향력이 사라지자 몽고인들은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소에게 풀을 뜯기며 살고 있습니다.
징기스칸 한사람의 영향력은 그토록 대단했던 것입니다. 마게도냐는 그리스 북쪽 산악지역에 위치한 야만인들이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알렉산더는 약관 30세의 나이로 그리스를 정복하고 페르시아를 정복했습니다. 그가 죽자 장군들에 의하여 나라는 분열되고 마게도냐는 세계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없었다면 유럽전쟁도 없었습니다. 이렇듯 한사람의 힘이란 엄청난 것입니다. 세계사를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은 부정적인 예입니다.
선교사적으로 허드슨 테일러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중국은 수십년 지하교회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무디 한사람이 성령을 받자 100만명의 영혼을 구원하였습니다. 웨슬레 한사람이 변할 때 18세기 영국이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찰스 피니는 생전에 50만명의 영혼을 구원했습니다. 한사람이 하나님 앞에 붙잡힐 때 이렇듯 엄청난 역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한사람이 났을 때 그 시대가 평안했습니다. 하나님께 반역하는 한사람이 났을 때 국가 전체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요셉 한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섰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살 수 있었습니다.
사울 한사람이 하나님 앞에 범죄 했을 때 전체 이스라엘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다윗 한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섰을 때 이스라엘 전 역사 중 최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아들 솔로몬이 말년에 하나님 앞에 범죄하자 나라가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역사는 다수의 무리보다는 앞서가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주도되고 지배되어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과거 우리의 역사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지도자가 없어서 불행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책임은 한 시대를 이끌어갈 사람을 찾고 세우는 일입니다. 역사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90% 헌신하는 백사람보다 100% 헌신하는 한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는 역사 앞에, 하나님 앞에 한사람으로 섰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이 역사를 위해 위대한 한사람으로 서야 합니다. 내가 선 오늘 이 자리, 가정, 교회, 직장, 학교, 지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한사람으로 서여 합니다. 나로 인하여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라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자’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한 소자가 앞으로의 역사를 바꿀지도 모릅니다. 오늘 내 눈에 한없이 약하고 부족해 보이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들어서 한시대와 세계를 바꾸실지도 모릅니다. 한사람이 바로 되면 역사가 바로 되고 한사람이 잘못되면 한시대가 어지럽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한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눈이 필요합니다. 철학이 필요합니다.

2.생명은 낳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일평생 믿고 신뢰할 만한 믿음의 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중요합니다. 또 내가 낳은 자식이 있어 평생 자랑거리가 되면 그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기쁘고 즐거울 때, 괴롭고 슬플 때 생각나는 믿음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라고 하였습니다. 디도를 가리켜도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라고 하였습니다. 오네시모를 가리켜는 ‘옥중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렇듯 믿음의 아들들을 많이 가진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본문 가운데 디모데를 눈물로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디모데를 보면 기쁨이 충만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안수하여 다시 그 신앙에 불이 붙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같이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권면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부모는 우리를 낳아서 일생을 살게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부모는 영원한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런데 육신의 부모는 허다하게 많아도 이런 영적 부모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 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우리가 스스로 솔직하게 한번 물어 봅시다. 어린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정말로 영적인 부모가 되고 있습니까 “나는 저 선생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저 선생님이야말로 나의 영적인 부모님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까 ‘저 아이는 내가 믿음으로 낳았다. 나는 저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얻었다. 저는 나의 영적인 아버지다’ 그렇게 말할 수 있고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낳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생명은 길러야 합니다.
낳은 정과 기른 정. 과연 어떤 정이 더 귀한 것일까요 이따금 낳은 정과 기른 정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낳는 것과 기르는 것, 어떤 것이 더 어려운 것일까요 제가 볼 때는 기르는 것이 더 어렵다고 봅니다.
물론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특수한 상황을 가진 분들에게야 낳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낳는 것보다는 기르는 것이 어렵습니다. 아기를 태중에 가졌을 때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감기약 하나도 제대로 먹을 수 없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도 마음대로 먹지 못합니다. 마음대로 몸을 추스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열달이면 아이는 낳을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아이가 셋있습니다. 솔직히 세째 아이의 임신 소식을 듣고 크게 낙심을 했습니다. 낳는 것 때문이 아니라 양육이라는 기르는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기를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가정 문제는 출산의 문제가 아닙니다. 양육이 문제입니다. ‘저렇게 할려면 무엇 하러 자식을 낳았나’ 싶은 경우를 자주 봅니다. 출산은 순간의 고통입니다. 양육은 평생의 십자가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출산에만 혈안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육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출산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낳아야 기르는 것은 당연한 순서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기르지 못할 바에야 낳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낳을 수도 있습니다. 양육은 평생의 십자가입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바울이 어떻게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자신이 어떻게 교회와 양들을 양육하였는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모든 겸손과 눈물로 참고 인내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가 되었는가, 어떻게 내가 그들을 양육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헤어짐의 순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교사로 수고하다가 저희 교회를 떠나 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아이들 앞에서 울면서 떠난 선생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울면서 선생님을 보내는 아이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불러다 예수님을 가르쳤는지는 모르지만 생명으로 낳고, 양육하는 일에는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양육에 있어 사랑이 부족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은 길러야 합니다. 사랑으로 가르치고 전해야 합니다.

4.생명은 재생산되어야 합니다.
저는 아이를 셋 낳고 야만인이라는 소리를 종종 듣습니다. 인구정책을 위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아들을 통해서 영광받으실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우리가 구해서 낳은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친히 주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자녀들을 잘 입고, 잘 먹이고, 많이 가르칠 자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 하나만은 확실하게 가르치겠습니다. 예수님의 생명과 능력만은 분명하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여 가르칠 수 있도록은 하겠습니다.
이것 이상 아이들에게 더 무엇을 해주고 싶은 마음도 아예 없습니다. 저를 통해서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하시는 여러분들에게도 이것만 전달하려 합니다. 복음은 듣고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 가운데 계속 재생산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가 얼마 후면 죽임을 당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낳은 수많은 믿음의 아들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 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
복음은 바울에게서 디모데에게로, 디모데에게서 많은 충성된 자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또 연속적인 생명의 재창조가 이루어질 것을 바울은 믿었습니다.
사람을 신앙으로 낳고 기르는 일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농부의 심정으로 계속 씨를 뿌리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조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도서 기자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 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전 11:6)”
이랜드라는 의류 제조업체를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그 회사는 86년에 65억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87년에는 450억, 88년에는 1000억, 89년도에는 2000억, 90년에는 3300억, 91년에는 4200억, 작년 매출액이 5500억이나 되었습니다. 지난 해 개인 소득세 납부 현황을 보니 8위를 차지했습니다. 경제계에서는 기적의 신화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비약적인 성장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박성수 사장은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키웠습니다. 사람을 키운만큼 회사는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회사가 운영되어 가는 과정에는 기술, 자본, 상품 등이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술은 돈을 주고 살 수 있습니다. 자본은 빌릴 수도 있습니다. 오직 사람만큼은 살 수도 없고 빌릴 수도 없습니다. 우리 회사는 사람은 키웠습니다.’
그 회사는 매일 8시 30분부터 9시까지 직원 전체가 경건회를 합니다. 그 회사의 일년 인건비가 400억입니다. 매일 하루의 1/20을 하나님께 드리고있습니다. 돈으로 환산하면 20억입니다. 매주 월요일 8시부터 11시까지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도 20억에 상당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시간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사람들을 말씀으로 양육하시고 사람을 키우니까 회사는 자동적으로 성장하더라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돌아온다면 자신은 몇십억이라도 아낌없이 투자하겠다고 말합니다. 매년 2000여 전 회사원을 대상으로 수련회를 하는데 10억 가량이 든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많은 헌신자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들은 민족 복음화와 중국선교에 대한 구체적인 비젼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박성수 집사는 이렇게 간증합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닌데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또 일하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신앙으로 길러준 옥한흠 목사님에게 큰 감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대학시절 철저하게 문제 투성이었던 사람인데 옥한흠 목사님이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투자한 결과가 오늘의 자신을 있게 했고, 자신이 또 기업을 이끌며 선교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문제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투자해도 결코 손해가 아니라고 그는 말합니다. 한사람은 중요합니다.
새부산 교회 최홍준 목사님 교회에서 교육관 부지를 위해 땅을 살 때의 입니다. 땅 한 평에 550만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깎고 또 깎아 450까지 깎았습니다. 그런데 당회에서 장로님 두 분이 결사적으로 이것을 반대했습니다. 밀어부칠 수도 있는데 이 목사님은 보류시켰습니다.
일년 후 절대적인 필요성을 그분들이 공감하게 되었고 다시 땅을 샀는데 700만원씩 샀습니다. 1억 이상의 돈이 더 지출되었습니다. “목사님 이왕 사실 것, 그때 밀어 부쳤으면 1억을 손해보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했더니 그때 최홍준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밀어 부쳤으면 1억은 벌었겠지만 나는 소중한 두 사람을 잃어 버렸을 것입니다. 두사람은 1억보다 귀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저를 잘 압니다. 저 같은 경우는 두 사람을 내쫓고라도 땅을 샀을 것입니다. 땅보다, 돈보다 사람이 귀합니다. 이제 여러분 개개인에게 비젼을 두고 목회를 감당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개개인이 세계와 시대를 밝힐 수 있는 한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가슴 벅찬 기대를 가지고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이 속한 삶의 현장에서 한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전하며 가르쳐서 한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세우고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제자 양육에 성공적인 교사에게 노하우를 물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사랑과 인내입니다.”
말씀이 약해도, 전달하는 기술이 부족해도 사랑만 있으면 진실은 전달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참고 견딘다고 고린도전서 13장은 말씀합니다. 일심으로 전심으로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한 인물로 스스로를 세워 가십시오. 그리고 어린이와 자녀와 이웃들을 변화시켜 하나님 앞에 세우십시오.
하나님께서 큰 영광 받으시고 크게 저들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시며 은혜 주심의 역사가 늘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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